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와 손권 양쪽 모두 유비의 '의형제' 관우를 죽이지 않고 형주만 먹겠다고 덤빈 것처럼 연출한 거였네. 그럼 이 드라마의 관우가 자진한 건 존심 때문에 죽을 때까지 유비에게 하나 도움이 안 되는 미련한 짓을 한 꼴이 되지 않는가. 장비의 경우에는 아예 생각이 없으니 이릉 직전 암살당한 이유도 연의의 무식하게 사나운 장비를 극도로 강조한 결과가 되겠구나. 둘 다 대국을 못 보는 고집불통 바보 꼰대가 되어버렸다. 이 드라마는 관장한테 대체 왜 이러나.;;;
이쯤에서 적절하게 정사를 보자.
진수 :
손권은 장수를 보내 관우를 역격하고 관우와 그의 아들 관평을 임저에서 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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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吳書)를 살펴보건대 손권은 장수 반장을 보내 관우의 도주로를 끊고 관우가 당도하자 이내 참수했다. 게다가 임저에서 강릉까지 2-300리 거리인데 어찌 때에 맞춰 관우를 죽이지 않고 바야흐로 그 생사를 의논할 여유가 있었겠는가? 또 이르기를 '손권이 관우를 살려 유비와 조조에게 대적하려 했다'고 하니 이런 터무니없는 말은 가히 지자의 말문을 막히게 할 만하다.
(이상, 파성넷의 촉서 관우전 中)
......그러니까 손권과 육손이 관우를 죽이면 유비가 열받아서 쳐들어올 거라 예측해 여몽을 말리려 했다는 드라마의 설정은 좀 심하게 엇나간 뻥이다. 역사상의 손권은 유비가 '일개 부하장수'의 전사를 이유로 삼국정립을 무너뜨리고 강동까지 쳐들어오겠냐는 배짱으로 형주를 친 것이었다. 드라마의 설정은 정사와 연의 양쪽과 비교해도 무리수고, 그 귀결 때문에 더욱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렸다. 관우의 죽음 직후 여몽이 급사한 이유가 손권이 책임을 지워 '암살'한 것이라니? 그런다고 독단으로 관우를 죽게 만든 여몽이 나쁜 것이고 동오는 거기에 대해선 고의가 아님요 발뺌이 되리라 생각하나? 여몽한테 독박을 씌울 거면 공개적으로 죄를 물어 처형해야지 명분이 숨겨진 암살로는 그게 안 된단 말이다. 앰한 육손이 질려서 말 안 들으면 나도 이렇게 하시겠다? -_-; 라는 얼굴로 대도독 자리를 사양하고 도망간 걸 보라. 유비 측에 어필하기는커녕 내부적으로 문제만 일으키지 않았느냔 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여몽은 동오의 숙원을 달성한 공이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죄'를 묻는 건 말이 안 된다. 여몽에게 '죄'를 묻게 된 건 유비의 대군이라는 현실이 동오로 쳐들어올 빌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관우를 잡고 형주를 먹을 정도의 능력자인 여몽을 살려둬야지! 주유 이래 대도독들한테 눌려왔던 손권이 이 일로 극도로 열받아 병권을 온전히 회수할 생각으로 하는 김에 죽여버렸다고 하면 더더욱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이로써 이 드라마의 손권은 진짜로 개새끼가 되어버렸단 말이다. 아직 노망도 안 났는데. -_-;
내가 악독한 진상막장촉빠라 손제리를 매우 공격하는 편이긴 하지만 신삼국의 이 막장설정은 인정할 수 없다. 주유한텐 정신적으로 좀 눌렸어도 노숙을 사이에 두고 양자가 적절히 서로를 견제보완하게 해서 잘 써먹던 중반까지의 능력자 손권 설정과도 맞지 않는단 말이다. -_-;;;
그나저나. 예전에 알아먹을 수 없는 중국어를 두 귀로 술술 흘리면서 봤을 때는 이 드라마의 멋진 유비를 향한 나의 촉빠심과 촉부심 때문에 촉빠성분이 99프로라고 생각했더랬다. 이제 자막을 보니 3할 쯤은 촉빠일지 몰라도 최소 7할 이상은 위빠다. 아니, 정확히는 조조빠다. 위나라 내부가 돌아가는 사정을 설정함에 무리수가 종종 보이기는 한데 배우가 조조라는 캐릭터 자체를 너무도 훌륭하게 묘사해서 그쪽까지 덮어버렸다는 느낌이다. 췟. -3- 어찌 됐든 조조는 죽었고 다음주엔... 떠그럴! 다음 주엔 이릉이 있잖아! ㅠㅠ
p.s. 예전에도 맨날 하던 소리지만 또 하게 되는구나. 헌제는 울 승상과 동갑인데 왜 이렇게 수염의 길이가 현격히 다른가요? 사마의는 울 승상보다 겨우 두 살 많은데 왜 이렇게 연세를 자셨나요? 사마의는 잘라! 헌제는 길러! 손권도 길러! 육손도 길러! 돌쇠는 이릉에서 멈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