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주장

중얼중얼 2008. 12. 4. 23:38
어떤 체제가 자기방어적 제도를 발현하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그 체제에 그렇게 해서라도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는 군대를 들 수 있을 것이고, 약간 멀리 나가면 국보법을 긍정하는 우리나라의 현행법제도를 들 수 있다. 그래, 대한민국은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하는 걸 감수해 가면서 대한민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민주주의, 민족주의, 자유주의, 파시즘,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제국주의,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세상에는 하고많은 주의들이 있다. 닮은 데가 없는 이 각종 이념들은 딱 한 가지점에 관해서만은 의견통일을 본다. 이념의 존재의의는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파시즘 같은 게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낼 리 없지만, 이것이 등장한 이유조차 극약을 써서라도 사회혼란을 타파해 보자 라는 것이었다. 무솔리니나 히틀러가 자기 혼자 날뛰어서 대총통이 되었나? 어쨌든 국민들은 그들을 지지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책을 조금만 들춰보면 이념이란 것들이 사람을 배부르게 하기보다는 도리어 사람을 잡아먹고 잡아먹어도 배가 차지 않은 모습을 보였더란 것이다. 왜? 대립하는 이념 간에는 타협이 없어서다. 대립하는 진영은 오직 죽여 없앨 궁리만 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 취급하는 싸움꾼들 사이에서 무슨 건설적인 결론이 나오겠는가. 결국 냉전이 끝날 무렵의 세계는 주의를 외치는 작자들한테 염증을 냈다. 대학에 진학한 사람의 경우 00년도 이래 한국의 대학가에서 운동권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지적해야 할 점이 숱하게 널려있음에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감정과잉이라 그렇게 여기는 건 아닌가 싶어 말하기가 좀 부끄러운데, 80년대에 한국인들이 해낸 것은 전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존경해 마땅한 -_-; 위업이라고까지 여긴다. 아니 물론 19세기를 기억하는 프렌치들은 내 생각을 비웃을지도 모르겠으나 조건이 다르잖아 조건이, 거긴 그 직전까지도 유럽 제일의 강대국이었고 여긴 세계최빈국이었다고. 어쨌든, 나는 우리 부모님 세대가 피흘려 얻어낸 것이 이 땅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때문에 국보법에 대해서도 약간은 긍정한다. '약간'이다. 이것이 사상과 언론의 자유에 가하는 제한은 분명 피로써 얻어내야 했던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기에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이 법은 존재 그 자체로써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타인과 '달라질' 권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것을 긍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적이 된다. 나와 마찬가지로 웃고 떠들고 울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원쑤마귀사탄이 된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겠다고, 목적과 수단을 뒤집어버린 채 난장판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어떤 블로거를 국보법에 의거해 사상 쪽으로 고발한 모양이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국보법상의 그 죄목과는 대단히 거리가 있다. 그 블로거에게 싸움을 건 난독증 내지 시비꾼에게 화를 내야 할까, 아니면 대범하게 분단조국의 현실을 가슴아파하는 일장연설을 해야 할까. 후자는 절대 하지 않으련다. 분단은 슬픈 현실이지만, 이것이 너무 오랫동안 사람을 잡아먹는 도구로 이용되어왔다. 내가 생각할 때 사람의 아픔을 도구로 써먹는 짓은 죄악이다.



p.s. 아나 일일일포스팅 하느라 하가렌이랑 디알을 못 읽고 있어염. 오늘도 밤샘이구나.
p.s. 그나저나 네티즌이 네티즌을 사상관련으로 감시고발하는 건 대체 무슨 추태람. 여기가 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가효? ㅋㅋㅋ

Posted by 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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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ro1923 2008.12.07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분도 아니고 이 바닥에서 제법 냉철하게 중립적인 구별을 하시던 산왕 님이 표적인 점에서
    처음 당황했고, 하필 그 포스팅이란 게 '김일성 까는 포스팅'이었는데도 몇몇 문장 때문에
    트집잡혀 고소당했다는 데에서 당황 둘... 이글루스 전체를 '좌글루스' 운운하며
    돌아다니는 몇몇 저명한(...) 파시스트 이글루 유저들 이름이 거명되는 게 괜한 게 아니었죠.
    자유민주주의 = 파시즘이라고 믿고 있는 그 양반들의 추종자 중 하나인 것 같던데,
    그럴 거면 이딴 찌질한 짓 하지 말고 대놓고 '돌격대'라도 만들던가... 싶더군요.
    광신과 오만, 편집증, 난독증이 어우러진 '그들만의 이상향 건설'... 시국이 이러니 더한 느낌입니다.

    • 양운 2008.12.07 14: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말이죠. 김일성이 까는 포스팅을 국보법 위반으로 고발하다니 ㅋㅋㅋ 범죄를 고발하는 거야 법치국가의 시민에게는 어떤 의미로 의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엔 시민들간의 자발적인 사상검증 내지 감시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우스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