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이들의 지옥으로 이루어졌군요.
-<웃는 남자>, 빅토르 위고

이 달 초 쯤의 일이다.
신촌에서 신도림 방면 외곽순환선을 탔다가 운 좋게 앉을 자리를 얻었다. 얼씨구나 앉아서 가다 보니 합정 쯤에서 옆자리가 비고, 30대 쯤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앉았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데에 골몰해서 주위가 듣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목소리가 조금 컸다.
그들은 종부세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로 말하는 쪽의 남자는 기왕이면 종부세가 폐지되었으면 좋겠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관여하는 일이 해결되어야 혜택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종부세가 어찌 되든 자신은 속된 말로 개털이 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떠들었다. 주로 듣는 쪽의 남자는 그의 이야기에 대충 맞장구를 치다가 상대편의 아버지가 관여한다는 그 일에 대해 물었다. 뭔가 재개발대상인 부동산이 있고, 시끄러운 측의 아버지는 그 부동산에 지분이 있었다. 이쯤하면 무엇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지는 대충 감이 잡힌다. 그 땅에서 현재 7, 8평짜리 땅을 차지하고 우글거리며 살고 있는 거지새끼들 -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 이 물러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싹 밀어버려야 하는데- 라고 말하며 남자는 낄낄 웃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는 개새끼 소리가, 아니 겁쟁이라서 소리로는 아니고 입모양으로, 튀어나왔다.

재개발이 가져오는 이득 내지 철거민의 실상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내가 거의 알지 못하는 영역이며, 관심도 희미하다. 우선 내가 철거민이 되어본 적이 없고 철거민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할 땅을 재산으로 취득했거나 장래 취득하기로 되어있는 게 아니니까. 어떤 데선 철거민들이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며 일부러 물러나지 않는다든가, 전경한테 새총으로 볼트를 날리더란 이야기도 일정부분에서 팩트는 팩트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취득할 시 종부세 대상이 될 부동산을 갖게 될 사람보다는 7, 8평짜리 집에 우글거리며 산다는 사람에 더 측은한 마음이 기운다. 남자의 수다 속에 등장한 철거민들이 그런 비상식적인 폭력을 행사한 건 아니라서? 그런 '일부'와는 다르니까? 아니, 엄청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그 사람들, 재개발되면 어디서 어떻게 살까? "서울" 어디쯤인 것 같은 데서 밀려난 그 사람들이 보상받은 돈으로 살던 곳 근처에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재개발대상이 될 만큼 낙후된 곳에서 겨우 7, 8평, 내가 사는 원룸보다 조금 큰 데서 온 식구가 부비고 자는 사람들이? 내가 그 땅의 취득자라면, 물론 내가 가진 합법적인 권리 앞에서 비켜나질 않는 그들이 참 거북하고 불편하겠지. 하지만 사람을 거지새끼라고 부르며 불도저로 밀어버려야 한다고, 웃으면서 말하진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강제력으로라도 그들을 내보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의 합법적인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 어떤 부끄러움이 있을 이유는 없으리라. 그런데 참 이상한 노릇이다. 언제부터 땅에 경계가 생기고 절대적 . 배타적 소유권이 설정되었는가? 그게 땅이 지구상에 생겼을 때부터 존재했던 것인가? 살아있는 동안 생존에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쓰면 족할 양을 넘어서는 땅까지 차지하고, 자신은 살지도 않는 그곳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을 축출하며 오히려 으름장을 놓아도 된다고 법과 공권력으로 인정하게 된 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가? 법학도로서 해선 곤란할 말이지만, 나는 이게 정말 이상하다. 의문만 가질 뿐 해결에 대해선 적절한 생각을 내놓지 못하기에 결국 자신없이 목구멍 아래로 밀어넣어야 하는 풋익은 생각들. 그렇지만 기분은 뭔가 일이 잘못된 것처럼 거슬린다.

<웃는 남자>를 읽다 보니 상권 거의 끄트머리에 첫줄에서 인용한 문구가 등장했다. 그 직전까지 위고 대선생께서 펜이 닳고 잉크가 마르도록 비아냥거린 '상류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간결명료하게 응축하는 한 마디였다.(그러니까 이 한 마디 적으려고 장장 200페이지에 걸쳐 수다를 떤 거쇼? 하여간 영감님이 기력도 좋으셔라! -ㅅ-;)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1프로의 국민만을 대표하는 어떤 당이 아니라 그 때 그 지하철에서 다 들으란 듯이 수다를 떨던 남자가 떠올랐다.
그 남자도 결국에는 자신의 능력에선 아무것도 기대하지 못해 자기 아버지의 땅놀음에 기대어 미래를 바라보는 처지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본인이 그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비웃는 김에 가난한 사람들까지 비하한 게 아닐까 싶다. 결국 그 1프로에 들지 못하면 똑같다. 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Posted by 양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