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몬 고등학교 2학년. 타고난 운동치라는 이유로 초등학교적부터 오로지 입시에만 매달렸던 인생.


<아이실드21> 11권에는 노력하는 범재 두 명의 엄청난 좌절이 들어있다. 신 세이쥬로와 호소카와 잇큐를 이기겠다고 선언하고도 최종적인 신체능력은 그들을 뒤쫓지도 못한 사쿠라바 하루토는, 그런 자신의 한계를 잘 알면서도 천재를 이기고 일류가 되고 싶은 자신을 부정할 수 없어서 절규했다. 그리고 유키미츠 마나부. 사쿠라바처럼 일류가 되겠다는 야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했던 자신을 바꾸고 싶어서 입부해 '주전'이 되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데스마치를 완주했지만 현실은 냉정해서, 히루마는 정식부원인 그를 능력이 딸린다는 이유로 보결로 남겨둔 채 부원도 아닌 농구부 조력자들을 주전으로 기용했다. 결국 도쿄대회가 다 끝날 때까지 유키미츠는 벤치에만 머물러야 했다.

사쿠라바는 또다른 노력하는 범재 타카미와 손을 잡음으로써 일류들과 나란히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유키미츠는? 17년동안 책상 앞에만 붙어있던 녀석이 잠깐 맹훈련한 걸로 달리기나 근력에서 운동하던 녀석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유키미츠가 따낼 수 있는 포지션은 리시버 정도. 따라서 이녀석은 쿼터백 히루마와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만 필드에 설 수 있다. 그래서 히루마는 앞이 깜깜하다고 혀를 차면서도 기다려줬다. 타카미가 쿼터백으로서 빛을 발하기 위해 6년 동안 사쿠라바의 성장을 기다린 것처럼 히루마는 유키미츠가 그만이 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진 리시버로 성장하도록 6개월을 기다려줬다. 운동에는 도움이 안 되는 책상머리에서의 17년 인생을 인정하고 오히려 유키미츠의 무기로 바꿔주면서까지.



중고등학교 시절 어지간히 운동을 싫어하지 않는 이상 잠깐의 치기라 해도 운동부에 들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행하지 않는다. 입시 문제 이전에, 운동부 들어간다고 다 주전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주전으로서 시합에 나가 뭔가 활약을 해야 재미있지, 연습과 훈련만 반복하는 건 지겹고 고통스런 일이다. 그 훈련을 다 소화해낸다 해도 보통 사람은 주전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얻는 것이 적거나 얻을 가능성이 낮다면 누구라도 일찌감치 손을 떼며, 그게 현명한 것이다.

유키미츠는 보통 학생에도 못 미치는 운동신경을 가졌다. 그런데도 자신을 바꾸고 싶다, 자신도 뭔가 해내고 싶다는 열망에 이녀석은 그 험한 미식축구를 하겠다고 나섰다. 어중이떠중이를 떼내려고 실시한 입부테스트에서 이녀석은 토할 정도로 힘들어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버텨냈다. 아직 시간이 있는 1학년도 아니고 입시의 압박이 슬슬 다가오는 2학년인데도 자신에게는 거의 가망이 없는 것에 도전하겠다고 나서서 근성을 보인 이 용기있는 녀석에게 히루마는 얼음 한 조각으로 보답했지만, 그건 유키미츠에 대한 동정의 표시가 아니다. 이녀석도 시간을 들이면 쓸만한 선수가 될 거란 것을, 유키미츠 마나부의 가능성을 인정해준 것이었다. 그래서 히루마는 냉정하게 그를 기용하지 않았다.

세나와 몬타는 데이몬 데빌배츠 전원이 모일 때까지 데이몬의 시합이 계속되도록, 반드시 계속 승리하겠다고 멀리서 외치며 유키미츠를 격려했다. 달리 말해 데이몬은 유키미츠와 당시 팀에 없었던 무사시가 모두 필드에 서게 될 때까지 결코 져선 안 된다는 각오의 표현이었다(그렇다고 무사시가 돌아온 세이부전에서 바로 져버리냐...?;;). 자기 본심을 표현하는 데서는 엄청나게 말수 적은 히루마가 마모리에게 한 말은 저런 의미였다. 데이몬의 패배는 곧 유키미츠의 꿈도 끝나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히루마는 유키미츠를 위해서라도 아직은 전력에 보탬이 되지 않는 그를 가차없이 제외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데뷔한 신류지전에서 유키미츠는 훌륭하게 그 기대에 보답했다.

데스마치에서 남의 도움을 받자 자신이 쓰러진 위치로 돌아가 다시 뛰고, 보결 결정에 절망하면서도 아직 완전히 끝장난 건 아니라며 울면서도 혼자 훈련하고, 도쿄대회3위가 확정되어 기뻐하는 팀원들의 등을 내내 벤치에서 지켜보며 자신도 그 자리에 서고 싶어 눈물 흘리던 이녀석은, 정도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사쿠라바처럼 욕심있는 녀석이다. 적성과 취향이 동일한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보통은 자기 적성이 뭐든 간에 싫어도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일을 택한다. 반대로 자신이 잘 하는 건 따로 있는데 하고 싶은 건 또 달라서 애타는 경우도 있다. 사쿠라바가 그랬고, 유키미츠가 그렇다. 여기서 길이 분명한 쪽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것을 택해 스스로 가시밭길을 가는 그 욕심은 상식적으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 끝에서 뭔가를 달성한다면, 그것은 비록 객관적으로는 가치가 낮더라도 이들 자신에게는 그간의 고생과 눈물을 한꺼번에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무거운 것이리라.

아이실드에는 독자가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캐릭이 많지만 특히 유키미츠는 뭔가를 하고 싶어 했지만 여러가지 제약이 걸린 걸 보고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사람들에게 심적으로 보상이 되는 녀석 같다. 이녀석의 성장은 목표로 하는 대상이 바로 근처에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과 비교해보는 사쿠라바처럼 치열하진 않다. 원래 재능이 없었으니까 폭발적으로 성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뒤쳐져 있는 자신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앞을 쫓는 모습은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곤과 잇큐가 유키미츠를 쓰레기로 판단하고 관심에서 빼버린 순간 히루마가 지어보인 큼직한 웃음은 '네놈들은 낚였다'란 의미도 있지만, 신류지전을 내내 관통하던 주제인 '천재를 극복하는 범재'가 처음으로 결과를 보이게 된 순간이자, 그동안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인정받을 능력이 없던 녀석이 이제는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걸 공개하면서 그가 느낀 환희의 표현이기도 하다. (두뇌는 천재에 약육강식의 신봉자이며 그 아곤과 어울려 다녔던 히루마가 어째서 '쓰레기'들에게 이토록 애정을 갖게 된 건지는 역시 아이실드가 끝나야 알게 될 것 같지만..) 필드 위에서 유일하게 히루마와 지략이 통하는 유키미츠는 쿼터백으로서의 히루마를 살려주는 리시버이자 몬타의 말마따나 숨겨둔 보물 MAX다. 단언하건대 신류지전 전이었다 해도 누군가가 히루마 앞에서 유키미츠를 비웃었다면 히루마는 주저없이 처참하게 갚아줬을 것이다.



데이몬 데빌배츠
등번호 16 스프린트엔드/수비 포지션 없음
40야드대시 5.6초



p.s.1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실드 작가분들은 이 가진 것 없는 범재 녀석들을 정말 아끼는 것 같단 말입니다. 사쿠라바의 성장은 녀석이 다른 팀인데도 주인공 팀 선수들의 성장 못지 않게 오래도록 공을 들여 보여주고, 유키미츠는 히루마도 못 해본 단독 센터컬러를 따냈지요. 유키미츠 짜식, 네녀석의 데뷔와 첫 득점은 몇 번이고 축하하고 싶다!

p.s.2 세나 이후 데이몬 팀원들 잡담을 적다 보니 깨달은 것 하나 : 누구에 관해 잡담하든 히루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세나야... 인기투표 1위는 내주어도 책 제목과 주인공 자리는 사수해야지.;;;

p.s.3 그렇군요. 저는 사실 데이몬 선수들 이야기를 빙자해 히루마 이야기만 줄창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군요.(...)
Posted by 양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