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른 건 일요일인데 올리는 날짜가 오늘인 것은 모종의 음모와도 관계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남자들 스포츠머리가 부러웠다. 특히 씻을 때와 씻고 난 후가 아주 간편해 보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자르겠다고 하면, 우리 어머니는 여자 머리가 짧은 것에 대한 우려부터 표하셨다. 안 예뻐 보인대나 어쩐대나. 취향이나 성격이나 여성적인 것을 지양하는 것도 아니고 부정하는 쪽에 가까운 나로선 일단 짜증부터 울컥 솟구치는 이야기다. 어쨌든 어머니를 굳이 거스르고 싶진 않아서 타협한 결과가 숏컷, 해서 배냇머리 무성하던 아기 적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뒤통수가 선하니 시원하게 머리카락이 짧아졌다.

그리고 월요일. 드디어 네녀석이 군대 가냐 이런 내용의 갈굼을 당할 각오로 학회실에 갔건만, 학회원들은 의외로 갈구지 않았다. 잘랐구나, 무슨 일 있었냐, 그 정도에서 이야기는 끝났다. 평소와 뭔가 다른 패턴으로 진행되는 시츄에이션에 당황하다니 나도 어지간히 학회내 위계구조에서 식물성 플랑크톤으로서의 소임에 충실했었구나. 주고 받는 대화와 갈굼은 평소와 같아서 4년 하고도 한 달이 되어가는 대학생활 내내 생머리던 녀석이 갑자기 머리를 싹둑 자른 것 쯤은 나 자신에게조차 어제 점심에 먹은 메뉴에 대한 기억만큼이나 희미해지려 했다. 그래,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내 일상은 평소와 같았다. 포장 좀 바뀌었다고 내용물이 바뀌는 건 아니니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좋게 '예뻐 보이지 않다'고 돌려 말씀하신 것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의 개성 표출에 대해 그런가 보다 하고 무덤덤히 넘어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요 며칠,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돌아다니면서 나는 누군가가 나를 자꾸 쳐다보는 눈길을 느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그리고 나를 모르는 학우들의 틈에서 유리창을 통해 얼핏 본 그 눈들은 피식 웃어버리거나, 얼굴 좀 보고 싶은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끝까지 쳐다보는 모양새였다. 뒷모습만 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가는 녀석이란 건 그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상판을 봐서라도 확인을 하고 싶어지는 그런 '이상한 녀석'인 것일까. 강의실에서야 예의상 모자를 벗지만 그 밖의 장소에서는 도저히 모자를 벗을 수가 없었다. 원래 쓰고 다니기 좋아했던 야구모자가 그 녀석들 앞에서 나를 가리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쯤 되면 내 머리를 화젯거리로도 삼지 않은 학회원들이 나라는 놈을 아니까 나름대로 배려해준 건가 싶어질 지경이다.

보통의 경우 뭔가 심경의 변화를 맞거나 굳은 결심을 했거나 군대에 끌려가는 등의 특수한 상황에 처해야 머리에 가위를 대는 법이긴 하다. 사실, 이번에 평생 안 하던 짓을 한 건 이번 학기에는 좀 성실하게, 좌충우돌이라도 좋으니 적극적으로 활기차게 보내 보려는 각오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려는 목적도 있긴 했다. 머리 감는 게 너무너무너무 귀찮고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긴 머리카락이 너무너무너무 짜증스러워서 짧으면 어떻게 되나 한 번 보려는 게 주된 목적이었지만, 그런 의도 또한 없진 않았던 것이다. 개중에는 어머니의 일반론에 드러난 일반적인 사회의 시선을 받더라도 치요 아버님처럼 튕겨냄으로써 자신에게 좀 더 당당해지자는 생각도 있었다.

남이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건 물론 기분 나쁜 일이다. 하지만 헌법에 엄연히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이 나라에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말라고 버럭하는 건 더 우스운 일이겠지. 진짜 문제는 나를 괴이쩍게 또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사상이 아니라 그런 것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나 자신이다.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한 것 뿐인데 그로 인한 나 자신의 만족감 보다는 그것이 끌어당긴 남의 엄한 시선에 더 생각이 미쳐서야. 왜 남의 눈치부터 살피는 거냐, 나는. 왜 나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할 수 없는 수군거림에 귀를 기울이려 하는 거냐.

짧아진 뒤통수를 긁적일 때마다 손가락과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감촉이 꽤 이질적이면서도 재미있다. 머리가 긴 편이 짧은 편보다 관리 등등의 면에서 보다 효율적이란 걸 스스로 납득하게 되거나 하지 않는 한에는 이대로 갈 생각이다. 조금은 뻔뻔해지자, 조금은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자, 조금은 신경줄을 굵게 키워 보자고 각오한 신학기. 이제 3월의 반이 지나갔을 뿐이다.


 
Posted by 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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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윈디아 2007.03.15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확 자르셨나보네요. 제 친구 둘도 그렇고 주위에 이런 분들이 제법많군용'ㅂ'/ 그 까끌까끌함이 또 재밌고..쓰담쓰담.

  2. ranigud 2007.03.15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신경 끄면 됩니다. 오히려 저희 엄마는 저한테 숏컷으로 잘라보지 그러냐 하시던데요.;(전 제 머리가 좋아요!)

  3. 하민 2007.03.15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짧은 머리가 감을 때 상당히 편리하다는거 실감했습니다; 수능 끝나고 처음 머리길러봤을 시절.. 덥수룩 길게 자란 머리는 예전처럼 '문지르면 끝나는' 머리감기 방법으론 도저히 불가능하더라고요. 여자들이 왜 머릴 그렇게 오래감나 그때 처음으로 깨달음;;

    근데 진짜 별일 없으신거에요? 정말 어지간해선 머리 안건드리지 않나 보통(..) 비범하십니다

  4. 아르카 2007.03.15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리 커트하셨군요. 저도 고등학교 1학년 때 남자애처럼 커트치고 다닌 적 있습니다. 화장실에도 제대로 못들어갔죠.^^; 확실히 여자들의 경우는 커트를 치면 성구별이 모호하니 주위에서 신기한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더군요. 하지만 나름대로 좋은 점도 많답니다.^^ 이번 학기 화이팅하세요!^^

  5. evax 2007.03.15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하하; 전 더워지면 짧게 자르곤 하는데요(올 여름은 아예 삭발을 해볼까 생각중) 시원하실 검니다^^

    ... 남자도 가서 짧게 잘라달라고 하면 군대가세요? 이러면서 물어본담니다;;
    주위사람들 재 왜저러냐 면서 쳐다보고;;

    신경이 쓰이시는건 그만큼 머리 자른거에 대해서 의식하시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듬니다:D 금방 익숙해 지실거에요

  6. 아람 2007.03.15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대1때까지 그런 시선에 대한 반발심에 머리도 짧게하고 머리도 시뻘겋게 물들이고 다녔었드랍니다.. 왠지 욱하는 감정이 올라놔서요 호호

  7. 견습기사 2007.03.16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윈디아님/ 옛 확 잘라버렸습니다. 뒷목이 좀 선하긴 선하죠. 쓰다듬쓰다듬이라면..;

    라니구드님/ 마음 가는 대로 하시는 거지요 뭘. ^^;

    하민님/ 진짜로 별 일 없습니다. 진짜로 그냥 짧게 자르고 싶었습니다.;

    아르카님/ 우리 모두 이번 학기 파이팅! 우어어어어!

    에박사님/ 절로 신경이 쓰이긴 합니다. 일생 처음으로 커트친 거라. 익숙해지겠죠.;

    아람님/ 사람 사는 데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뭐랄까.. '다르다'는 것에 조금만 관용을 보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그래도 국회의원은 용서가 안 돼 안 돼! 크릉!)

  8. 치호 2007.03.17 0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확 쳐버리셨군요 ;ㅁ; (저는 올초에 처음으로 염색을...)
    나름 어울리실 듯.

    '머리채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
    없이 상쾌하게 달리실 수 있을 겝니다.

  9. 견습기사 2007.03.17 1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아직도 염색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모로 경험치가 딸리네요.^^;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 -_-! 그보다도 특히 공 가지고 놀 때 머리가 출렁출렁하며 시야를 가리는 게 제일 짜증났더랬습니다. 이젠 그런 걱정 없이 가뿐하게, 상큼하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