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요약 : Do you hear the people sing? The song is strong, It's hot as hell bellow!!!!
제가 지금 약간 흥분한 것 같습니다. 역시 레 미제라블이라는 이야기에는 미친 파괴력이 있어요. 미리니름 잔뜩 넣겠습니다.
<오페라의 유령> 영화판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던 걸까요? 영화 제작자가 뮤지컬 쪽에서 명 제작자로 이름 높은 카메론 매킨토시 본인이더군요.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소위 4대 뮤지컬이라고 부르는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그리고 레미제라블에 다 이 사람이 제작자로 관여했습니다. 원작 자체가 워낙 방대한 이야기를 담은 데다 거기에 기반한 뮤지컬도 무시 못하는 분량을 자랑하는지라, 영화로 옮길 경우 얼마나 잘리고 바뀌게 될지 걱정이 좀 됐더랬습니다. 일부러 티져 영상도 한 편만 봤고 영화 자체에는 별 기대를 갖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럴 것까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잘 옮겼습니다. 영화의 연출을 위해 넘버의 순서를 약간 바꾸고 가사가 살짝 달라지고, 물론 노래 몇 소절은 잘렸습니다. dog eats dog는 통편집 수준이더군요. 그럼에도 그렇게 했으니까 영화로서는 보다 적절하다 싶을 정도로 괜찮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뮤지컬 쪽의 팬들이 큰 걱정 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작 뮤지컬의 본무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주제 유튜브에서 본 10주년 기념 콘서트(TAC : the 10th Anniversary Concert) 영상에 감동받고, 디비디를 지르고, 요약본으로 대강 알았던 원작 소설을 완역본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납니다. 저는 정말 기분 좋게 들떠서 극장을 나왔습니다. 좋은 영화, 감동이 있는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처럼 지금 참 행복합니다.
이제 사람마다 의견이 갈릴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휴 잭맨은 본래 뮤지컬 배우 출신이라 그런지 발장을 무난하게 잘 소화해내더군요. 티져에 깔린 I dreamed a dream을 듣자마자 갑자기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슬그머니 올리게 된 앤 해서웨이에 대해서라면, 전 이 배우의 팬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훌륭했습니다. 언젠가 포스팅으로 끄적였듯이 가수의 노래와 뮤지컬 배우의 뮤지컬넘버는 다릅니다. 가수는 노래 자체에 집중해 자신의 감정을 노래하지만 뮤지컬 배우는 하나의 극 속에 톱니바퀴처럼 들어가있는 캐릭터를 생각하고 캐릭터의 감정을 노래로 연기합니다. 마치 성우가 목소리만으로 캐릭터의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듯이 뮤지컬 배우는 노래만으로도 그런 표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를 비롯해 대부분의 배우들이 들려준 노래는 이 점에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다만 러셀 크로가 좀 아쉬웠습니다. 노래 자체는 무난한데 그게 지나쳐 평이하게까지 들립니다. 캐릭터 해석에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팡틴의 죽음 직후 대치 장면에서 자베르가 자신도 빈민 출신임을 고백하는지, 왜 마지막의 자베르가 초반의 발장과 같은 멜로디의 독백을 읊는 것인지, 왜 똑같이 I'll escape now from the world, from the world of Jean Valjean 이라고 노래하면서 발장은 새 삶으로 연결되고 자베르는 죽음으로 귀결되는지, 무엇보다도 대체 왜 자베르가 일생을 걸고 발장을 추적하는지. 이런 문제에 대해 이 영화 속의 자베르에게서는 어떤 답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브로쉬의 마지막 앞에서 보인 태도에서는 좋지 않은 의미로 충격을 받았네요.
아마도 제 안에 박혀있는 필립 콰스트의 자베르 캐릭터가 대단히 강렬했던 탓도 있겠습니다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이 영화 속의 자베르는 자신이 무엇에 대한 안티테제인지 방향을 종잡지 못한 게 아닌가 하고요. 레 미제라블이라는 이야기 속에서는 이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고통에 대응하는 행태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순응하는 것이고, 하나는 싸우는 것입니다. 순응하는 방식으로는 테나르디에 부부처럼 dog eats dog의 진흙탕 싸움 속에서 바락바락 싸우고 속이고 빼앗는 길이 있습니다. 빵을 훔친 발장도 넓게 보면 이 범주에 들 것 같습니다. 또한 범죄로 규정되는 그런 행위들을 처벌하지만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세상을 만들고 유지시키는 어떤 공식화된 규칙에 순응해 그 집행자이자 화신으로 사는 자베르의 방식이 있습니다. 자베르는 본인이 밑바닥 출신으로 온갖 더러운 것을 봤기에 거기서 탈출하는 길로 법의 집행자를 택한 것이었지요. 한편으로 싸우는 방법 또한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바리케이트 뒤에 선 아베세 학생들처럼 혁명으로 뒤집어버리는 길입니다. red and black과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은 벅차도록 뜨거운 넘버지만 그 귀결은 empty chairs at empty tables이고 turning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은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 수단의 선택에서 너무 성급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용서와 사랑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말인지요. 주교가 보여주고 발장이 평생을 통해 실천하려 애쓴 이 가치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당장 세상을 바꾸진 못했지만, 적어도 모든 꿈을 잃은 채 죽어가던 팡틴에게 마지막 희망을 줬고, 코제트를 생지옥에서 구원했으며, 헛되이 죽을 뻔한 마리우스를 살렸습니다. 법이라고 하는 세상의 정의마저 초월하는 이 가치 앞에서 평생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자베르가 자신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게 당연하지요. 그래서 발장을 놓아보냄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한 순간, 발장의 세계로부터 탈출하려면 죽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고요. 원작 소설을 쓴 빅토르 위고는 당대의 수꼴이라 할 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나이가 들수록 왼쪽으로 정치적 스탠스가 이동한 희한한 경력을 지닌 양반입니다만, 그럼에도 지향하는 가치를 위한 수단의 선택에서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보수적인 면을 끝까지 간직했더랬습니다. "비참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길은 아베세 학생들의 방식이 아니라 장 발장의 방식이라 여겼던 거지요. 저는 기본적으로 원작과 뮤지컬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때문에 자베르가 학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걸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베르는 발장의 대척점으로서 오직 발장이 지향하는 가치에 의해서만 무너진다고 보니까요. 자베르가 그간 철벽같이 수호해온 법과 사회의 유지라는 가치에 정면으로 대항했다가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깨진 학생들의 가치는 자베르에게 냉소 이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인 것입니다.
뮤지컬에서는 하수구에서 나온 발장을 자베르가 적극적이기까지 한 태도로 "놓아주는데" 영화에선 말 몇 마디 저지도 못해보고 소극적으로 "비켜서있었다"는 차이는 있군요. 여기에 영화 속 자베르 캐릭터에 대한 단서가 있을까요. 저는 좀 더 생각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 TAC의 그 파트(덤으로 자베르의 자살)가 들어간 유튜브 영상 주소를 걸겠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참 좋은 영화를 보고 나왔다는 즐거운 기분이 듭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사람들이 박수를 치던데 우리나라의 영화관람 문화에서는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지 싶네요. 이 영화에서 감동을 받는다면 하나는 멋진 뮤지컬 넘버의 덕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작이 갖는 이야기로서의 힘일 것입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는 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힘이 있습니다.
p.s. 본래 뮤지컬에 기반한 작품이라 그런지 솔로곡이 나올 때면 클로즈업으로 인물을 오래 잡는 연출이 자주 보입니다. 영화답지 않은 연출이라 그게 좀 불편하긴 한데;;; 그럼에도 곡이 아름다워서, 그리고 그 곡을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훌륭해서 그런 부분이 지루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앤 해서웨이 만세!
그리고 피날레에서 에포닌 자리에 주교님이 들어간 건 뮤지컬과는 다르지만 잘한 연출이라 생각합니다. 솔까말 거기서 왜 에포닌이 나오는지 나는 이해 못하는지라(...)
p.s.2 사실 뮤지컬과 영화에서 분량 문제로 생략된 부분 중 가장 중요한 게 아마도 발장의 마지막 시험일 거라 생각됩니다. 원작의 발장은 마리우스라는 놈팽이 딸도둑놈(...)을 인식한 순간 티만 안 냈지 아주 길길이 날뛰는데(....) 그 질투에 가까운 분노마저 이겨내고 마리우스를 구하러 바리케이트에 간 건데(.......)
p.s.3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초초초초대 장 발장 콤 윌킨슨이 주교로 출연했습니다. 위에 주소 건 영상의 발장이 이분입니다. TAC 영상과 비교하면 영감님이 많이 나이드신 게 태가 나서 좀 안타깝네요. 이 와중에 역시 초초초초대 마리우스인 마이클 볼이 하도 거구인지라, 그 양반을 업고 지하수로를 헤매는 파트 때문에 결국 허릿병이 난 콤발장, 나중에는 마이클 볼이 먹을 것을 들고 있는 것만 보면 달려들어서 빼앗았다 카더라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휴 잭맨은 울버린이니까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만.(...)
p.s.4 피날레 이야기 하나만 더. 자막을 보니 will you join in our crusade? 를 가지고 사랑의 전.. 뭐라는겨!!!!! 역자가 너무 나갔잖아!!!!! 다른 데도 아니고 피날레에서 뿜어버렸단 말이다 내 감동 돌려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