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라/오도의 팬들에게 기념비적인 첫 에피소드. 그러나 제작진의 본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작업_실패.jpg
스타데이트 47282.5~
보안실장 오도는 시스코 사령관의 요청으로 보안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그날 밤 쿼크는 점령기 때 DS9-테락 노어에 거주했던 여인의 의뢰로 그 시절 약국이었던 장소에서 베이조인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찾아낸다. 그것을 개봉한 쿼크는 여인이 보낸 청부업자의 총에 맞아 의식불명이 된다. 오도는 5년 전 그가 테락 노어의 보안실장으로 일할 계기가 되었던 첫 살인사건이 이번 사건과 연결됨을 발견한다. 그때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저항군으로 활동하던 키라였다. 명단을 봤던 롬이 단서를 제공한 직후 그가 언급한 이름의 베이조인이 살해된다. 명단에 적힌 것은 부역자들의 이름이었다. 오도는 여인이 그것을 빌미로 부역자들을 협박했다는 것, 그리고 그 때 무죄라고 판단해 놓아줬던 키라가 진짜 범인임을 알게 된다.
-보안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고 해봤자,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아뇨. 당신 한 번 써보고는 일지고 보고서고 묻지마 배째 모드로 돌아간 거지. -_-
-키라, 오도, 쿼크의 퍼스트 컨택트, 그리고 DS9이 테락 노어였던 시절을 묘사한 에피소드이다. 각 캐릭터들의 팬으로서도 재미있고, 에피소드 자체의 무거운 줄거리와 분위기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2시즌 최고의 에피소드로 꼽고 싶다. 랄까 오도! 소령님과의 역사적인 첫 대면이 왜 그 모양이야! OTL
키라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오도의 경우에는 두캇과도 퍼스트 컨택트였다. 어떻게 보면 두캇이 이들 모두의 만남을 이끈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자뻑 로망을 쓰는 게 생활인 두캇이라면 5x26(Call to Arms)의 그 상황에서 운명 내지 숙명적인 뭔가를 느꼈을지도. 흐으음.
-알파 분면의 그 숱한 휴머노이드 문화 중에서 오도가 가장 친근하게 여기는 건 역시 베이조 쪽인가 보다. 체인즐링은 기본적으로 휴머노이드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갖되 그들의 사상과 생명에 대해서는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듯하다. 그런데도 당시 베이조 총독이었던 걸 두캇 앞에서 "카다시아가 베이조를 점령한 건 정의가 아님 -_-" 같은 소리를 하고 베이조인 부역자들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는 걸 보면, 그것을 정말로 불의라고 판단했기에 베이조인들을 동정했거나, 베이조인들이 일반적으로 카다시아에 대해 가진 가치판단에 동의하고 그것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오도의 성격으로 볼 때 전자일 가능성이 더 높긴 하지만, 어쨌든 그의 사고체계는 베이조인의 것을 상당부분 따라가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피해입은 적도 관련된 적도 없는 휴머노이드(카다시안과 베이조인 부역자들)의 행동에 대해 '옳지 않다'는 가치판단을 어떻게 하겠나. 체인즐링답지 않게 나이브한 것 역시 열혈의 베이조인들과 그들이 처했던 극단적인 환경에서 어느 정도 영향받은 게 아닐까 싶다. 라아스는 200년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동족과 만나지 못했음에도 골수까지 체인즐링답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와 오도의 차이가 단지 휴머노이드 사이에서 부대낀 세월의 차이일 것 같진 않다. 아무튼 모라 박사를 비롯한 베이조인 여러분 감사합니다. OTL
-오도와 쿼크는 첫 만남부터 뭔가 어긋나 있었다. 쿼크는 아마 잠재적인 고객이 될지도 모를 낯선 손님과 친해보려고 그 화제를 꺼낸 게 아닐까 싶은데(아 당신이 그 사람이냐 나 그 이야기 안다는 당신 유명하다는- 이런 느낌?), 첫째로 둘은 그때 처음 본 사이였고, 둘째로 오도는 자기 이야기를 아무 앞에서나 안주거리로 삼을 만큼 사교적인 인물이 못 되고, 셋째로 그는 그 화제를 싫어했다. (1X17(The Forsaken)에서 그는 자신이 늘 연회에 불려가 광대 노릇을 해야 했던 걸 말하며 치를 떨었더랬다. 1시즌 때로부터 4년 전 시점인데 그 감정이 옅을 리 없지 않은가) 그 결과는? 앞으로 10년 넘게 이어질 쿼크의 불행이지.(...) 계속 말을 돌리다가 그 자리에서 제압당하는 것 봐라, 쿼크가 이렇게까지 정직해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우리의 치안관 뿐이다.(...)
그럼에도 의식불명인 쿼크를 생각하면서 방금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같은 표정이 되었다는 건, 역시 친구가 키라와 쿼크 뿐이라서겠지. 하아, 자신은 감정이 없다느니 휴머노이드의 표정은 잘 흉내내지 못하겠다느니 말하더니. =_=
-쿼크는 알파 분면의 다른 휴머노이드들 기준으로 언행이 밉상이라 그렇지, 한편으로는 베이조 노동자들에게 몰래 음식을 팔고 저항조직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줬으며 바에서 일을 시킬 땐 헐값이나마 래티넘을 지불하는 등 점령기의 베이조인들에게 사람답게 굴었다. 물론 페렝기의 방식(래티넘!)으로 했겠지만 말이다. 쿼크가 진짜 악한이었으면 절대 오도와 친구가 될 수 없었겠지.
-오도는 그 때 키라를 살려준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혹시라도 키라에게 실망한 게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한 거짓말을 지금까지도 숨긴 것이지, 부역자를 살해한 것 자체는 아니다. (오도는 두캇 앞에서 키라의 정체에 대해 침묵했다.) 키라의 살인과 거짓말은 카다시아의 부당한 지배에 대항해 살아남기 위한 필요악(necessary evil)이었다. 그렇기에 오도는 실망하면서도 키라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 에피소드 이후로 그에게서 '정의'를 추구하는 외로운 심판자로서의 캐릭터가 살그머니 약해진 것 같다. 적어도 이전처럼 맹목적인 개념으로 규정하진 않게 된 듯하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 대화에서 두 배우의 연기를 본 작가진은 어떤 계시를 받은 거시엇따. 그리하야 서로 푸념하고 조언을 해주던 절친이 커플제국을 향해 방향을 틀게 되엇떤 거시엇따. 나나 비지터와 르네 오베르조느와는 6시즌 때 까지도 그것에 대해 불평을 한 모양이지만 나는 작가들에게 넙죽 절하리라!(...)
키라와 오도의 관계는 DS9의 여러 복잡한 인간관계와 비교해봐도 흥미로운 데가 있다. 둘은 틀림없이 절친이며 1시즌 첫 에피소드 때부터 서로를 신뢰했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몇 번 씩 배신당해 실망하곤 했다. DS9 속의 다른 인물들 사이에도 정의를 내리기 복잡미묘한 관계가 몇 가지 있지만 이렇게까지 배신과 믿음을 주고받는 관계는 없다. (가령 개랙이 오도한테 도움을 요청했다가 도리어 그를 자기 손으로 고문하는 처지가 되었다거나, 체인즐링의 새 본거지를 싹쓸어버리려 시도할 때 아무도 그가 배신했다는 식으로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개랙과 협력할 때는 그가 목적에 따라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 게 어느 정도 전제로 깔려 있으니까. 배신이란 건 뒤통수 맞는 걸 생각하지 못했던 사이에서 쓰는 말 아닌가.) 아앗, 주로 배신을 때린 게 오도라고 말씀하진 마시라. 오도가 오직 키라 때문에 알파 분면에 붙어있음으로써 도미니언의 속을 긁은 그 수년 간 키라는 뭐 했노.(...) 워낙 캐릭터 사이의 역사와 믿음이 깊기 때문이라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결국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러한 관계는 이번 에피소드부터 6x07(You are cordially Invited)까지 몇 번이고 반복된다. 이 에피소드의 경우에는 5x08(Things Past)에서 포지션이 바뀌어 변주되기도 하고. 뭐어, 부러진 뼈가 전보다 더 단단하게 아무는 식의 그런 과정들이 있었으니까 7시즌 내내 누구도(그들 자신조차도) 깨지 못할 이해와 신뢰를 나눌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랄까 오도의 경우에는 6시즌에서 워낙 큰 건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이상 키라의 믿음을 깼다간 아주 절교당할지도 몰라;;;)
그래서 6x20(His Way)의 결착은 언제나 기쁘면서도 아쉽다. 묘하게 이건 아닌데 싶달까. =_=
-오도는 이 때의 외형이 깔끔하니 딱 좋았는데. 3시즌 부터는 뭔가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해진 것 같아서 조금 마음에 안 든다. 왜 머리를 부풀렸나효;
그리고 "Constable"은 역시 키라가 발음할 때 가장 아름답게 들린다. -_-*
Posted by 양운/견습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