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전의 마퀴 에피소드를 전후한 때부터 제작진이 '이것이 DS9'이라는 방향성을 완전히 잡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대로 감마 분면을 향해 고고싱!
평소처럼 바시어와 점심을 함께 하려던 개랙은 갑자기 심한 두통을 느낀다. 그는 바시어의 진료를 거부하고 쿼크를 통해 카다시아에서 뭔가를 몰래 들여오려 한다. 개랙이 요구한 물건, 그리고 두통을 일으킨 머릿속의 이식물은 옵시디언단과 관련된 것이었다. 방까지 찾아온 바시어에게 개랙은 망명생활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옵시디언단의 이식물은 그 고통을 일시적으로 경감시켜줄 수 있었다. 그것을 과도하게 사용했다가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 두통과 발작의 원인이었다. 두 사람이 이식물을 정지시키기로 동의한 가운데 개랙의 상태는 계속 악화된다. 바시어는 옵시디언단의 수장 이나브런 테인을 직접 만나 개랙을 구할 방도를 찾고 그의 과거에 대해 약간의 단서를 얻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일림 개랙! 당신의 이름을! -_-
개랙의 캐릭터 빌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에피소드. 옵시디언단 역시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1년 넘게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문학을 두고 논쟁하는 사이라면 보통은 두 사람을 친구로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관대한 잣지아의 기준으로도 바시어와 개랙은 친구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어느 범위까지 '친구'로 생각하는가 기준에 대한 문제가 아니겠지. DS9 전체를 통틀어 친구로 인정되는 관계들로는 시스코와 커존-잣지아 댁스, 키라와 잣지아, 오도와 쿼크, 제이크와 노그, 그리고 오브라이언과 바시어가 떠오른다. 이 관계들의 공통점은? 첫째로 흉허물 없이 애정(때로는 애증ㅋ)을 주고받고, 둘째로 서로의 생각을 꿰뚫어보며, 셋째로 서로를 단순한 동료 이상으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도와 쿼크의 우정 아닌 우정이 재미있는 거지만. 최고의 친구지간과 제일 꼬인 숙적지간이 사실은 한끗발 차이라는 것 말이다. ㅋㅋㅋ)
바시어와 개랙의 관계는 셋 다 해당되지 않는다. 개랙은 결코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고, 언제나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바시어 혼자 오픈마인드를 유지해봤자 외손바닥으로 무슨 손뼉을 치겠나. 게다가 바시어에게는 오브라이언이 있다. DS9 뿐 아니라 트렉 전체를 통틀어 손꼽히는 친구관계를 갖게 될 사람이 볼 때 개랙과의 이 기묘한 관계는 미적지근한 느낌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최소한 2시즌 무렵의 시점에서는 말이다.
이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바시어와 개랙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인 이상 친구 미만의 미묘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끝까지'는 아닌 것 같다. 요즘 생각해 보니, 개랙에게도 정거장에서 7년을 사는 동안 이곳 사람들에 대해 예전의 그라면 갖지 않을 유대감 같은 것이 생겼다는 징후가 있긴 있었다. 카다시안 특유의 츤데레 기질과 개랙의 영리한 거짓말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바시어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끝까지 살아남은 이들이 그들의 귀결을 보여줄 때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바시어와 개랙의 작별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봐도 친구의 작별이지 않았는가.
역시, 사람과 인간관계는 변하는 법인가 보다. 그래서 플롯을 가진 문화물을 볼 때 그런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고.
-어쨌거나, 적어도 이쪽에서는 친구라고 생각한 사람이 이쪽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때의 섭섭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2시즌 말의 바시어가 개랙을 친구로 생각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오브라이언과 덜 친했던 이 무렵 바시어가 가장 친하게 여긴 사람은 (만인의 친구 잣지아를 제외했을 때) 개랙이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오브라이언과 바시어의 관계는 그야말로 싸나이 우정이라 칭할 정통적인 친구관계였다. 하지만 '친구'라는 게 꼭 그런 관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인지라. 일치하는 관심사가 있어 매주 시간을 잡고 논쟁하는 것만으로는 친구라 볼 수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시간이 쌓이면서 무언가가 더불어 덧붙여질 것이다. 지인에서 출발해 친구 쪽으로 좀 더 기울어지게 하는 무언가 말이다. 그게 언제 친구로 변하는지 누가 아나. 인간관계라는 게 어디 숫자로 계량하고 표시할 수 있는 것이던가.
-생각해 보니 개랙은 우아함과 품위를 신조로 삼는 것 치고 망가지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구나. 만취한 개랙, 일부러 적의 속을 긁어 제일 먼저 얻어맞고 코피 터지는 개랙, 대략 좋지 않은 향정신성물질에 노출당해 돌아버린 개랙, 성깔 부리는 개랙, 폐소공포증으로 헉헉거리는 개랙. 헉헉거리는 개랙. 헉헉거리는...
헉. 위험했다. 헉헉.;;;;;
-결론은 개랙의 앤드류 로빈슨이 연기를 끝내주게 잘 했다는 것. 개랙은 최고다. -_-b
-드디어 때가 왔다. 개랙의 과거사를 추측하고 말리라. -_-!
첫째 거짓말 : 개랙은 점령기에 베이조에 주둔한 군대의 걸이었다. 철군 직전 탈옥한 베이조인들을 추적해 테락 노어까지 쫓아갔는데, 두캇의 명령 때문에 부하 일림이 수색차 승선한 그 배를 파괴해야 했다. 그 일로 도망자들 뿐 아니라 일림과 97명의 무고한 카다시안 시민들까지 사망했다. 사망자 중 한 명이 유명한 군장교의 딸이었기에 삭탈관직+추방 크리.
둘째 거짓말: 개랙은 옵시디언단 소속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수장 이나브런 테인의 오른팔이었다. 철군 직전 일림과 개랙이 다섯 명의 어린 베이조인 아이들을 취조하던 중 개랙은 순간의 변덕 때문에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 내보내줬다. 그것은 첫째 경우보다 더한 불명예로 여겨졌다. 테인이 그를 추방했다.
셋째 거짓말 : 일림은 부하가 아니라 형제같은 친구였다. 둘은 '테인의 아들들'로 불리며 강력한 권력을 누렸다. 단원 중 누군가가 베이조인 포로를 놓아줬다는 소문이 돌고, 개랙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두려워진 개랙은 일림에게 혐의를 씌우려 했지만, 일림이 먼저 배신해 개랙이 추방당했다.
.........아놔. -_-;;;
1번을 따라가면 개랙이 두캇을 증오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그런데 테인이 나중에 다른 이유를 언급한다. 그러므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다. -_-; 게다가 삭탈관직이면 모르되 추방당한 이유로는 불완전하다. 다만 개랙의 화려한 임무수행기록 중에 카다시아의 무고한 민간인이 휩쓸린 건수가 포함된 것은 틀림없으리라 생각한다. 그게 옵시디언단이니까.
2번은 애매하다. 개랙이 옵시디언단에서 테인의 후계자같은 지위에 있었으며 그 테인에 의해 추방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가 취조하도록 맡겨진 사람을 명령에도 불구하고 놓아준 적이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일 가능성은 있다. 3x21(The Die Is Cast)에서 개랙이 보인 언행을 보면, 철군 직전-즉 추방당하기 직전-의 그는 취조와 암살 분야에서 상당한 명성을 날리면서도 그것에 회의를 느끼는 듯했다. 다만 이것이 참이라도 추방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개랙이라면 먼저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손을 쓰고서야 상대방을 풀어줬을 테니까. 반대로 14살도 안 된 베이조인 꼬마들을 명령에 따라 카다시아 식으로 취조하고 사형대로 보내버리고는 계속 후회했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바시어에게 한 말은 '그렇게 해야 했다'라는 거짓말이었을 가능성 말이다.
3번에서 개랙은 자신이 먼저 친구에게 배신당했음에도 자신 역시 배신하려 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 바시어에게 용서를 구하기까지 했다. 바시어에게 더이상 과거에 대한 설명 내지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는 시점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므로 3번은 거짓말의 농도가 가장 옅으리라 본다. 그럼 개랙이 누군가를 배신하려 시도하긴 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3x21에서 테인은 개랙이 카다시아와 테인 본인을 배신했기에 추방당했다는 투로 말하고, 개랙은 무고하다고, 배신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개랙은 무고를 당하고 빠져나가기 위해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추방당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 대상이 이나브런 테인이었거나, 어떤 형태로든 그가 연관되었을 가능성 또한.
..........................아오 갈수록 오리무중일세. 이 이상 힌트가 주어지지 않는데 뭘 더 찾아내겠어.;;;;;;
추방당한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이 어떤 죄책감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세 거짓말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 '일림'은 바로 개랙의 이름이지 않은가. 개랙이 카다시아의 민주화를 지지한다면, 군정을 뒷받침하는 옵시디언단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서일 거라 생각한다. 그나저나 고통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져 울고 화내고 난리가 난 사람이 그 와중에도 거짓말을 꾸며내는 걸 보면 개랙은 타고난 양치기소년인가 보다.;;
-테인은 쿼크가 카다시아 프라임에 개랙의 코드를 전달한 순간부터 문제가 생겼다는 걸 파악한 모양이다. 그런 그가 정말로 개랙이 고통을 당하길 원했다면 바시어에게 이렇게까지 협조적으로 나오진 않았겠지. 정보를 몽땅 내주기 앞서 스타플릿 군인이 멋대로 들어오는 걸 싫어라 할 군부부터 알아서 얼러뒀다고? -_-;
DS9의 전체 내용을 대략 기억하는 상황에서 다시 보니 이나브런 테인의 거짓말 패턴은 보이는 것도 같다. (개랙은 도무지 못 읽겠다. -_-;;;) 테인이 바시어에게 한 말은 틀림없이 진심이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테인이 개랙만은 죽이지 못하고 추방으로 끝낸 이유가 무엇이던가. 카다시안의 본성에 내재된 츤데레 기질은 연방 사람이 보기에 쯧쯧 혀를 차고 싶을 지경이리라. (그리고 내가 혀를 차고 있다. 쯧쯧쯧) 하지만 국가와 정부에 충성하며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명예인 카다시안에게는 이게 당연하겠지. 그래서 개랙이 그토록 테인한테 당하고도 바라는 게 그것 하나 뿐이던 것이고.
-두캇은 걸 직위가 바로 두캇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걸 두캇'으로 부르는 게 입에 딱 붙는다. 하지만 개랙과 걸은 뭔가 어울리지 않은 느낌. 개랙한테는 '저스트 플레인 심플'이 가장 개랙스러운 수식어라 생각한다. 그 수식어 자체가 거짓말이기에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