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지방에 기록적으로 눈이 쏟아졌다는 어제 나는 현명하게도 (혹은 원래 백수라서) 방안을 뒹굴거리며 편안히 눈구경을 하셨더랬다. 그래도 '기록적'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눈이 내렸으면 나가서 한 번 꾹꾹 밟아주는 게 인지상정인지라, 학교에서 안전하게 눈구경을 하기로 했다.
이것이 오늘 아침 8시 40분경의 학교 풍경. 저 거뭇한 부분은 본래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이다. 도로에 쌓인 눈은 방금 집에 들어오기 직전까지도 저 지경이었다. 체육관 앞 언덕배기에서는 차 한 대가 헛바퀴를 돌리며 오도가도 못 하더라.

이것은 인도 풍경. 중도로 가는 길목이다. 어찌나 눈이 많이 내렸는지, 평소라면 일하는 분들의 수고로 눈이 내린 즉시 바닥이 드러났을 길이 여전히 허옇다. 발끝으로 3센티 쯤 팠는데도 바닥이 안 보일 정도다.
참고삼아 그분들의 전투력에 대한 단적인 예를 제시하자면, 5월달 축제가 끝난 직후나 7, 8월 태풍이 몰아친 다음날 우리 학생들은 광란의 밤의 흔적이나 은행나무 가지가 부러져 나뒹구는 꼴을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전날의 난장판을 본 사람이라면 다음날 꼭두새벽부터 말끔해진 백양로를 보고 축제나 태풍 같은 게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 의아해질 지경이다. 그런 분들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서 이 정도다. 그런데도 인도에 눈이 있다고 뭐라 하는 놈은 제 손에 삽을 들고 직접 눈을 치워봐야 한다.


이건 중도 좌측에서 신중도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 몇 센티인지 재기도 싫다.
괜히 발자국 없는 저 눈더미에 발을 푹 꽂고 싶어지는 유혹이 지극하였으나 건물에 들어가기 직전이던 이 때에는 차마 할 수 없었다. 대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실행했다. 당장 신발에 눈 들어오더라.(...)


그나저나 묘한 일이다. 자랑할 일은 결코 아니지만 몇 년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관찰한 바로, 3센티 이상 눈이 쌓인 날에는 꼭 누군가가 눈사람이든 뭐든 굴리며 눈장난을 쳤더란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중도 이북의 골고다 언덕 너머로는 가지 않았으니 그쪽의 재기 넘치는 문대 내지 상경대 학우들이 이뤘을지도 모를 모종의 작품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아니면, 이번에는 질리도록 눈이 퍼부어대서 눈놀이를 할 생각도 못 할 정도였거나. 아니면, 학우들이 눈사람 만드는 법도 까먹을 만큼 삭막무지해졌거나.

Posted by 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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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vax 2010.01.05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레? 아직 학생이셨........

  2. 요르다 2010.01.06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폭설로 난리가 났는데 눈사람 만들고 있자면 눈치없다고 눈총맞을까봐 피해다닌게 아닐지(먼산).

    • 양운 2010.01.06 1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학교 안이니까 차 안에 갇혀 열받은 분들 눈에 띄진 않았을 텐데(...) 왠지 눈이 쌓일 정도로 온 날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눈사람을 만들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