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5

어찌 사느냐면 2014.10.05 01:20

어제 리딩 판타지 쪽 지인들의 단톡방에서 말이 나오고서야 지금이 와우북 페스티벌 시즌인 걸 깨달았다. 기한이 일요일까지라기에, 마침 멀지도 않고 하니 홍대 구경을 겸해서 가봤다. 최대 10만원 한도를 잡고 가급적! 가급적 지르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 갔지만, 결국에 지를 놈은 지르게 되더라.(...) 여하간 그리하야 지른 책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은 요즘 맑스와 막스 베버 좀 제대로 공부해야 할 것 같다는 필요를 슬금슬금 느끼던 차, 사회학자인 저자(앤서니 기든스)가 맑스, 뒤르껭, 베버를 잘 요약, 비교했다는 추천을 보고 찍어뒀던 책이다. 생각보다 얇아서 좀 놀랐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내가 우리나라의 해방 직후 현대사 쪽에 대해선 이상하게도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통에 제대로 역사 공부를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역시 찍어뒀던 책이다. 해방 직후부터 6.25 사변까지 총 6권짜리 시리즈물이지만, 전권을 다 질러놓고 나서 완독하리라고는 나 자신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지라. 일단 두 권을 다 읽으면 나머지도 차차 구할까 한다.

<인간 실격>은 사회학이니 역사니 무거운 건 됐고, 이제 소설 좀 사고 싶어서 둘러보다 딱 들어와 질렀다.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같은 양반들 책을 요약본 수준으로만 아니 정독을 할 때가 됐지 싶기도 해서.

<무랑가시아 송>은... 아아, 사실 이거야말로 오늘 홍대에 가자는 결심을 하게 만든 진짜 원흉이다. 저자께서 책에 본명을 쓰셨지만 내가 아는 그분의 이름은 리딩 판타지의 無님이다. 먼저 홍대에 간 지인이 재고가 많다고 한탄을 하기에, 무님이 리딩 판타지에서 무랑가시아송을 연재하던 시절 이미 다 읽었지만 그냥 책도 한 권 갖기로 했다. 저 두께에 양장본임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인 것도 있었고.(...) 이분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모르겠다. 무랑가시아송 이후에도 단편, 중편, 장편을 조금씩 내놓으시곤 어느 순간 사이트에서 사라지셨던 것 같은데.

 

사놓고 아직도 안 읽은 책이 책장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어 전엽체 모냥으로 털 난 양심을 두고 뭔 심보로 이렇게 지름신이 심술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경제 쪽과 사회학 쪽으로 고전에 속하는 책을 읽어서 뭔가 기본 바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쭉 느끼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이런저런 핑계로 잘 읽지를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게임은 뭐 쉽게 끊어버릴 수 있는데 트위터, 오오 트위터여. 이건 왜 한 번 접하면 단 번에 십수 시간이 훅 지나가 있는 것인지?(...) 물론 트위터만 주구장창 쳐다보고 있진 않다. 타임라인이 업뎃되길 기다리며 그 사이의 자잘한 시간 동안 과제를 하거나, 연구실 일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온에어 또는 웹서핑으로 바쁘게 보내는 것이 문제다. 셋 다 컴퓨터를 켜야 하는 일들로 앞의 둘은 인생 로긴과 직결되고 뒤의 하나는 앞의 둘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짬짬이 죽이는 역할이다. 그렇구만, 트위터라는 게 나에게는 흡연자의 담배 같은 것이었구나. 과제와 연구실 일에 치여 다 죽어가다 흡연자가 잠깐 숨 돌리겠다고 주머니 뒤적이며 나가는 것처럼 내 살그머니 들어가는 곳이 트위터가 되었구나. 그러니 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흡연자들이 매번 종국에는 장대하게 실패할 거라 예견하면서 금연을 결심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던 게다.

답이 없다. 금연에 성공한 사람은 그렇게 독종이라는데 나는 그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니 몇 분 간 트위터 한 대 빨며 멍 때리는 것으로 어떻게든 하루씩 버티는 수밖에. 그렇지만 필요를 느끼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면, 금연자들만치 결심을 굳혀야만 할 것이다. 기본 바탕도 없이 무슨 공부를 하겠는가.

 

 

 

...근데 굉장히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에 팔자에도 없던 멀티태스킹과 열심히 살기를 강요당하는 삶이 계속되는 한 금트윗이란 내일은 운동해야지 내지 내일부터 담배 끊어야지 급의 자조가 될 듯.

 

 

 

p.s. 아, 그리고 저 다섯 권을 모두 합쳐서 5만 가량 밖에 안 썼다능(...)

 

p.s.2 반공 교육을 받은 우리 세대는 6.25를 '사변'이라고 불렀다. 문득, 이것도 4.19 '의거'와 '혁명' 사이에 미묘한 의미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검색해봤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선 "事變"을 두고 풀어 쓴 의미 중에 "3. 한 나라가 상대국에 선전 포고도 없이 침입하는 일"이 있었다. 확실히, 북쪽에서 일요일 새벽 아무 선전포고 없이 밀고 내려왔으니 저 정의가 정확하긴 하다는 생각은 든다. '사변'이라는 단어가 외국의 유사한 사래에 쓰이면 아마도 중립적으로 사전적인 뜻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변'이라는 단어가 '6.25'라는 단어와 결합되면 절대 사전적인 뜻으로 한정해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어감이 어딘가 미묘하게 확장되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 같다. 기분이 묘하다.

 

 

 

Posted by 양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