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미리니름이 가득합니다.
이야기를 오로지 조조의 관점에서 전개한다면 충분히 나올 수도 있는 팬픽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후반까지는 가끔 촉빠심이 울끈불끈 꿈틀거리는 걸 그럭저럭 잘 참았습니다. 문제는, 조조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패도의 논리에 맞서가며 관우가 기어코 유비에게 돌아가려 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관우가 말하는 의는 두리뭉실하고 실체가 없습니다. 눈 앞의 정리에 우선 반응하고 보는 소인배적인 구석조차 있습니다. 관우가 기어코 유비에게 돌아간 이유를, 유비가 조조에 맞선 이유를 관객이 기본상식으로 숙지하고 들어올 거라 전제한 것일까요? 적어도, 실존인물인 유비는 정이나 인 같은 것만에 의지해 조조한테 맞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오관돌파를 넣은 시점에서 이미 정사가 아니라 연의 베이스입니다만, 관우의 "의"를 표현하기에는 한참 부족해 보입니다. 나름의 뜻과 논리를 세우고 굳게 견지해가는 조맹덕이 있지만, 그뿐입니다.
라고 전에 적었지요. 영화 자체에 대한 제 감상평인데, 이 부분에는 손 안 댑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그럼 촉빠로서의 감상 부분.
제가 그때 열받은 건 역시 진상악성막장 촉빠이기 때문입니다. 촉나라나 촉나라의 중심인물들을 까는 소리를 들으면 우선 눈이 뒤집히는(...) 극성스런 빠심 탓이지요. 제목만 관운장이고 실질은 조조의 시점에서 조조 중심으로 전개될 거라 예상하고도 결국 뒷목을 잡은 것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제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그것도 말이 되게 정리해서 풀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쪽 빠에 대한 실례가 되겠더군요.
머리 좀 식히고 생각하더라도 최후의 최후에 조조가 치는 대사 몇 줄이 저를 분기시키는 것엔 변함 없습니다. 하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조조가 관우더러, 유비는 너를 이용하는 것뿐이라고 비꼬고 있긴 합니다. 세상은 양가죽을 둘러쓴 늑대의 세상이고, 관우처럼 순진한 양은 이용당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늑대들도 결국에는 잡아먹을 그 순결하고 고귀한 양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라는 게 실질적으로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유비가 관우를 이용해먹는 거라고 표현하니 우선 빡치고 -_- 나의 승상 또한 관우를 이용해먹은 늑대 리스트에 올림으로써 형주음모론이 연상되어 또다시 빡치니 -_-; 영화 내내 잘 참던 것이 여기서 완전히 끊겨 좀 되도 않는 논리로 나갔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승상빠니까 다시 거기로 돌아가서. -_- 형주를 잃고 동오와의 관계가 험악해질 경우 유비 세력 내에서 가장 타격이 큰 건 제갈량입니다. 본인이 형주출신인사들의 대표이고, 친형이 동오의 중신으로 사관 중이며, 융중대를 성사시킬 전제 중 하나가 형주의 보전 및 동오와의 협력이니까요. 형주에서 유비가 차지한 지역의 총책임자인 관우를 단순히 잘 드는 칼 정도로 여긴다는 건 제갈량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장 제갈량과 강유의 북벌 내용을 보면 형주 상실로 북벌루트가 단순해진 탓에 무지 삽질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시점에서 조조가 제갈량을 비꼬는 건 관우에 대한 제갈량의 태도가 아니라 천하삼분계를 내놓아 자신의 천통을 방해한 것에 대한 비난이라는 이야기로 결론이 납니다. 그것은 유비(+제갈량) 세력이 끝내 조조 세력과 타협하지 않은 이유를 단지 또다른 "늑대"들의 대권에 대한 야망 때문인 것처럼 조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조조 본인은 자신이 가진 늑대 캐릭터를 긍정하고 더 나아가 이 영화 속의 "조맹덕"이라는 인물이 가진 매력으로 승화시키더군요. 그런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유비(+제갈량)나 손권 같은 입장에서는 졸지에 그들의 삶과 가치관을 "늑대" 한 단어로 싸잡아 평가당한 꼴이 됩니다. 그것도 부정적인 의미로요. 만일 유비의 입장이 조금이라도 설명되었더라면, 관우가 끝내 조조를 뿌리친 이유가 조조의 매력에 정면으로 대항할 수 있는 어떤 형태로 드러났더라면, 그랬더라면 저는 유비가 늑대 취급당해도 그리 신경쓰지 않았을 겁니다. 해석 문제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조조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때문에 촉빠로서의 저는 영화 속에 비쳐진 유비(+제갈량)의 인상을 영화 내적으로 한정해 해석할 수가 없고,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나의 유비는 그러치안아! 나의 승상은 그러치안아!!!
게다가! 유비가 관우를 이용해먹은 거라는 소리는 조조의 입장과 관점에 절대적으로 충실해지자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대사란 거 인정합니다. 하고말고요. 근데 그거 촉빠가 가진 촉부심과 로망의 근본을 건드리는 거거든요? 삼국지를 기반으로 뭘 만들 거면 도원결의의 진정성만큼은 건드리면 안 되는 거거든요?? 굳이 건드리겠다면 유관장의 관계는 이러이러한 방향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라고 그럴듯한 논리를 세워줘야 하거든요??? 근데 이 영화엔 그런 거 없거든요????!!!!!!!!!!!!! 감독은 나와 철의 대화를 하자!!!!!!!!!!!!!!!!!!!!!!!!!!!!!!!!!
.......머리가 식었다고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다시 열화가 치미는군요. 그러니까 전 촉빠라는 겁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내 나라 내 조국도 아니고 무려 1800년 전 중국놈들의 기나긴 암흑기에 잠시 스쳐간 이야기일 뿐인데. 꺼으흑..!
p.s. 참. 저번에 빼먹고 안 썼는데, 감독이 장합까인듯? 왜 이래요 아름답지 못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