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알면 이런 문제가 있군요. 자꾸 비교를 하게 되지요.
대략 플롯에 필요한 묘사는 거진 들어갔다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고개를 좀 갸웃거렸습니다. 영화 <더 로드>는 원작과 비교했을 때 대단히 감정이 넘치더군요. 코맥 매카시의 건조하고 과묵하고 냉엄한 묘사는 말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엄청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괴이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속 여백미가 만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묘사인 것처럼, 행간의 여백을 통해서 뿜어지는 이런 힘은 소설이니까 가능했겠지요. 영화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매체 자체가 소설과 다른 탓에 원작에서 추구하는 어떤 종류의 요소들은 과감히 자르거나 변형시킬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독이 택한 방법은 부자, 특히 아버지가 느끼는 감정을 최대한 원작에 손을 덜 대는 범위에서 강조하는 것 같네요. 가령, 아버지가 아내의 사진을 버린 장면은 원작에선 쓸모도 없는 지갑이 바지에 구멍을 냈기 때문에 버리기 직전 한 번 조사해보던 과정에서 묘사되었습니다. 이쪽은 처음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아내의 죽음을 무의식적으로 차차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마지막 표현이 사진을 버리는 것이란 인상이 있었습니다. 여태까지의 문맥으로 떠올린 '인상'입니다. 사진을 버리는 장면 자체를 묘사하는 몇 줄 속에는 아무 대사도 감정표현도 없습니다. 영화 쪽에선 내내 아내를 생각했고 지금도 아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감정을 가졌음에도 의식적으로 지우기 위해 버리는 것처럼 묘사되네요. 이런 식으로,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인물들에게 감정이 넘쳤습니다. 아들의 나이가 재앙이 닥친 이후 흐른 세월과 엇비슷할 겁니다.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면 웬만해선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을 터이고, 또 그런 것이 원작 속 인물들이었음에도요. 감독은 굳이 배우들의 눈물을 자주 노출시킴으로써 '이들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게다가 부자를 조용히 따뜻하게 지켜보는 것 같은 배경음악은 이런 감정적인 분위기를 보다 확장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음악이 전혀 들어가지 않음으로써 매카시의 문체를 영상으로 옮겨놓으려 시도한 것 같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비교되더군요. 영화화된다면 반드시 들어가리라 생각했던 아기 도살 장면은 웬 모자가 몰이를 당하는 것처럼 쫓기다가 살해당하는 걸로 대체되었네요. 영상화하기엔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전체적으로, 감독이 따뜻한 사람이라서 원작을 따뜻하게 해석하고 싶어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됐건... 부자간의 미묘한 지위변화나 아버지의 좀 강압적인 부분 같은 것은 잘 묘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끊임없이 신 나쁜 놈! 당신 있긴 함?! 있다면 그건 내 아들임!! 같은 식으로 웅얼웅얼 반문하며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갈 데 까지 간 인간의 극단적인 폭력성에 대한 묘사는 비교적 축소된 편이지만, 큰 상관은 없겠죠. 대책없이 원작에 있는 것을 모두 쑤셔넣는 것보단 제어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려는 말을 하는 게 훨씬 낫다고 보거든요. 영화에선 부자유친을 기대하고 가면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 엔딩롤을 보니 로케 장소에 세인트헬레나 화산이 올라 있더군요. 숲이 배경인 장면은 거의 거기서 찍은 모양입니다. 어디서 잘도 그런 배경을 구했다 했더니.


p.s. 참참. "그래도 우린 여기 있잖니." 이 대사는 왜 잘렸음? 이 무슨 폭거임?? 응? 응응???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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