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雨)시계

어찌 사느냐면 2008. 11. 27. 23:08
아침 나절 내내 비가 왔다.
비는 궂은 날씨의 대표다. 이런 날에는 지붕 아래에 있는 것이 상책이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평소 같으면 동네 꼬마들이 떼를 지어 달리며 수십 데시벨을 가볍게 넘기는 괴성을 질러대야 할 거리가 오늘따라 조용한 것이다. 창문을 조금 열고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과 창문이 멀어 바깥은 보이지 않았다. 빗방울이 단단한 것을 두드리는 소리만으로 아직 비가 오고 있다는 걸 짐작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단조로운 듯 하면서도 멋대로 리듬을 타는 그 소리를 쫓다가 늘어놓은 일거리들을 놓아버린 지 어느덧 몇 분, 십 몇 분. 그 순간 내 시계는 꽤 느리게 간 모양이었다. 같은 시간 동안 누군가의 시계는 숨 막히도록 폭주했겠고, 또 누군가의 시계는 지겨우리만치 늘어졌겠지만, 내 시계로는 빗소리를 헤아리느라 숨 몇 번 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같은 시간을 다른 시계로 살아간다. 아마도 그 순간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집중했느냐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 하나를 시계의 모래알처럼 생각하고 보니, 상대성이론은 묘한 데서 들어맞는 모양이었다.
Posted by 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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