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 무렵이었다.

밥값과 절대로 비례하지 않는 음식의 질에 대해 투덜거리며 학관 2층 식당에서 내려오던 중, 휠채어를 탄 학우를 발견했다. 지상에서 학관 2층(실질적으로는 1층이지만)까지 곧바로 이어진 계단 근처에서 그 사람은 뭔가 난처한 기색으로 통화 중이었다.

휠채어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한테 눈길이 간 건 밥 먹으러 올라갈 때도 그곳에 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이 있는데 만나기로 한 사람이 늦더라는 식의 평범한 상황이라면, 그 학우가 몇십분을 거기 있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계단을 밟아 내려가던 중 그 학우가 대체 어떻게 학관 2층 앞에 있었던 건지 의아해졌다. 우리 학교 학관은 식당이 몰려 있어서 학생들이 가장 자주 다니는 건물이지만 엘리베이터도, 휠채어용 통로도, 계단 없이 다른 곳과 통하는 길도 없다. 그 학우는 정말로 볼일이 있어서 몇십분 동안 계단 근처에 있었던 걸까?

생각해 보니 휠채어를 타는 학우들이 꽤나 마음 불편해할 곳은 낡아빠진 학관만이 아니었다. 아마 단과대 건물들은 대부분 좀 돌아가야 해서 그렇지 휠채어 통로나 장애인 화장실 같은 것이 있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건물들에 다가가는 과정이 문제다. 골고다 언덕이라 불리는 종합관 가는 길은 멀쩡한 다리로 걷기에도 가팔라서, 휠채어를 탄 사람은 누가 밀어주지 않으면 진짜 위험하니까 그 길로 다닐 수 없을 것이다. 그 언덕을 휠채어로 내려가는 건 올라가는 것보다 세 배는 위험하다는 것 쯤이야 안 봐도 비디오다. 그 정도로 험난하진 않지만 역시 오르기 어려운 긴 언덕이 체육관에, 이과대에, 졸업하려면 싫어도 4학기는 가야 하는 대강당에, 노천극장에, 그리고 본관 뒤편의 모든 건물에 이어진다. 용재관 같은 데는 그냥 계단 타야지?

물론 경우가 다르긴 하다. 학관에 그런 시설이 없는 건 비싼 등록금 받아먹고 병원에 다 쏟아붓는 학교당국에 책임을 물을 문제이지만 원체 산을 끼고 있는 위치상 언덕길까지 뭐라 할 수는 없다. 휠채어 타는 학생의 수 자체가 전교생 중에서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극소수를 위해 언덕 일부를 깎아내고 복잡한 길을 낸다던가, 아니면 적어도 그들이 좀 더 편하게 다닐 수 있게 길을 따라 쭉 손잡이를 설치하는 식으로 대공사를 벌이는 건 비합리적이다. 휠채어를 사용하는 학우들도 자신이 감수해야 할 불편으로 그냥 받아들이고 있겠지.

그런데 그거 비합리적이어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세상에선, 사회에선 극소수에 불과한 무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비합리적인 짓을 하면 온갖 민원과 냉소만 들어오기 십상이다. 그래, 왼손잡이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문손잡이 위치를 그들도 고려해주기 위해 문짝 정중앙에 단다거나 하면 그건 코메디가 된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학우들을 위해 불편하지 않은 학우들이 다니는 길을 조금 내주는 건 완전히 비합리적인 짓은 아니다. 그들을 위해 비용 투입해가며 길 가장자리를 내주면 대신 다른 학우들이 좀 불편을 겪기야 하겠지만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인 것이다. 그런 거라면, 적어도 대학 안에서는 그 비합리적인 짓을 저질러 주는 게 옳지 않겠는가.

내가 겪어 보거나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하지 않으면 남의 심정을 알 수 있을 리 없는 거야 당연하지만, 분명 세상에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큰 소리로 자신의 불편을 알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다 고려해줄 수 있을 만큼 돈이 썩어나지도 않고, 이해관계란 것도 꽤나 복잡하다. 그렇지만 사람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정말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여러분 또한 언제든지 그런 극소수의 무리에 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건물에 들어가려면 '계단'만 이용해야 하고, 어딘가 가려면 가파른 '언덕'을 걸어야만 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 또한 돌아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03년에 입학한 이후 4년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휠채어 통로가 없는 학관과 온통 언덕 투성이인 백양관 이북의 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Posted by 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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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윈디아 2007.03.16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 골고다 언덕....orz 그러고 보니 저희 학교도 그닥 그런 방향으로는 전혀 투자가 없는것 같아서 쓸쓸.

  2. 아람 2007.03.17 0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학교도 이~상하게 병원에만 돈을 아주 들이붓는 느낌입니다 그려;;; 그럭저럭, 저희 학교는 평지인 편이라 다니기는 좋아 보이지만, 글쎼요 저도 좀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며 보지 않고 살아온 것 같습니닷;

  3. 치호 2007.03.17 0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쓸데없이 감수성 풍부한 인간들이 사치스러운 소릴 한다'고 생각하는 무서운 개인들이 그다지 많지는 않을 텐데도, 세상 돌아가는 꼴은 그렇지가 않다는 게 참 무서워요. -_-;;

  4. 견습기사 2007.03.17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윈디아님/ 스쿠터 타는 녀석들이 운전이 서툴면 종종 넘어지곤 하는 곳입니다. 뭐어.. 예산문제란 게 있으니까요.

    아람님/ 의약분업 이후로 대학병원들이 학교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되었다더군요. 병원 짓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 제 등록금이 거기로 가는 걸 뭐라 하기도 그렇고 참;; 여튼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니까요.

    치호님/ 장애인은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던 게 그리 먼 옛날의 일인 건 아닙니다.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질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이상 노령화 어쩌고저쩌고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회인프라가 복지쪽에 힘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5. 홍염의눈동자 2007.03.17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제가 다니는 학교도 산을 깍아 만든 학교였지요. (...)

  6. 견습기사 2007.03.17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풍수지리의 영향일까요? 보통 역사있는 학교는 산에 안긴 모양으로 세워지지 않더랬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