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법 떡밥

중얼중얼 2009. 4. 17. 22:50
이글루스는 요즘 또 저작권법 떡밥으로 난리가 났구나. -_-a
저작권법의 취지는 저작권자의 보호와 공정한 이용의 도모를 통한 문화발전,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저작권자에 대한 보호가 미흡한 편인 것도 사실이니까, 난 법조문 자체엔 불만 없다. 문제는 구체적인 개별사안에서 어떻게 잣대를 댈 것인가, 이른바 해석에 관한 것이다. 문화물이란 분이 워낙에 범위가 방대하시고 또 다양하시어 저작권법상 처벌할 문제인지 묵인해도 되는 문제인지 아예 죄를 구성하지 않는지는 법정 가기 전에 모를 것들이 산적해 있다 이거다.
가령, 나는 10년 넘게 팬픽질을 하고 팬아트를 그렸다. 이것은 원저작물과 아예 별개의 저작물로 인정되는 '패러디'에는 해당하지 않는 수준이며 2차저작물로 분류된다. 2차저작물을 제작하면 그것의 저작권자는 물론 제작한 사람이지만,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았을 경우에는 동시에 원저작물에 대한 침해가 된다. 나는 칸자카나 이나가키한테 팬픽 좀 써도 되겠냐고 물어본 적도 허락을 받은 적도 없다. 굳이 따진다면 나는 그 양반들의 저작권을 침해한 놈인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팬픽질을 하는 것은 그 양반들이 설령 내가 벌여온 짓을 알게 되었다 해도 호탕하게 웃어넘기면 넘겼지 고소할 리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왜? 미국에서 나온 패러디에 대한 이론을 유추해석하자면 팬덤에서 생산하는 이런 2차저작물은 원저작자의 재산적 이익을 상대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에서 <아이실드21> 원작이 점유하는 이익을 2차저작물로 침해하는 게 용이한 일인가? 쉽게 말해 동인지가 원작보다 더 팔리겠느냐 이거다. -_-;; 게다가 2차저작물은 원저작자에게 이익을 주기도 한다. 홍보 효과가 있으니까. 코믹월드 등지에서 어느 해에는 어떤 작품의 동인지가 부스의 99퍼를 차지했다고 쳐보자. 코믹에 간 사람들 중 그 작품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째서 이토록 인기를 얻나 궁금해서라도 원작에 손을 댈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2차저작물을 제작해 돌리는 팬덤 내에서는 원작에 대한 정이 떨어지다가도 2차저작물로 인해 다시 불이 붙고 원작에 대한 충성도를 끌어올리는 예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니 나 같은 무리가 2차저작물을 만드는 식으로 원작자의 2차저작물작성권을 침해했다 해서 고소크리부터 들어가는 경우는, 어지간해선 없다. 이런 경우는 원저작자에게 오히려 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법문상으로는 침해를 구성해도 너그러이 묵인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선진과 동시대에 서로 빚지면서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는 문화물의 특성상, 저작권법 분야는 형법처럼 흑 아니면 백으로 딱 부러지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이오지마에 올라간 다섯 항목 중 내가 황당하게 느꼈던 것은 마지막의 노래방 동영상 금지 부분이다. 나머지 넷은 침해 맞고, 단속되어도 사실 할말 없다. 원저작자가 눈 감아주면 그저 감읍하며 굽신거려야 하는 분야가 맞다. 그런데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영상을 찍어 ucc로 만드는 것 까지도 침해를 인정하는 정도를 넘어 단속대상으로 해석해야 할까. 관례적으로 원저작자가 묵인해줄 수 있는 분야로 볼 수 없는 것일까. 앞서 팬덤의 2차저작물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법조문에 적힌 대로 일률적으로 적용한 결과가 반드시 정답을 내놓는 게 아닌 분야란 말이다. 저작권법의 처벌규정은 확대된 의미에서 형법에 해당한다. 그런데 형법의 명확성 원칙을 곧이 곧대로 적용하려면 모든 문화물마다 침해사례에 대한 법규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 그 때문에 저작권법에 규정된 조문들은 기본적인 뼈대 내지 가이드라인 정도의 역할이 고작이며, 실제 파울라인에 대한 해석은 구체적인 개별사례마다 법원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 해석을 타이트하게 하면 할수록, 법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기억도 못 하는 일로 저작권 침해 고소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형법 주제에 명확성 원칙이 통하지 않는 아이러니는 민사로 다루면 충분할 문제에 형법을 개입시켰기 때문이지만 논지에서 조금 벗어나니 이 정도로 해두자. -_- 이렇듯 해석에 있어 융통성이 필요한 그 영역을 필요한 한도 이상으로 국가가 나서서 졸라매야만 할까? 그렇게 하는 것이 원저작자의 권리 보호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해석을 내놓은 녀석은 법을 해석할 때 계산기 이상의 기능을 보이지 못하는 놈이다. 1+1에는 2라는 결과 밖에 내놓지 못하니까. 내 생각이지만, 다른 법률과 달리 저작권법 분야만큼은 개별사안마다 1+1이 1이 될 수도 2가 될 수도 3이 될 수도, 혹은 그 밖에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저작권법 분야에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모범답안이다.


뭐, 이렇게 왈왈거려 봐야, 현실적으로 단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 때문에 ucc 제작자들(내가 말하는 건 ucc의 내용 자체는 자체제작한 사람들이다. 저작권자가 따로 있는 저작물을 허락없이 고스란히 퍼 올리는 건 짤없이 저작권법으로 혼나야 할 대상이다 -_-)이 당장 싸그리 잡혀가는 일이 일어나거나 할 리는 없다. 한두 차례 생각나면 열리는 행사처럼 로펌에서 고소장이 날아가는 일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다만, 노가바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저작권법이 저작권과는 관련 없는 일로 누군가의 처벌을 바라는 권력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서 그게 염려스럽다. 그 포스팅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ucc를 제작한 사람이 명예훼손죄(피식) 기타 등등을 벗어나도 ucc에서 사용한 배경음악 하나, 인용한 뉴스보도 하나 때문에 원저작자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고소크리를 먹을 가능성이었다. 아닌가? 융통성이 적용되어야 할 영역까지 타이트하게 해석해 처벌할 대상을 늘리겠다는 건 누군가에게 칼자루를 쥐여줄 일이 생겼다는 것이잖은가. 저작권자 보호는 개뿔이.

Posted by 양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