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부터 코맥 매카시 아저씨 책 몇 권을 줄줄이 접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 버전으로 매카시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먼저 접했고, 책으로는 순서대로 <그곳에 천국이 있을까(원제 : All the pretty horses)>, <핏빛 자오선>, <더 로드>를 봤다. 감상은?
이 사람이 천착하는 주제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어떤 폭력성인가 보다. <그곳에 천국이 있을까>는 기본적으로 20세기 버전 서부극으로 낯선 이와 마주칠 때는 총부터 준비하고 보는 것이 상식처럼 깔려있다. 그래도 이 작품의 경우에는 마크 트웨인이 연상되는 모험소설 성격이 더 강해서 그런지 내가 접한 이 양반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부드러웠다. 그 직후 읽은 <핏빛 자오선>은 완전히 반대편에 선 작품이었다. 한 줄로 요약하면 폭력, 폭력, 절망, 폭력의 역사 아닐까? 상상력이 특별히 좋으면서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추천하기가 조금 조심스럽다. 책 소개에 희망이 어쩌고 적어놓은 작자를 찾아내 그 두꺼운 책을 입에 쑤셔 넣어주고 싶을 정도라면 설명이 될까. (아주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작품의 경우엔 희망을 바랄 수 있는 세대가 결코 주인공 소년의 세대는 아니었다. 대놓고 희망을 말하는 건 이 작가 취향도 아닐 뿐더러.) 그 다음으로 손에 들어온 게 <더 로드>였다. 며칠 후 영화로 개봉될 이 작품에 대해 찌라시 언론은 인육을 먹는 묘사를 화제로 삼는 모양이다. 뭐야, 그게 그리 충격적인 거였어? 그럼 단테의 신곡 지옥편이 영화화되어도 자식들을 잡아먹은 어떤 귀족 이야기가 화제의 중심이 되겠네. 구약성경에 있는 어떤 묘사들은 어떻고. 21세기에서는 당장 우리나라 이북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은근히 소문이 돌지 않나? 인육이란 건 배 곯을 걱정은 안 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호들갑을 떨 대사건이겠지만 생각보다 역사성이 깊으며 오래도록 지구 어딘가에 등장한 것이지 않느냔 말이다.
내가 보기에 <더 로드>의 폭력성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하다. 내 생각에 이 작품의 폭력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자들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문명의 옷을 빼앗겨 발가벗겨진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묘사하는 수단적인 것으로 보였다. 주인공인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인간성을 유지하려 애쓰며, 아들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희망인지라.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마스코트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아무 이유없는 폭력이 바로 주인공인 것 같은 <핏빛 자오선>에 비하면 매카시의 작품치고 폭력에 대한 고발의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는 이야기다.
뭐어... 그런 건 매카시의 작품들을 늘어놓고 누가누가 더 무시무시한 폭력을 저지르나요 키재기하는 나 같은 놈들이나 따지는 거고. 폭력은 그 수위가 어떻든 폭력이다. <더 로드> 하나만 떼어놓고 보자면 충분히 그악스러운 장면들이 널려있고, 하나하나가 화제가 될 법도 하다. <핏빛 자오선>으로 단련되어 별 묘사엔 당황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그럼에도 깜짝 놀랐던 도살당한 아기에 대한 묘사는 반드시 영화화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 직접적으로 이 작품의 폭력을 시각화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배경으로 널려있는 폭력이 아니리라. 이 작품에서는 작가 양반이 웬일로 희망의 가능성을 말하지 않던가.
비고 모르텐슨이 주연이라서 그런가, 어째선지 영화 <더 로드>가 묵시록적인 블록버스터처럼 광고되는 분위기이다. 소설을 봐선 잘 상상이 안 되는데. (세트장에 제작비 대부분이 들어갈 거란 건 알겠다만.) 어찌 됐든 개봉되면 가서 봐야지. 몇 쪽 안 되는 이 얄팍한 소설을 덤덤하게 읽어가던 내가 어느 순간 왈칵하고 눈물이 나려던 때가 있었는데, 과연 영화에서는 어디에 무게를 두고 묘사할지 궁금하니 말이다.



아나 근데 눈이 오전보다 더 많이 오냐.. 오전에 내린 게 눈가루였으면 지금은 눈덩이구만? 오전에 이미 10센티는 가뿐히 넘어가게 쌓여 있더구만 이건 뭐임 이대로라면 20센티도 돌파할 기세? -_-;;;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