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꽤 감정적인 편입니다. 뭐가 뭔지 잘 모르면서, 거대한 태극기 앞에서 최루탄 쏘지 말라며 웃통 벗고 달리던 청년의 사진 한장만으로도 금방 찡해지는 그런 녀석이지요. 해서, 조금은 각오하고 갔습니다.
제 감정선은 금남로가 피크였습니다. 클라이맥스인 전남도청에서는 오히려 저기서 저런 장면이 적합한 연출인가 하는 식으로 상당히 냉정하게 보고 있더군요. 저 자신에게 좀 놀랐습니다. -.-;
돌아오는 길 내내 그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왜 가장 비장해야 할 전남도청에서는 오히려 냉정해진 건지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영화를 보던 중에는 관객들 사이에서 뒤에서도 들릴 만큼 흐느껴 우는 소리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금남로 학살과 직후의 합동장례식 장면에 한정되었지, 역시 전남도청에서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느낀 감정선이 특이한 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 난 왜 영화보러 가서 관객의 반응에나 집중하고 있었지.-_-;
여하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영화는 평범한 시민인 민우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철저하게 평범한 시민들을 따라갑니다. 그러니까 관객도 주요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한 채 이야기를 따라가야 어떤 감동이랄까, 감정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전대갈이 왜 공수부대 씩이나 투입해가며 광주를 쑥대밭으로 만든 건지, 왜 미국은 수수방관했는지, 어쩔 수 없이 가해자 측이 된 사병들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학살을 자행한 건지, 시민의 입장에서는 타자인 자들에 대해 거의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도시 하나가 고립된 채 시민들을 지켜야 할 국군에 의해 그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상황의 불합리함, 억울함을 목이 부서져라 외칩니다. 그 감정이 폭발하는 게 금남로 사건입니다. 상황의 불합리함은 굳이 논리적이고 복잡한 설명이 없더라도 손쉽게 관객에게 전해지며, 감정이입 또한 강렬해집니다.
하지만 그 분노가 저항의지로 바뀔 무렵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예비역대령이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그 날의 피해자인 평범한 시민들의 시선을 중심으로 합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심지어 많이 배웠을 신부조차도 순박하리만치 '뭔가 잘못되었다.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라는 것만 알지 왜 그런지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세상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유일한 시민인 예비역대령이 등장했습니다. 여태까지 시민들의 순수한 감정에 의지해오던 내러티브에 갑자기 방향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등장한 겁니다.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던 중 갑자기 이렇게 하자 하고 명백하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것-예비역대령의 경우에는 군인정신이 아닐까 합니다-이 끼어드니 생뚱맞지요. 저항하고자 하던 시민들의 의지는 십분 이해할 수 있고 체계적인 조직이 있어야 군대라는 거대조직에 어느 정도 맞설 수 있다는 것도 맞는데, 금남로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는 영화가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예비역대령은 어쨌거나 주인공이 아니며 이야기의 중심은 끝까지 평범한 시민들이어야 하기 때문에, 예비역대령의 '방향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면 곤란합니다. 해서 그가 사건의 중심을 이끌게 되는 전남도청에서도 결국은 죽어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감정이 주를 이루게 되는데, 이 무렵의 관객은 이미 순순히 시민들의 감정을 따라갈 상태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닐까 합니다. 뭔가를 알고 있고 생각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자꾸 들리니까요.;;;
제가 잘 따라가다가 전남도청에서 헤맨 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뭐 그건 부차적인 것이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그 두 마디겠지요.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 그렇게 희생된 이들의 피가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북녘과는 달리 제대로 민주주의 국가라고 세계 어디에 대고 말해도 부끄럽진 않을 정도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만, 그 역사가 제대로 청산된 건 아니니까요.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들이 폭도가 아니었다는 건 이제는 상식이 되었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일은 대한민국 헌법 제 1조가 (자유)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을 말하는 한, 아니 인간의 존엄성이 부정되지 않는 한 계속되어야 합니다. 죽은 아버지 곁에서 목놓아 울던 꼬마의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강풀 25년>도 영화화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습니다. 문득, 그 작품의 경우에는 <화려한 휴가>와는 반대로 감정이 꽤 절제되다가 한번씩 쾅쾅 터뜨려주면서 진행해야지, 안 그러면 허술한 신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건을 다루는 범위와 바라보는 시각의 수 자체가 다르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거 정말 제대로 영화화될 수는 있을까요? 아직은 이십구만원이니 일해 공원 따위 망언이 나오는 세상인데. 그 작자들을 제대로 벌하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윗줄에서 몸을 사린다는 소리 아닙니까, 선거철 국민의 표보다 더 두려워 하면서요. -.-;
p.s. 엔딩 크레딧 끄트머리의 도움을 준 이들 목록 맨 마지막줄에 차인표라는 이름이 있던데 그거 제 눈의 착각입니까? 설마 우리가 아는 그 차인표 씨? 아니 언제 어디서 등장하신?;;
p.s. 2 광복 이후 한국사는 그야말로 격동 50년, 아니 이젠 60년인가;; 아무튼 그런지라 제법 창작물의 소재가 될 사건사고들이 많습니다. 일본이 메이지 시대를 창작의 소재로 삼는 건 영국이 빅토리아조를 소재로 삼는 것 만큼이나 어딘가 지난날에 대한 향수와 현재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란 느낌이라 가끔은 부럽기도 합니다만 -_-; 한국도 과거를 착착 정리해서 봐라,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다 극복하고 잘 산다 라고 창작물을 통해 말할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랍니다. 여하간 연대표 하나만 노려보다가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람은 없지 말입니다.
p.s. 3 방금 확인하고 왔는데, 차인표 씨가 카메오 출연하는 거 맞다고 합니다. 진우를 비롯한 고등학생들이 데모한다고 몰려나갈 때 가로막던 선생님들 중 한 분이라더군요. 이런이런;
조조로 다녀왔습니다. 제 감상이야 별 거 없습니다만, 미리니름이 될 지도 모르니까 접어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