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후한말은 총체적 난국이다. 그중에서도 190년대는 혼돈에카오스다. -_-;
-조조가 상주해 미축을 영 영군태수, 미방을 팽성상으로 임명한 일은 여포 패망 후 장패 등등 태산 쪽 군소군벌도 모두 항복한 199년 초반 무렵인가 싶다. 미축전에 인용된 조조의 상주문을 보면 태산군을 쪼개 그 영군(嬴郡 한자도 더럽게 어렵네)이라는 동네를 신설하려 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가진 후한, 삼국시대, 서진 지도에서는 저런 지명을 찾지 못했다. 그보다 태산군에 맞닿는 청주 및 서주 지역을 장패 패거리의 주둔지에 따라 새로 개편하지 않았나? 영군은 조조가 구상만 하고 미축의 비협조로 실현은 못 한 건가?
-창희는 본래 태산 쪽에서 장패 패거리로 일어난 소군벌 중 하나였네. 198년 여포 패망 후 하후연, 장료 등이 공격해 항복시켰다고.(하후연전, 장료전, 우금전 확인하자. 전혀 엉뚱하게도 파성의 제갈량전 후출사표에 번역자의 주석으로 달려있었음. 번역자님 만세!) 창희가 유비의 서주 거병 후로 두 번 반란을 일으켰고 그때마다 서주 사람들이 호응한 걸 보면 역시 그 지역의 감정이 쉽게 가라앉진 않은 모양. 그냥 창희라는 인물이 조조한테 항복한 장패 패거리 안에서 원하는 지분을 받지 못해 혼자 날뛴 것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기엔 맨 나중의 반란이 찝찝함. 이건 당장은 상관 없으니 나중에 천천히.
-동승은 헌제의 장인이고 본래 우번의 부곡이었다고만 알았는데, 배송지 씨가 또 따지기로는 영제의 친모 동태후의 조카란다.(선주전 주석 11번) 헌제는 6촌 누이랑 결혼했냐.
-돈횽이 맹하후가 된 건 연주에서 여포를 몰아내던 때의 일이군. 왜 여포 서주 시절로 생각하고 있었지.; 그 전에 한번 여포군 포로가 된 일이 있었다고 기억했는데 그건 또 여포의 연주 뒷치기 때였네. 돈횽은 여포를 정말 싫어했겠지.ㅋ
-조조는 주령을 항상 증오하여 결국 군대를 빼앗았다고.(우금전) 서황전 안의 주령에 대한 기록에서는 기주 평정 무렵에만 해도 반란의 기미가 가득한 기주 출신 신병들을 맡겨 다른 데도 아닌 허도 근처에 주둔하게 했더만, 심지어 진짜로 반란이 일어났지만 주령한테 책임을 묻진 않고 오히려 격려했더구만. 그런 기록을 보다 우금전에서 저 기록을 본 순간 푸헙 웃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서황전 안의 주령전에서는 기주 평정 무렵의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조비 시대로 워프해버리는구나. 일단 서황이 가는 곳이면 주령도 다 따라갔다고 보면 될 것 같은데, 마초 거병 때 참전한 기록도 있고. 주령을 장수로서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미워하긴 미워한 모양. 딱히 주령이 잘못한 게 뭔진 모르겠는데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게ㅋㅋㅋㅋㅋ 유황숙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만큼 유비의 서주 거병을 조조가 평생 이 갈았다는 소리겠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원래 원소 부하였던 사람이, 원소 리즈 시절에, 서주에서 그 난리 난 거 보고도, 일부러 조조 밑에 남은 건데 그런 사람을ㅋㅋㅋ 조맹덕의 쩌는 뒤끝은 뭐랄까ㅋㅋㅋ
-198년의 료래래를 두고 선주전에 인용된 영웅기에선 북지태수, 장료전 본전에선 노국의 상이라니 어쩌라고 싶어진다. 동탁 시절 북지태수 됐다가, 이각한테 말린 여포 따라가면서 전전한 끝에 서주에 닿았을 때 노국의 상 됐다고 보면 되려나? 그 전에 노국이면 태산 아래고 소패 위네. 장료가 노국 근처에 있었다면 노리는 건 대략 세 가지 정도로 망상할 수 있으려나? 1) 소패의 유비 견제 2) 태산의 장패 패거리 견제 3) 태산 쪽으로 연주 진입 & 연주 방면 방어. 글쎄, 노국의 위치가 재미있네. 영 엉뚱하게도 춘추전국시대의 노나라는 어땠는지 궁금해지는데.ㅋ
아, 양봉이 주둔했던 양국은 예주였지. 역시 관도대전 이전까지 예주의 세력도는 210년대의 형주처럼 뭔가 꼬여 있었나 보다. 꼬여 있달까, 슬슬 동탁의 전횡 이래 200년 까지 영천과 여남 이외의 지역은 어떤 상태였는지 헷갈리는데. 190년대 초반엔 원술이 여남 등지에서 깔짝대고, 협천자 무렵 조조가 영천 여남 정리하고, 그러다 관도대전 지난 후에야 제대로 다 평정한 건가? 장료가 그때 노국 일대를 정리했단 말이지. 일단 위나라 쪽 고참 장수들의 열전부터 모두 정독한 후에 생각해야겠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유비의 예주목 자리가 맛나는 느낌이다.
그보다 정작 찾고 싶은 건 여포 서주 시절 고순의 위치인데 기록이 없다. 으아아아
-잊지 말고 위서 임준전 필히 참고.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