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가치 있는 잡담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불태우는 데엔 삽질이 최고인 법.


82nd down <친구 찾아 삼만리> 중 일부.
젖어도 변함 없던 그 삐죽머리가...


히루마가 머리를 내린 모습은 아이실드 동인계에서 심심찮게 다뤄지는 소재고, 저조차도 몇 번 시도는 해 봤습니다. 낙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씩은 해보신 줄로 사료됩니다. 녀석이 머리를 내리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하니까요. 그 정도로 그 녀석의 삐죽머리는 헬맷에 눌리든 물에 젖든간에 녀석의 자존심이 그렇듯이 꼿꼿하니 서서 처지는 법이 없었죠. -_-; 헌데 220th down에서 무라타 씨가 아예 직방으로 보여주셨지 말입니다. -_-;

그 정도로 폭싹 내려앉은 것 말고, 살짝 처지는 정도라면 세 장면 정도 기억나네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6th down <필드를 제압하라>, 133rd down <기적같은 희망>, 197th down <0.1초>의 한 장면입니다.
세나가 코이가하마전에서 '운동화' 신고 역주행한 장면 - 여기선 거의 '울상'이었죠, 히루마 녀석. 믿었던 놈이 역주행이라는 바보짓을 한 데다 신발 고르는 데서 또 실수를 해버려 하마터면 질 뻔 했으니.;
세이부전 직전 비 내리는 그라운드에서 1학년들이 자기들끼리 고 크리스마스볼을 외치는 걸 멀리서 쿠리타와 함께 보고 있던 장면.
그리고 197th down에서 아곤을 제치기 직전 잠깐 지나가는 회상장면. 이 정도?

첫번째 경우는 뭐 -_-; 코바야카와 세나란 녀석이 맘만 먹으면 저 히루마 요이치를 물먹여 버리는 건 일도 아니란 걸 단적으로 증명하는 빛나는 장면 -_-;; 이다보니, 그만큼 세나에게 기대가 큰 히루마가 심적으로 타격(그 녀석도 타격을 입는구나 랄까;;;)을 입은 걸 보여주기 위해서일 테고. 두번째 경우와 세번째 경우는 비가 오는 상황이었죠. 두번째 경우에는 녀석이 1학년들에 대해 말로는 표현 못할 기분을 느꼈다는 걸 표정을 볼 수 없는 뒷모습만으로도 느끼게 하려고 머리가 좀 처지게 표현한 게 아닐까 싶고, 세번째 경우는 히루마의 부단한 노력을 상징하는 장면이니 역시 쌩쌩하게 빳빳한 머리보다는 슬쩍 처진 편이 더 어울린다 싶습니다.

어쨌든 위에 나열한 장면들만 봐선 대놓고 머리가 눕혀진 첫번째 장면을 빼면 과연 평소와 다르긴 한 건가 싶을 정도로 변화가 거의 없는 게 녀석의 삐죽머리지요. 그런데 그 타고난 건가 싶던 삐죽머리가 어째서 220th down <진흙투성이 지상전>에선 완전히 내려간 걸까요.
저는 그게 단순히 팬서비스(히루마가 대상이면 뭘 하든 서비스로 보이는 거냐, 나는...?) 차원에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히루마의 삐죽머리는 적이든 아군이든 누구 앞에서나 강해 보여야 하니까 녀석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꾸미고 다니는 것이란 설정이기에 조금이라도 처지게 표현한다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의 장면 역시 작가들이 일부러 그렇게 그린 게 아닐까 합니다.

히루마가 10대 소년으로 보인 씬을 생각하자니 유명한 히루마모씬들부터 줄줄이 떠오르는 걸 보면 저는 역시 막장입니다. OTL 그런 장면이나 자는 쿠리타에게 와사비 -_-;; 를 뿌리는 등 장난 심한 장면을 제외했을 때, 제가 히루마를 소년답다고 생각한 장면은 도쿄 스타디움 밑에서 맹세한 일이나 쿠리타를 신류지에 밀어넣은 일 등 마오 데빌배츠가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피소드 뿐입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우는 소리 한번 하는 일 없이 초인적인 의지로 별별 일을 떠맡아 해치우는 이 꿋꿋한 녀석을 열여섯 내지 열일곱살밖에 안 된 소년이라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컨셉 자체도 워낙 길쭉길쭉한 이미지다보니 얼굴형도 길쭉하고, 해서 보통의 경우에는 20대 후반까지도 쳐줄 수 있을 만큼 어른스러워 보이지 않습니까. 뒤늦게나마 녀석이 89 내지 90년도생일 거란 걸 떠올리고 제가 얼마나 충격 받았는지는 하늘만이 알 겁니다.-_-; (무사시가 89년생이란 것도 이 정도로 충격적이진 않았습니다 -_-;)

그런데 220th down의 저 장면은 평소 녀석의 이미지나 바로 직전에 현재 신을 이길 방법은 없다고 순순히 인정하던 장면과 비교할 때- 왠지 어려 보인다고 느낀 게 저 뿐일까요. 저 비죽거리는 표정과 더벅머리가 어우러지니까 정말 소년다워서 세나와 비슷한 세대라는 게 믿겨지지 않습니까.

무스 정도가 아니라 초강력본드로 굳힌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빳빳한 머리가 항상 여러 겹으로 페이크를 둘러 본심을 드러내지 않던 캡틴으로서의 히루마를 상징한다면, 완전히 풀어져내린 저 머리는 현실주의자이면서도 꿈을 쫓는, 그야말로 소년다운 녀석의 본질을 어떤 페이크도 두르지 않고 고스란히 '날것'으로 드러낸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 장면은 아이실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힐 가치가 있습니다.





p.s. 1 여담이지만 혹시라도 아이실드에 히루마가 미식축구를 하기 전 - 즉 10대 초반 이하이던 시절의 모습이라도 나온다면 저것 비슷한 머리모양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p.s. 2 그러고 보니 저녀석, 인터뷰 에피소드에서 자기 장점을 '이기는 것'이라고 대답했죠. 아곤 녀석이 '무적인 것'이라고 대답한 것에 반해서.
 

Posted by 양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