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블로그에다 꼭 지르고 싶었던 한 마디 :
운차이가 인물은 인물이구먼. 용 됐네....;
라기 보다는, 정확히는 후치와 함께 마법의 가을을 맞았던 일당들이 죄다 엄청 비범했다는 게 정확하겠지만. 그 시절로부터 대략 700~1000년 정도 후가 배경인 듯한 세상에서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저 대현자 칼 헬턴트에 용맹무비함과 비할 바 없는 지혜(풉)를 겸비한 샌슨 퍼시발에 진정한 왕 길시언에 이분이 떴다 하면 드래곤조차 거북함을 느끼는 전설의 엘프 이루릴에, 심지어 아프나이델은 이 단편(장편이겠지 -_-;)에서 문제의 소재가 된 그 물건을 만듦으로써 암파린 씨의 예언 실현에 일조하는 한편 바이서스의, 아니 인류의 앞날에 하나의 전환을 가져오기까지 하고. 와우 역시 톱메이지;;;
...그래 다들 능력자들이었으니까 전설이 될 법도 하다. 그런데 운차이는 정말 예상 밖이었다고. 우리의 전향간첩은 아예 역사를 하나 만들어버렸더구만. 그렇다 쳐도 뭐랄까, 나는 운차이가 이런 계통으로 야망이 있는 인물이란 느낌은 못 받았는데. 이 친구는 워낙 어려서부터 고생했던 고로 네리아랑 어디 조용한 시골에 정착해 오순도순 조용히(..가 가능할까?;) 살다 가는 소박한 삶을 바라지 않았을까 생각했더랬다. 게다가 시니컬하기로는 영도월드 전체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는 들 인물 아닌가. 그런 사람이 이런 쪽으로 야망을 품을 리 없는데. 그럼 아들이나 손자 대에서 시작된 건가? 여하간 후치가 서쪽으로 한 번 놀러 오랬더니 아예 눌러 살았다는 것 하나는 인증 꽝꽝. -_-; (더불어 장담컨대, 그곳의 명가 중에는 필시 하슬러 가가 있을 것이다. -_-;)
뭐어,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미리니름을 피하기 위해 일단 운차이 이야기로 반 이상을 채웠는데, <그림자 자국>에서는 이 친구를 그다지 신경 쓸 것 없다. 그저 그 사람들은 그렇게 되었구나 하고 디알과 퓨쳐워커의 추억에 빠지는 양념 정도로 생각하는 편이 좋다. '지금'은 '지금'이다.
후반에 가서 퓨쳐워커 초회독 때 느꼈던 것 이상으로 시간감각이 꼬이는 기분을 느꼈던 터라, 두세 번은 다시 정독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감상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묘하다. 이루릴이 견뎌와야 했던 시간의 무게가 나에게는 확실히 전달되지 않았다. 그림자 지우개가 가진 특성을 생각하면 그것을 가장 끔찍하게 여겨야 할 인물은 이루릴이다. 이루릴은 영원의 숲에서 분열된 자신에게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한 인물이지만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디알의 명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천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마음에 담아둔 사람들을 하나도 잊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그림자 지우개의 특성과는 상극 아닌가. 아일페사스는 이 물건의 위험성을 그저 대 드래곤병기로 오용될 수 있다는 우려 정도로 여길지도 모르겠으나 이루릴이라면 자신에게 그걸 사용한 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존재가 파괴당하는 충격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참고로 드래곤인 드래곤로드는 저 명제를 결코 이해하지 못해 칼부터 시작해서 꼬꼬마 후치놈한테까지 깨졌다. 펫시라고 기본적인 면은 다를 리 없다 -_-). 그런데 그런 느낌이 들진 않은 건 내가 정신이 없었기 때문인 건지, 놓친 건지. 아무튼, 복습이 절실하다. 기존에 타자가 남긴 단편들은 장편에 비해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주제에 바로 다다를 수 있었는데 이건 단편의 껍질조차 벗어던진 장편 -_- 이다보니. 주제도 아직 잡히지 않는다. 장편 쪽을 읽을 때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나저나 드래곤라자가 엄청나게 땡긴다. 그 친구들이 정말 그립구나.
p.s. 1 그림자 자국의 주제와는 상관 없지만, 양국간의 전쟁은 격세지감 이상의 뭔가를 느끼게 했다. 할슈타일의 죄가 크다. -_-;;;;;
p.s. 2 제레인트. 역시 템빨이었던 거야? ㅠㅠ
p.s. 3. 핸드레이크는 요즘 뭐 해요(....)
p.s. 4 엇 그러고 보니 진짜로 암파린의 예언이 다 들어맞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