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단상

중얼중얼 2009.05.30 00:08
굽시니스트, 본격 정치만화

발인과 화장이 끝났다. 시청 주변에 저렇게 사람이 모이는 건 아마도 87년 이후로는 처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목격했고 현장에 있었던) 작년의 촛불이 최고조였을 때도 이 정도 규모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역시 대한민국은 감정으로 움직이는 나라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분의 살아생전, 재임 시에는 별 시덥잖은 것으로도 돌을 던지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눈물로 고인을 기리는 것에 조금 빈정상하는 면이 없잖아 있다. 정말로 애통하다면 부디 오늘을 잊지 말고 2년 뒤, 그리고 3년 반 뒤에 투표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아직도 까마득하게 남은 3년 반 넘는 시간 동안 의식을 가지고 정부를 감시하면서 (혹시라도) 잘한 것은 잘했다고, (여태 저지른 것 포함해서) 못한 것은 못했다고, (앞으로도) 찬성할 것은 찬성하고 반대해야 할 것은 반대한다고 외쳐야 할 것이다. 비록 우리의 친애하는 대통령 가카께 들을 귀가 없다 하더라도 꾸준히 "민주적인" 방법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들려줘야 할 것이다. 성경의 일화에서 완고한 판관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은 과부의 끈질김이지 않았던가.
..뭐, 상식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도 이쪽이나 저쪽이나 여러가지로 대화 자체를 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는 게 정말 큰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 굽본좌가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있는 만화를 올리셨더라. 자칭 오른쪽이라는 이들의 아이콘이 박통이라면, 노통은 이제부터 자칭 왼쪽이라는 이들의 아이콘으로서 의미를 획득하게 될 것이며, 비로소 양측이 균형을 이루어 공화국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결말을 내게 되리라는 이야기였다. 박통은 18년을 군림했고 노통은 5년을 재임했다. 일을 추진하고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기회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당장은 노통에게 박통에 맞설만한 무게감을 실어주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통의 죽음이 거시적으로 볼 때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에 나는 동의한다. 그의 공과를 평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한국의 '앙시앙레짐'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다. 정치가나 행정가로서 그에게 부족했던 점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이면 좋은데 이런 게 아니라 앞뒤 없이 까고 보는 행태가 근절될 리 없지)이 가해지는 만큼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세대에 희망을 줄 수 있었고 상징이 될 수 있었던 일개 민주시민 - 그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일개 시민이었다. 이것에 설명이 필요한지? - 으로서 이룩한 공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견고해질 것이다. 이 세상은 <모던 타임즈> 속의 톱니바퀴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앞으로 희망을 말하는 정치가와 희망을 바라는 국민들의 의식 속에 물처럼 번지고 스며들게 될 것이다.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치세이던 1802년에 태어나 파리 코뮌이 무너지는 것까지 보고 1885년에 사망했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가 19세기 내내 겪었던 정치적 격동은 그 대문호가 생존했던 1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제정, 왕정, 공화정을 오가며 수도 없이 체제가 변한 것만으로도 설명이 된다. 어쩌면, 아니 분명히,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2009년은 위고 대선생님이 직접 몸으로 겪으며 살아갔던 그 격동이 장소와 형태만 바꾸어 진행 중인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는 18세기 말에 시작되어 20세기가 되어서야 끝났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1960년 4월에 움을 틔웠으며 엄동설한을 겪으며 자라나는 중이다. 1810년대에서 1830년대까지가 배경인 레 미제라블은 2009년의 대한민국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후불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이것은 시작이다.


p.s. 근데 삼성 건과 북핵과 장자연 건과 용산 건과 미디어법 기타 등등 중요한 사건들이 노통 건을 타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유야무야되는 건 곤란한데. 날 밝으면 이제 추모하던 힘을 그쪽에 돌려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양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