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음梁父吟

└火鳳燎原 2010. 7. 11. 01:39
步出濟城門  제나라 성문을 걸어 나가
搖望湯陰里  멀리 탕음리를 바라보니
里中有三墳  마을 가운데 세 무덤 있어
累累正相似  나란한 것이 서로 비슷하다
問是誰家塚  누구의 무덤이냐고 물었더니
田開古冶子  전개강, 고야자라 하네
力能排南山  힘은 남산을 밀어낼 만했고
文能絶地紀  지략은 지기를 끊을 만했으나
一朝中陰謨  하루아침에 음모에 떨어져
二桃殺三士  복숭아 두 개로 세 명의 용사가 죽임을 당했네
誰能爲此者  누가 이런 꾀를 내었던가
相國齊晏子  제나라의 재상 안영이더라

-젊은 시절의 제갈량은 양보음을 즐겨부르곤 했다고 한다. 양보음은 제나라 쪽에서 (정확한 용어는 잊었는데) 애가 비슷한 것으로 전해진 민요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제갈량이 태어난 산둥반도 일대는 전국시대에 제나라의 영토였고 제갈씨 자체가 제현(수정 : 낭야군 제현인데 제나라로 착각했다. 한자 자체가 다른데 어찌..;) 출신이라 붙은 복성이니 이런 노래를 안다 해서 이상할 건 없겠지. 내가 궁금한 건 왜 젊고 포부 넘치는 사람이 하필 그런 애가를 불렀냐는 것이다. 혹자는 지혜로 무력을 제압한 안자를 칭송해서라고 해석하더라. 확실히, 제갈량은 자신을 관중에 비견했고 안영은 제나라 재상 계보에서 관중과 쌍벽을 이루는 현신이었지.
그렇지만 내가 이도살삼사의 고사를 다른 곳에서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안영의 지혜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혐오감이었다. 전개강, 고야자, 공손접은 자기 힘만 믿고 왕 앞에서조차 오만방자한 작자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용력만은 틀림없는 사람들이었다. 자랑질을 하다 한 사람이 자결하자 따라 자결했다면 예의는 모르지만 부끄러움이 뭔지는 알았으리란 이야기도 된다. 그들을 굽혀 왕이 쓰기에 좋도록 다스리지 않고 꾀로써 죽여 없애다니. 저 고사에 대해 낱낱이 아는 건 아닌지라, 정말로 죽이는 것밖에 답이 없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다. 그 안영이 단지 불쾌하다는 이유로 저런 결정을 내렸을 리 없을 터이다. 그런 배경지식을 살금살금 주워먹는 와중에도 혐오감이 가시지 않는 것은 내가 나이브한 탓일까. 노래를 지은 사람이 아무런 의도를 깔지 않고 陰謨라는 표현을 사용했을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뭐어, 처음 노래를 지은 사람은 명재상 안영을 은근슬쩍 비꼬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아주 없진 않겠지. 그렇게 전해지던 노래를 남다른 제갈량은 남다르게 해석해서 나도 안영같은 재상이 될 거임ㅋ 하고 쿨시크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를 일이고. 다만 그렇게 보기에는 현실의 진창을 뒹구는 정치가임에도 팽생토록 도덕을 지키고자 무진 애를 썼던 사람이란 걸 무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진모는 언제쯤 7기님녀석의 복면을 벗겨줄 건가요? 진모라면 양보음을 부르게 하든 인용하게 하든 어떻게든 써먹을성 싶은데. 더군다나 이 제갈량은 도덕적 고뇌 속에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여린 가슴인지라, 혹시라도 양보음이 등장한다면 단순한 애창곡으로 소개될 것 같진 않다. 현신이요 명재상인 사람도 忠과 義를 위해 세 용사를 죽였다, 그것이 현실, 그렇다면 나도 그만 마음을 다잡고 출사하자! 같은 전개가 될 리는 없다. 현실순응형이 되어버려선 사마의의 대립항이 될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진모스럽게 현시창스런 해석이 나올 걸 상상하자니 제갈량의 애창곡이란 게 걸린다. 진모라면 양보음 하나만 가지고도 뭔가 씽크빅한/현시창스런 떡밥을 뽑아낼 것 같은 기대감을 품는 내가 웃기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이미 노예가 되어 있다.(...)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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