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중얼중얼 2006. 11. 22. 23:23
금요일(아닛 생각해 보니 그날은 마모리 생일 아냐)에 친구녀석 하나가 생일을 맞습니다. 초대받는 입장에서 배포 유하게 적수공권으로 행차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시간을 내 조금 돌아다녔습니다.

돌아다닌다고 해봤자 이 신림동에 뭐 볼 것이 있겠습니까.-_-; 그냥 두어 군데 돌아봤습니다. 처음에는 서점에 갔습니다만, 그녀석이 이미 읽었거나 소장했을 수도 있는 데다 저와는 취향이 다른 고로 책 고르는 게 좀 어렵더군요. 그래서 가볍게 패스, 문구점으로 갔습니다. 뭔가 실용적이고 그녀석이 쓰고 싶어할 만한 물건이 혹 있을까 해서.

처음에는 한 반 년쯤 전에 봐둔 플라스틱 보온컵을 생각했는데 그게 없더군요. 패닉에 빠지려는 정신을 추슬러 돌아본 진열대를 다시 뺑뺑 돌면서 뭐가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한 시간쯤 서성거리다 결국 고른 건 손잡이가 달린 화일과 07년도 하드커버 다이어리, 쓸만해 보이는 볼펜 두 자루입니다.

계산하고 보니 내가 뭘 저지른 거지 하고 대략 난감해지더군요. 이거 뭔가 양은 많지만 결국 학용품 세트 아닙니까. 초등학생이나 줄 법한 것을 사버린 것 아닌가 라던가, 휴학 안 했으면 이번에 졸업해야 할 학번의 대학교 여학생에게 이런 걸 줘도 되나 라던가. 그렇다고 향수나 화장품 같은 걸 사자니 저도 안 쓰고 그녀석도 그리 반길 것 같지 않는 걸 뭘 알고 고르겠습니까. 목도리 같은 건 다른 녀석이 살 것 같고.. 아니 다이어리류야말로 연말이 가까워진 지금은 가장 흔한 선물인가? 친구야, 이런 거 가져왔다고 나 갈굴 거 아니지? 그렇지?! ;ㅁ;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건 참 난감한 일입니다. 뭔가를 받는 것도 종종 이런 걸 받아도 되는 걸까 하고 황망해집니다만, 주는 경우에는 뭘 주면 나도 만족스럽고 받는 사람도 기분 좋을지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기왕 주는 거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 하면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이면 좋겠는데, 제가 그런 걸 고려하게 되면 꼭 저런 학용품세트; 식으로 잡동사니를 뒤죽박죽 섞어서 내놓게 되더군요. 마음이 들어간 선물이 제일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손재주가 있거나 재치있는 사람도 아닐 뿐더러, 결국 남는 건 쓸만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같은 짓을 되풀이해 버립니다.

제가 뭔가를 주고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겠지요.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그 사람이 현재 무엇을 가장 원할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학년 올라가니 어쩌다 학교에 간 날 억지로 불러내지 않으면 보기 어렵게 된 녀석이 정확히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저는 자신있게 떠올릴 수가 없군요. 그러니 나라면 이게 좋겠다 싶은 것을 그녀석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확신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제 아이실드 잡담을 죽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우정의 모습은 말 안해도 통하는 굳은 신뢰입니다. 현실적으로 특히 여자들 간에는 그런 우정이 어렵다는 건 압니다. 세세한 데에 신경쓰다 보니 대범해질 수가 없거든요.;; 물론 그건 남을 배려한다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저 자신은 좀 대범해졌으면 하는지라. 아무 때나 연락 없이 쳐들어가도 되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고,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합니다. 겨우 선물 하나 주는 걸로 끙끙거리며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서로를 잘 아는 친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친구 셋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인 거 다 아니 댓글 달지 마시고.-_-;

문제는 제가 그녀석을 대학 동창이 아니라 친구로 여기긴 하지만 그녀석을 잘 안다 할 수는 없다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이런 일로 이건 마음에 들어 할까, 저건 혹 실망스러워 하지 않을까, 흡사 오지선다에서 둘 중 하나 찍는 걸로 고민하는 것 마냥 머리를 굴리게 됩니다. 선물을 주는 건 전데도 제 선물에 만족할 수가 없다 이겁니다. 저는 제 선물을 받고 친구가 정말로 기분 좋아했으면 하기에 기대한 반응이 보이지 않으면 슬플지도 모릅니다. 원반 물어와서는 칭찬을 기대하는 강아지꼴이라고 지적하셔도 할 말 없습니다.;;


하긴 그 맛에 친구를 사귀고 선물을 주고받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받는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다는 것. 당장 타자중인 잡담이 불의의 사고로 증발해 버릴지 어떨지조차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진리인데 그보다 복잡한 사람 마음은 어련하겠습니까. 혹 녀석의 눈에 덜 찬다 해도 평소 제가 친구에게 관심을 가지는 노력을 보여야 했으니 마땅히 돌아와야 할 책임이 돌아오는 것에 불과합니다. 나름대로 담은 의미가 덜 전해진다면 그 자리에서 노래라도 불러 참석자들의 복장을 즐겁게 뒤집어 줘야지요.

짐작할 수 없기에 재미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a





p.s. 그러한즉 용인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하다는 건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Posted by 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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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y  2006.11.22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전 친구들에게 위시 리스트를 공개합니다.

  2. evax 2006.11.23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저희(?)는 술을 사줌니다.

  3. 사과주스 2006.11.23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친구들은 그냥 밥이나 가지고 싶다는거 사주고 가족끼리는 현금으로 해결합니다-_-;

  4. 견습기사 2006.11.23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젤느님/ 원하는 거 있냐고 물어봤지만 딱 부러지는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무라이님/ ...사실 그게 가장 쌈박한 것 같긴 합니다.;;;

    실비님/ ...문화상품권류가 가장 만만한 겁니까...;

  5. 리디... 2006.11.28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디 생일 7/30
    ...

  6. 견습기사 2006.11.28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생일은 두 달도 안 남았다. 어쩔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