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홀 앞 우주정거장은 오늘도 분주합니다.
스타데이트 46421.5
쿼크가 운영하는 홀로스윗에서 밀실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정거장의 민간인들은 형태변형족이라는 이유로 오도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몰아세운다. 그러나 바시어가 찾아낸 물증을 통해 피살자와 범인의 진짜 정체가 밝혀진다.
본래 베이조를 감시할 겸 광석처리장으로 사용되었던 DS9에는 민간인을 위한 설비가 부족하다. 정거장 안을 하릴없이 배회하는 제이크와 노그를 보고 식물학자 케이코 오브라이언은 학교를 열기로 한다.
-오도의 캐릭터 빌딩 에피소드지만, 멀리 보면 오도가 대표성을 띠는 '체인즐링'이라는 종족에 대한 빌딩 작업으로 볼 수도 있다. 체인즐링에 대한 휴머노이드의 공포와 휴머노이드에 대한 체인즐링의 공포가 축소판으로 묘사되었으니까.
여기서는 정직하기로 이름 높은 오도가 너무도 간단하게 마녀재판에 몰리게 된 이유를 어정쩡하게 건드렸다. 1시즌 초입인 이 시점에서는 오도라는 인물에 대해 정거장에서 4년 째 일하고 있으며 카다시아와 베이조 양쪽 모두로부터 인정받은 보안책임자라는 것 이상으로는 밝혀진 것이 없다. 형태변형족(shape-shifter, Changeling)으로서의 그가 일반적인 고형족(solid, Humanoid)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아직은 묘사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민간인들이 들고 일어난 이유인 '다름'에서 비롯되는 공포와 증오가 퍽 와닿지 않는 편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지만 방영 당시 맞닥뜨린 시청자들에게는 약간 생뚱맞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터미네이터2>의 T-1000과 비교해 보자. T-1000이 공포감을 주는 것은 접촉한 존재를 똑같이 복제할 수 있다는 것보다는 존 코너를 죽일 수만 있다면 죽여도 죽여도 살아나서 지옥 끝까지 쫓아올 '살인기계'라는 데에 있다. 그런데 오도는 살인자가 아니다. 정의와 공공의 안전을 위해 불철주야 한 몸을 불사르는 경찰관이다. 시청자들은 일단 정의로운 '치안관'(이 constable이란 명칭은 4년 전 키라가 처음 부른 별명이다. 직책명이 아니다)으로서의 그를 안다. 그런 시청자들이 그를 무서워하거나 위험한 인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조용히 잘 있던 민간인들이 갑자기 들고 일어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나중에 5x08(Things Past)에서 베이조에 팬클럽이 있더라느니 강연 끝나고 사인회라도 열릴 줄 알았다느니 빈정빈정거리던 개랙의 증언으로 보건대, 역시 묘하게 아귀가 안 맞는다.
일단 설정이 그러하니 원래 잠정적으로 위험인물이라 낙인찍혀 있었다 치자. 이렇게 제기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오도를 직접적으로 방어해준 것은 시스코의 (연방이 이상으로 삼는 대인배적인) 공평함과 바시어가 찾아낸 물증 뿐이며, 오도 본인은 결국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했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을 본격적으로 건드리기 위해 제작진은 체인즐링에 대한 빌딩을 마친 후 도미니언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7시즌으로 가야 했다.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7x14(Chimera)는 최고의 에피소드라니까...
-오도가 군중으로부터 증오받게 된 또다른 이유는 이부단이라는 인물의 역사성에 있다. 이부단은 식민지배 당시 베이조인들을 상대로 의약품 장사를 했던 사람으로, 장사 방법이나 삶의 행로가 결코 도덕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살인 전과자다. 그럼에도 베이조의 임시정부가 그를 간단히 사면한 것은 살해당한 자가 식민지배 당시의 카다시안 장교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살인의 이유가 독립투쟁이라는 대의를 따른 것이 아니라 단지 뇌물을 주기 싫다는 개인적인 원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오도가 당시 이부단을 체포해 감옥에 처넣은 것은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정당화될 수 없는 살인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카다시안'으로 분류된 순간 이부단의 죄는 깨끗하게 지워졌다. 그는 독립투사 비슷한 위치에 섰고, 그를 체포했으며 지금도 혐오감을 비치는 오도는 순식간에 카다시아 밑에서 부역했던 악당이 되었다.
이부단의 죽음(?)을 곧 카다시아 부역자의 더러운 친 카다시아 행위로 이해하는 베이조인들은 제3자가 보기에 더없이 어리석고 불의하다. 그런데, 1945년 당시 광복을 맞은 한국인들이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36년간 민족말살 비슷한 지경까지 압제를 겪었던 사람들에게는 법과 도덕을 근거로 이부단을 죄인이라 판단하는 오도의 태도와 어찌 됐든 카다시안(왜놈)을 살해한 이부단 중 어느 쪽이 정의롭게 여겨졌을까. 이부단의 살인이나 들고 일어난 베이조인들의 행위가 옳다거나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다만, '정의'라는 개념이 가진 상대성의 좋은 예를 보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다.
1x04에서 오도가 집단린치를 당할 뻔한 이유를 그의 '다름'보다는 이 역사적인 문제에 보다 집중시켜 설명했더라면, 캐릭터 빌딩과는 멀어지겠지만 나름 흥미롭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도 본인이 통치자의 법과 무관하게 언제나 존재하는 '정의'를 언급하기도 했고.
그리고 흥분한 군중에 끼어있던 모온, 너.. 때려줄 거야...!
-오도가 린치를 피해 도망친 곳이 보안사무실이란 것은 제대로 캐릭터 빌딩을 하는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보안실장이라는 지위가 오도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 걸까. 시스코가 "말 안 들으면 자를 거임 -_-" 이라니까 바로 쫀다던가, 스타플릿에서 보안장교가 떠 관할에 혼선이 오면 가시를 세우고 하악질하는 모습들을 보라. 오도는 목숨에 대한 위협에는 전혀 겁을 내지 않지만 자기 지위가 약간이라도 침해되면 생존 이상의 것이 위협당한 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정의로운 치안관'만이 그가 휴머노이드 사회와 연결되고 자신의 자아를 규정할 고리였다. 이 아웃사이더는 범죄자 내지 예비범죄자하고만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앙심 가질 사람을 대라니 당장 500명은 떠오른다는 인생은 대체 어떤 삶이냐. 역시 키라가 하루 속히 오도를 자빠뜨려야..(엉?)
-이 에피소드를 처음 봤을 때, 키라가 오도를 믿는 것은 놀랍지 않았다. 그런데 쿼크가 믿으니 충격이었다. 대놓고 오도의 편을 들어주고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낼 단서까지 제공하는 의리의 쿼크 사장님 -_-b 이 둘은 평소에 그렇게 아웅다웅하면서도 위기 때면 당연하다는 듯이 한편을 먹는다. 아름다운 우정이야. -_-*
생각해 보니 커존-잣지아 댁스와 시스코의 우정을 제외하면 교우관계(랄까 싸우다 정든 거겠지만 -_-)가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사람들이다. 흐으음.
-치안관, 오브라이언 씨네 부부싸움(?)을 관찰한 결과 "난 영원히 솔로로 살겠음" 비슷한 발언 파문. 이랬던 친구가 다다음 시즌부터 어떻게 될지 어디 두고 보자 ㅋㅋㅋ
-롬의 캐릭터 빌딩도 덜 되어있던 때라, 아직은 롬 특유의 빠르고 어눌한 말투가 아니다. 롬이 배우의 본래 목소리로 느릿하게 대사 치는 걸 들으니 참 적응 안 되네. 그건 오도도 마찬가지라서, 아직은 특유의 목구멍에서 갈라지며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아니다. 참 적응 안 되네.
-여전히 남는 의문 하나. 사건현장은 클론이 들어간 후 잠겼기에 형태변형족만 드나들 수 있었다 했다. 그럼 진짜 이부단은 거길 어떻게 들어간 거냐?;
Posted by 양운/견습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