스타데이트 48498.4
베이조와 카다시아는 베덱 버라이얼을 중심으로 다섯 달 간 평화협상을 비밀리에 준비해왔다. 회담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러 카이 윈과 베덱 버라이얼이 카다시아로 향하던 중 그것에 반대한 누군가의 조작으로 우주선에 문제가 생기고, 버라이얼은 치명상을 입는다. 결국 뇌사판정을 받은 그를 바시어는 몸과 나머지 신경이 아직 살아있는 것을 이용해 다시 살려낸다. 그 과정에서 사용된 약물의 부작용으로 버라이얼의 몸과 뇌가 점차 망가져간다. 카이 윈은 버라이얼의 역할이 협상의 성패까지 좌우함을 강조하고 여기에 버라이얼 본인이 강력히 희망하자 바시어는 무리해서 약물을 사용한다. 결국 버라이얼의 뇌가 모두 망가지자 바시어는 그의 존엄을 위해 그 이상의 치료를 포기한다. 카이 윈은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준비한 것들을 바탕으로 협상을 성사시킨다.
한편에서는 제이크와 노그가 베이조인 소녀들과 자리를 가진다. 노그의 페렝기식 언행 때문에 분위기를 망친 후 두 사람은 크게 다툰다. 시스코의 충고를 들은 제이크는 일부러 그와 노그가 한 감방 안에 갇히도록 계획한 후 문화적 차이에 대해 진솔하게 대화한다. 둘은 화해하고 이전처럼 지내게 된다.
-베이조와 카다시아의 평화조약 성사, 그리고 베덱 버라이얼의 죽음.
-늘 했던 말이지만, 카이 윈은 나름대로 애국자 맞다. 그렇지만 방법론이 더럽다. 한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써먹을 수 있는 한 바닥까지 닥닥 긁어내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단 말이지. 이런저런 일은 벌여놓지만 자신은 성과물만 취하고 책임은 지지 않도록 빠져나갈 구멍을 늘 마련한다. 모든 공은 윈에게 돌아가고, 책임은 또 다른 사람이 지고, 베이조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윈에게 박수를 보내고. 이래서 윈이 싫다.
한편으로는 버라이얼의 희생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만일 카이가 오파카였다면, 아니면 샤카가 일찌감치 수상이 되어 이때 동행했더라면 같은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한 사람의 목숨으로 원수를 진 두 나라가 화해할 수 있다면, 그럼 그 사람은 이미 죽어 좀비같은 상태가 되어서까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도 도의적인 결론과 정치적인 결론이 갈리는 것 같은데, 카이 윈이 뱃속에 품은 새까만 욕심은 둘째 치더라도 베이조인들이 택할 것은 정해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키라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버라이얼을 살려놓고(?) 보라며 웬일로 카이 윈의 편을 든 것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되지 않을까 한다. 중반까지는 키라가 버라이얼의 연인보다는 일반 베이조인의 심정에 좀 더 기울어져 말하고 행동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다.
-전혀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이 서로가 배우고 익힌 것을 덜 침범하면서 교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제이크와 노그는 종족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다툼이 있어도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자, 충돌이 일어날 일은 알아서 회피하자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지금 지구에 사는 인간들끼리도 그럴 수 있는가? 양성평등만 해도 개념정립조차 덜 되어서 시끌시끌한 곳이 세상의 태반일 텐데? 내가 교양 수준에서 이해하는 문화상대주의 내지 다원주의는 사람의 존엄이나 생명 같은 것에 중대한 침해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 적용되는 개념이다. 프라임 디렉티브는 때때로 무자비한 개념이라서 그런 예외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이든 문화든 '발전'은 그 사회 내부에서 스스로 이루어야 하니까.) 어쨌든 트렉에서 페렝기는 남녀가 동등한 문화권에서 자란 다른 종족의 여자를 대할 때 자기네 여자들에 대해서보다는 존중하고 다른 종족은 페렝기의 남존여비 문화에 눈살만 찌푸리고 만다. 그걸로 끝이다. 페렝기들이 그들의 문화를 바꿀지 말지는 이쉬카 같은 내부자들을 통해 알아서 다룰 문제이지 외부에서 참견할 바가 아니라는 듯이. 나는 지금 스타트렉이라는 픽션 안의 세계에 한정지어 말하려 한다. 문화라는 것은 정말로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가치판단을 할 문제가 아닌 것일까. -_-; (그럼 여기저기서 참견질하고 설교하던 커크는 뭐임 아처는 프라임 디렉티브 개념이 생기기 전의 사람이니 그러려니 해도 말야 -_-;)
참. 제이크와 마르다는 3x10(Fascination)에서 깨졌다. 마르다가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멀리 유학가버린지라. 다보걸 수입이 좋긴 좋은가 보구나. 잠깐 일하고 학비를 마련할 정도라니.;
-이번 에피소드 중의 역할이 일반 베이조인의 대표에서 키라 너리스라는 개인으로 바뀌자, 키라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버라이얼을 어떻게든 세상에 붙잡아놓기 위해 끝까지 억지를 부렸다.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데다 키라가 아직 젊달까 어리달까 그런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이 있었으니까 4년 후의 오도한테는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도 역시 이때를 아니까 그런 허세를 부릴 수 있었고.)
바시어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너무도 대단해서 이야기의 배경이 된 24세기에는 이미 뇌사에 빠진 사람의 머리에 죽은 뇌를 대체하는 이식물을 삽입함으로써 멀쩡한 사람처럼 행동하게끔 만드는 정도는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대상자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할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태이나마. '그것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죽을 권리를 줘야 한다'라고 말은 하지만, 바시어라 해서 자신이 맡은 환자를 즐거운 마음으로 안락사시켰을 리는 없겠지. 인간답게 죽을 권리는 인간답게 살 권리만큼 중요한 것일까?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는 비장한 대사의 한편에는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있다. 물론 이 에피소드의 버라이얼은 정말로 죽은 사람을 육신만 작동하게 만든 거나 마찬가지라서 안락사 쪽이 '원래대로' 되돌려놓는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말이다. 이번 에피소드는 나에게 있어 전체적으로 물음표가 많다. 함부로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버라이얼 안토스는 분란 속에서 평화를 이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들끓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키라조차도 버라이얼 앞에서는 평안을 얻고 온화해졌다.(이와 관련해 떠들 거리가 있지만, 좀 더 나중에.) 그를 암살할 계획까지 실행했던 정적조차도 결국에는 그를 인정하고 중용하게 만들었다. 그의 죽음은 베이조와 10년 내로는 얼굴을 맞대는 것도 싫어할 카다시아를 상대로 양쪽 세계의 공식적인 평화와 교류의 기초를 닦아냈다. 제작진의 음모(...)로 그 재능과 인덕을 다 펼쳐보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나중에 거울세계 쪽의 버라이얼이 잠깐 왕림하는 그날까지, 안녕히.
-그러니까 버라이얼은 제작진한테 모살당한 거라는 데에 내 돈 천원 건다. 플래그가 세워진 주역의 어드밴티지는 한낱 조역의 생사조차도 갈라버리는 것인가.(...) 바로 다음 에피소드가 3x14(Heart of Stone)라니 제작진 독하다. 그게 가짜였다는 설정이면 장땡인 거임? 그런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