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감상 : 뭐라는겨!!!!!! ㅠㅠ

나 한순간 하쿠슈전의 그거 생각했다. 페이지 양쪽이 죄다 먹칠되어 있던 그거. 하쿠슈전에선 저 악마놈이 억지 써서 좀비 행세라도 했지 법효직은 으아아아아아 OTL


이릉의 유비가 냉정을 잃은 상태였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관우가 죽은 것은 219년 12월이고 유비가 출정한 것은 221년 가을 7월이다. 천자 즉위 등등 바쁜 일이 끼긴 했지만 여하튼 촉에서는 자그마치 1년 반 동안 전쟁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융중대의 중요한 줄기는 유비가 파촉에서 장안 방면을 칠 때 뛰어난 장수 한 명은 형주에서 완, 낙양 방면을 쳐 양쪽에서 밀고 올라가는 것이다. 손권의 뒷치기로 그 형주를 잃었다. 익주 하나에 갇힌 내내 촉의 북벌이 어떤 꼴이었는지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유비는 단순히 관우의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실리적으로는 형주(랄까 형주 자체는 땅덩이가 어마어마하니 장강 이북 정도?)를 수복하고 외교적으로는 동맹의 뒤통수를 친 오에 무력행사를 해서 호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조운의 간언으로 대표되는 반대여론이 강했던 것은 삼국이 정립된 때인지라 오와의 싸움이 자칫 장기전이 되어 공멸 루트를 탈 리스크가 대단히 높았기 때문이고. 유비도 바보는 아니니 어떻게든 단기전으로 끝낼 생각이었겠지. 육손의 포텐이 제대로 터지면서 결과적으로 최악의 melt를 일으켰지만...
역사적인 얘기라면 형주 대여 어쩌고부터 합비와 서주의 우주방어에 이르기까지 그렇고 그런 논제가 많으니까 많이 떠들고 싶진 않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로망으로 먹고 사는 촉빠에게는 한중왕 선언->관우의 7군수몰과 승천->장비 암살->말도 안 된다... 죽을 때는 함께 죽자고 하지 않았다!->이릉 불놀이 루트의 장렬하고도 처절한 몰락과 도원의 義에 몸서리치는 맛인 거지 뭐. 됐고 다음 주는 아프로의 턴이다. 장판파보다 나아진 게 없으면 다음 주 이 시각에는 최작가 까는 포스팅으로 새하얗게 불태우고 있을 듯하다. 난! 진상악성막장조운빠! 나에게 공평함 그딴 것은 없지!


Posted by 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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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연 2012.02.16 0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비와 법정 둘 다 사망플래그 떴군요. 뭐 유비의 형주 남단 공격은 심적으로는 이해가 가나 그 당시 양주 쪽이 행정 지역 조정, 마초 침입, 강인 이주에 이어 하서 4군 반란 (220년 혹은 221년, 잘 기억이 안 나네요)등으로 주 행정이 전반적으로 난감 상태였다는 걸 감안한다면 아쉽긴 합니다. 더불어 222년에 장기 -> 곽회로 자사가 교체되기도 했고요. 유비가 형주 칠 걸로 차라리 이 지역을 쳐봤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더더군다나 228년 제갈량 침입 때 곽회가 취한, 곽회답지 않은 행동을 봐도 그렇고요. 228년 기준으로 봐도 옹양주 내부가 전쟁에 대한 준비 자체가 안 되었던 듯 한데요.

    뭐 후대의 입장에서 사건의 결과 다 알고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긴 합니다.

    • 양운 2012.02.16 1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대국적으로는 북쪽을 치는 게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유비의 입장에서도 간단하지 않은 선택이었겠지요. 어느 쪽이든 잃는 게 작지 않으니. 그럼에도 거기서 동오를 택한 게 유비다웠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연의의 주인공이 유비인 이유일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