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1시즌 최고의 에피소드라 생각합니다.
카다시아에서 온 연방의 우주선이 의료지원을 받기 위해 칼라-노라 증후군에 시달리는 카다시안 한 명을 DS9에 내려놓는다. 그 병은 점령기 당시 악명 높았던 갈리탭 수용소에서 어떤 사고를 겪었던 사람들만이 걸리는 희귀병이었다. 전범일 가능성을 두고 신원을 조사한 결과 그 카다시안은 갈리탭의 도살자라 불렸던 걸 다르히일이라 밝혀진다. 다르히일은 자신이 저질렀던 반인도적인 범죄들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며 키라를 격분시킨다. 하지만 단 한 번의 말실수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그의 진짜 정체는 수용소에서 잔학행위와는 상관없는 직무에 있었던 에이먼 마리짜로 밝혀진다. 다르히일과 같은 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고 당당히 서있는 세상에서 그들을 고발하기 위해 마리짜는 일부러 다르히일처럼 모습을 바꾸고 대신 처벌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마리짜는 죄가 없기 때문에 풀려나지만, 기지에 있던 다른 베이조인에 의해 카다시안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한다.
-1x15(Progress)와 1x17(The Forsaken)도 잡담할 내용이 있긴 했다. 1x15는 어느 정도 1x13의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모온에게 관심을 보이는 잣지아와(6시즌에서 바깥양반의 반응을 기다립니다ㅋ) 위대한 물질연속체를 맛보기로 선보이는 노그(이건 무려 7시즌이냐;)까지 건너뛰는 게 아깝긴 하지만 했던 이야기를 계속 하는 건 좀 귀찮았다. 게다가 소재 면에서 멀게는 박통, 가깝게는 용산이 생각나던데 나 같이 머리에 든 거 없는 녀석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싶었다. 1x17은 체인즐링의 생태에 대해 좀 더 다뤄지지만 순전히 트로이 여사 때문에 건너뛰었다. 앞으로도 트로이 여사의 에피소드는 건너뛸 생각이다. 내가 아무리 오도를 좋아해도 여사님의 압박은 좀 힘겹다. -_-;
-그래서, 1x19로 넘어왔다. 이 에피소드는 너무도 무겁고, 숨막히고, 슬프다.
마리짜가 연기한 다르히일의 모습은 아마도 약간의 과장이 덧붙여졌을지언정 걸 다르히일이라는 인물의 실재 그대로일 것이다. 오만하고 우월감에 가득 찬 카다시안, 정복행위로 이웃의 평화로운 종족을 박해하고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카다시안, 반인도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국가의 이름으로 그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카다시안. 아우슈비츠의 수용소장이었던 루돌프 헤스는 뉘른베르크에 서고 나중에는 아우슈비츠에서 교수당했지만, 다르히일은 비슷한 일을 하고도 집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카다시아에서 가장 큰 군사기념비 아래에 묻혔다. 카다시아의 진짜 문제는 다르히일 같은 자들이 심판은커녕 아무런 죄책감조차 없이 자유로이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두캇도 멀쩡하게 돌아다녀서는 안 되는데? -_-;) 그의 말마따나 양국 사이에 '전쟁'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베이조에서는 '전범'이라고 밖에 마땅한 명칭을 찾을 수 없는 카다시안들이 자국 영역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쫓아다니며 처벌할 방법이 없었던 건가 싶다. 모든 것을 목격한 마리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과 이러한 현실 양쪽에 모두 절망하고 분노해 이런 일을 결심했으리라.
뻔뻔한 죄인들은 오래도록 살아남지만, 명예를 알고 사람답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그런 노력 때문에 일찍 죽게 되는 모양이다.
-국가가 허락한 잔학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인지하고 양심 때문에 괴로워한 카다시안들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카다시아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과거가 그들의 가책이나 희생으로 씻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인자요 강도요 강간범인 형의 잘못을 아는 동생이 진심으로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한다 해도, 형이 뉘우치지 않는다면 피해자 가족들이 그를 용서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마리짜는 틀림없이 명예를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법정까지 가더라도 카다시아를 일깨우기는커녕 대번에 정체가 들통나 베이조만 웃음거리로 만들었을 테고, 그 지경까지 가지 않더라도 1시즌의 그 동네 의식수준에서는 양심있는 개인의 자학으로 그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자신이 당해보기 전까지 더마아는 베이조를 지배했던 과거의 카다시아에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평범하고 일반적인 카다시안의 태도였다. 더마아의 변화는 도미니언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특수한 경우였다.
그런데, 도미니언은 도미니언이고 베이조는 베이조다. 키라와 함께 싸운 카다시안들은 과거의 그들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일반 카다시안들은 베이조를 생각할 겨를이 없이 '피해자'로서의 카다시아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현실에도 우리 바로 옆에 좋은 예가 있다. -_-) 카다시아가 도미니언 전쟁을 통해 경험한 것에서 뭔가를 배우고 진정으로 베이조와의 과거를 청산하려면, 더마아나 개랙 같은 이들이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마리짜 같은 평범한 '일반인'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양심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1시즌은 옵시디언단이 건재하던 시기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숙청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건 일단 제쳐두고.)
사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들 특히 일본 쪽 사람들의 시청소감이 궁금한 에피소드이다.
-한편으로, 마리짜의 죽음이 결과적으로는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상대가 카다시안이라는 이유 하나로 죽어 마땅하다는 베이조인 앞에서 키라는 이제 "그렇지 않다"고 진심으로 대답하게 되었다. 트렉 시리즈 전체에서 카다시아는 결코 공식적으로 베이조에 사과한 적이 없다.(VOY에서 Q의 아들놈이 주어진 시뮬 과제를 수행한 끝에 카다시아와 베이조를 화해시키기까지 하자 보이저 승무원들은 대략 이놈 스킬 썼다! 진지하게 안 했어! 정도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가. -_-) 그럼에도 마리짜와 같은 이들이, 그리고 앞으로 나올 랭과 게모어처럼 카다시아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키라로 대표되는 베이조가 먼저 그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으리라.
물론 그 먼 훗날에도 키라와 베이조는 카다시아를 용서해서가 아니라 카다시아에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도움을 준 것뿐이었다. 당시 베이조와 더마아의 저항세력은 스타플릿과 개랙처럼 적과 아군의 구분이 모호한 가운데 필요상 협력하는 사이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과정들을 거쳤기 때문에 더마아와 개랙,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카다시안들이 바뀔 수 있게 된 것이다.
-샤카가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갇혀있는 카다시안이 다르히일이 아니라 마리짜라는 걸 드러낸 결정적인 증거는 그 이름이었다. 키라의 푸념을 들어주다가 그 이름 한 번 듣고 사실관계를 밝혀낸 오도는 몇 년 후 바로 그 이름 때문에 슬픔에 빠지겠지.(...)
-인종청소는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던 키라의 말을 31부서가 들었으면 좋겠지만...
-쿼크조차 갈리탭 수용소의 피해자들 앞에서 약간의 동정심을 표할 정도면 그곳이 얼마나 악명 높았을지 대략 감이 잡힌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걸 다르히일은 6년 전에 사망했고, 그의 장례식은 당시에도 베이조 총독이었던 걸 두캇이 카다시아까지 날아가서 참석할 정도로 떠들썩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을 베이조인들이 몰랐을까? 키라는 12년 전 갈리탭 수용소를 해방시킬 때 그 자리에 있었다 했다. 그러므로 베이조인들이 다르히일의 존재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 극악무도한 인간백정의 죽음을 그들이 여태까지 몰랐다는 건 미심쩍은 이야기다. 이 에피소드의 옥의 티라면 이 정도 아닐까.
-오도가 두캇과 게임 한 판 하는 것은 상상이 안 되는데, 그 단판승부에서 속임수를 쓰는 두캇은 매우 상상이 잘 된다. 제작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오도가 괴롭힘당해야 제맛이라면 두캇은 굴욕당해야 제맛인 게다.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