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긴 구름 흩어진 자락 아래

회색빛 대지를 덮은 흰 눈 위로

형벌의 바람 속을 쉼없이 달려가는

이리는 푸른 혼을 가졌다.

 

이토록 가소로운 세상, 이슬 속에 담긴 천년.

흩어진 웃음 조각. 돌아보지 않는 눈동자.

이지러진 달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이리는 푸른 혼을 가졌다.

 

어제 난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어질더분한 세상에서 묻은 때를 씻고

대지의 머릿돌 위에 서도 더 높은 곳을 찾는

이리는 푸른 혼을 가졌다.

 

지나온 길에 자취를 남겨 무엇할까.

떠오른 먼지 가라앉으면

피투성이 발자국도 사라질 테지.

먼지는 언제나 너무 많다. 너무나도‥‥

 

달려온 길에 흔적은 남겨 무엇하리.

하얗게 드러난 뼈다귀 위로

은린의 물방울이 물거품치면

이름은 언제나 부질없다. 언제라도.

 

지는 태양은 다시 떠올라도

낙엽 떨어진 나뭇가지에 새잎이 돋아도

쓸쓸한 바다에 물결은 한이 없어도

죽은 다음은 망각뿐. 안 죽을 건가?

 

마지막에 떠올릴 기억은 필요없다.

수만년의 돌에 백년을 새기지 않는

터져버린 심장으로 맥박치며 달리는

이리는 푸른 혼을 가졌다.

 

-<폴라리스 랩소디> 中

이영도 씨는 글도 잘 쓰고 농담도 잘 하고 노랫말도 잘 지으십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 폴랩에 등장한 이 노래입니다. 무려 킬리 선장 반주에 벨로린과 휘리의 격지자간 실시간 합창으로 선보였지요(???).

드래곤 라자는 주인공인 후치 자신이 바드 역할이라 많은 노래가 등장했고(찬조출연 : 네리아, 엑셀핸드, 일스의 이름 없는 견습기사, 길시언, 시오네, 제레인트 뭐 이리 많아-_-;) 퓨쳐 워커에서는 무려 파하스가 직접 등장해 아이야 이켈리나의 구두장이 믹 더 빅을 멋드러지게(는 아니겠죠? 쳉과 파의 반응을 보건대;) 불러제낀 데다 켄턴 시와 데스나이트 간의 무시무시한 합창 대결도 있었죠. 폴라리스 랩소디는 첫장부터 돛대에 묶여 살아난 선원의 뱃노래(그거 어디가 뱃노래야)로 시작하고 희대의 가수가 둘이나 등장하지요(무려 대륙이 스테이지였습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나가라는 종족의 특성 때문인지 륜의 고성방가(...) 말고는 노래랄 게 없습니다만. 피새에서는 노래가 등장하기는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적어도 저렇게 줄을 바꿔야 하는 노랫가락이 나온 일은 없다고 기억합니다.;

노래는 희노애락의 어느 감정이든 실어내는 것이라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상품으로 포장되어 나오는 대중가요나 뭔가 심오한 것이 담겨있는 것 같은 클래식 같은 것만이 노래인 건 아닙니다. 조막만한 어린 아이들이 뭐에 열중하다 흥에 겨워 흥얼거리는 왱알왱알만 들어봐도, 귀가 있고 성대가 있고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노래를 부르는 재주를 타고나는 것 같습니다.

어마어마한 비밀(!)을 품은 물레방앗간 처녀의 노래도, 오십명의 꼬마들과 대마법사 펠레일 같은 따뜻한 노래도, 구두장이 믹 더 빅 같이 유쾌상쾌엽기발랄한 노래도, 전설이 되어버린 이들을 기리는 노래도, 제레인트가 죽어버린 줄 알고 그를 위해 지은 애가도, 길시언이 취기가 돌아 흥얼거린 노래도, 신을 경배하는 경건한 찬가도, 벨로린과 휘리가 부른 저 가없이 고고한 이리의 노래도, 아델토가 블러제낀 의식 같은 노래도, 데스나이트의 저주를 부르는 노래도, 아라짓 전사의 비장미 넘치는 노래도, 모두 이영도 씨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들 개개인이 이미 지니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 드라클에 걸렸던 이영도 협주곡 공연안내(http://cafe.naver.com/bloodbir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709) 여러분을 환상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잠깐, 연주자에 백파이프의 딤라이트를, 특별게스트에 켄턴 시립 영창(倉) 합창단도 넣어줘엇!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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