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미리니름 첨부될지도 모릅니다. 고로 쓸데없는 잡담을 좀 덧붙이자면.
지금 사는 집은 기찻길 옆에 위치합니다. 철로 남쪽의 방음벽 앞 둔덕은 꽤 볕 바른 장소지요.
늦여름 무렵부터 제 방 창문 바로 앞인 그 둔덕에서 젖소 고양이 한 마리가 낮잠을 자네요. 바람이 차면 안 보이지만 오늘처럼 따뜻한 날에는 어김없이 해바라기를 합니다. 오늘 영화를 보고 돌아와 컴퓨터를 켠 게 12시 30분 쯤인데 이미 거기서 자고 있네요.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이 녀석이 자러 나오는 시각이 점점 앞으로 땡겨지는 것 같습니다.
이쯤 하고 본문으로.
-맨 첫 장면, 태양 표면에서 플레임이 너울거릴 때 그 사이로 문어처럼 생긴 우주선 한 척이 날아가야 할 것 같아 살짝 설레었음. 지구에서 7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커, 커억
-재난영화를 보면 항상 생각하게 되는 거지만 각력과 완력만큼은 운동선수 수준으로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더 중요한 건 면허. 자동차든 비행기든 운전스킬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엑셀과 브레이크도 구별 못 하는데. 아마 난 안 될 거야...(...)
-땅 속에서 지하철이 튀어나오니 비로소 정말 엄청난 지진이라는 게 실감나더군요. -_-;
-클라우디아님의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음. 오오 바티칸 떡밥;; 나도 저 장면 쓰고 싶다! 내지 저놈이 먼저 써버렸다! 라며 땅을 칠 창작자들이 꽤 많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의 주제와 잘 맞는가는 차치하더라도, 장면 자체는 굉장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궁합이 맞는 주제와 만났으면 진짜 명장면이 됐을 텐데, 다른 감독들은 이제 이거 쓰고 싶어도 못 쓸 거 아냐! -_-;;;
-재난영화의 법칙 1 : 꼬꼬마와 동물은 네버다이, 그리고 어른들을 환장하게 만든다!
LA에서 난리가 나는 영화 <볼케이노>는 다 좋은데 맨 마지막의 그, 아주 황당한 사고를 치는 꼬꼬마가 정말 짜증났더랬습니다. 그나마 이 영화에선 애들이 사고를 쳐서 안 그래도 자기 자신의 생존 챙기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주위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역할로 나오진 않았습니다.
-재난영화의 법칙 2 : 반드시 패밀리맨 또는 패밀리우먼의 희생이 따른다.
이건 뭐. -_-a 할리우드가 아니더라도. -_-a
아무튼 이혼부부는 올 오 나씽인 것 같네요. -_-a
-하악, 일본 동쪽의 환태평양판이 아니라.. 동해에서 초강력 지진이 터진다고라?! 하악하악!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좀 있습니다. 화산이 한 번 제대로 폭발하면 절대 '겨우' 이 정도 피해를 내진 않을 겁니다. 특히 옐로스톤이 폭발한다면요.
동남아 쪽의 어떤 화산(유명한 건데 이름이;;)이 폭발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수년 간 기온이 뚝 떨어져 식량난 등의 대재난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 규모는 옐로스톤이 폭발할 경우 예상되는 규모에 비할 바가 아닐 만큼 작았는데도요.(물론 그 화산 자체는 무시무시하게 폭발했지만요.) 또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백두산이 조금 폭발한 정도로 한반도에 일본까지 난리가 났더란 기록이 있는 걸로 압니다. 공룡이 멸망한 이유 중 하나로 언급되는 것도 슈퍼 볼케이노의 폭발입니다. 그리고, 옐로스톤에는 한 번 터지면 인류멸망까지 운운될 엄청난 규모의 마그마가 고여있습니다.
화산이 폭발했을 때 정말 무서운 건 지진이나 용암이 아니라 쇄설물이겠죠. 아주 오랜 세월을 압축되었던 가스가 한 번 분출되면 그 압력만으로도 도시 하나 쯤은 가볍게 쓸어버릴 물리력을 싣고 터질 겁니다. 거기에 화산탄이든 뭐든 고체까지 실려서 펑펑 날아온다면, 지진해일이 바람의 형태로 지상에서 일어나는 거나 마찬가지겠죠. 그 속도는 물론 자동차를 추월하고요. 옐로스톤에서 워싱턴까지의 정확한 거리는 모르겠지만 대략 7시간 만에 화산재가 도달했다면 비행기와 견줄 만할 속도로 날아온 거란 건 알겠네요. 그런데 주인공 가족이 옐로스톤 한복판에서 캠핑카로, 경비행기로 화산재를 앞질러 탈출하네요.;; 경비행기는 혹시 쇄설물이 퍼지는 것보다 빠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화산재는 땀구멍에도 파고들 정도로 아주 미세하면서 단단하고 무거운 돌덩이라고 압니다. 그게 비행 중인 비행기의 엔진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_-;
무엇보다도, 극점이 이동할 정도면 옐로스톤만 폭발하진 않았을 거란 거죠. 그럼 화산재 같은 게 지구를 완전히 덮어버렸을 텐데, 당장 빙하기가 오지 않을까요. 그런데 1년 좀 지나니까 가벼운 차림으로 갑판에 올라가도 될 만큼 기상이 회복된다는 것은 -_-;;;;;;;;; 가장 이해가 안 되네요. 저는 지구과학을 교양 수준으로만 아니, 자세히 아는 분이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_-;;
천재지변 종합세트로 제작된 거라 그런지 <2012>에선 화산의 위력이 제대로 묘사된 것 같지 않네요. 오히려 미국 서해안 단층지대가 움직이는 지진 장면이 화산보다 더 강력해 보입니다. 화산 내지 옐로스톤 폭발이 일으킬 재앙이라면 <슈퍼 볼케이노>라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가 더 잘 묘사할 겁니다. 좀 아쉽습니다.
-휴머니티에 대해선 별로 할 말 없음. 재난영화가 다 그렇죠 뭐. 할리우드 영화인데도 미국이 지구를 지킨다는 마인드가 아닌 건 좋네요. 대신 제3세계의 돈 없는 놈은 어쨌든 죽을 팔자라는 건 알겠습니다. 아 현실적이에요. -_-a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으니 돈 뿌려서 살아남은 당신들도 거기서 새출발하쇼. 다만 자본주의스런 마인드는 남기지 마쇼. 당신들 대신 손발을 써주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으니 이제 자기 손발로 뭐든 해결해야 하거든. 새로운 서기력의 탄생 만세.
-자동차 광고? 이거 자동차 광고임? 왜 앵글조차 CF삘임? -_-;;;;
-각설, 재난장면들은 볼 만 했습니다. 머릿속으로 별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긴장감이 굉장했고요. 다만 그 사이사이에 있는 등장인물들간의 드라마는 지나치게 평이해서 텐션을 떨어뜨리는 것 같습니다. 2시간 40분 넘게 영화를 보는 동안 산 몇 개를 쉬지 않고 넘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 했네요. 시나리오상 딱히 절정이 있었던 것 같진 않습니다.
어쨌거나 눈이 엄청 즐거웠던 건 인정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