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홀 앞 우주정거장
어떤 종류의 인간관계
양운/견습기사
2009. 11. 10. 04:24
1.
당하기 전에 먼저 친다, 당장은 아니지만 당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일단 공격한다- 전략의 기본은 도미니언이나 카다시아&로뮬란 연합이나 마찬가지. 고형족이 자신들을 해칠 수 없도록 선수를 쳐서 지배 하에 두려는 도미니언이나, 감마 분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거대 제국이라면 여러 세력이 알력 다툼을 하는 알파 분면 쯤은 가볍게 찜쪄 먹으리라 보고 종족(21세기 식으로 말하자면, 인종)청소를 시도하는 연합이나, 구경꾼 입장에서는 솔직히 병맛이다. 하지만 파운더들의 편집증에 가까운 행태나 알파 분면 쪽의 "전시에 종족 청소 그까이거" 마인드나, 둘 다 아주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양 분면의 충돌은 대개 종족갈등이나 전쟁의 이유가 되는 정치적인 문제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생물이 기본적으로 지니는 생존본능, 즉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근원적 공포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여기서 DS9의 연방은 다른 트렉이었다면 피했을지도 모를 길로 갔다. 언제나 도덕을 소리높여 외치던 연방이 카다시아와 로뮬란의 전략을 이어받아 종족 청소를 시도하고, 그것이 도미니언 전쟁에서 알파 분면이 승리하는 양대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물론 DS9의 웜홀 사수. 아쉽지만 카다시아의 독립투쟁(?)은 전체 국면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후방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긴 하지만 도미니언의 생산력과 화력이 워낙 월등했달까 카다시안의 무장독립투쟁과 사보타지가 효과를 내기 전에 연방이 들이닥쳤달까 막판에 키라와 개랙이 쳐들어가지 않았어도 어쨌든 연방이 이기긴 이길 상황이었다)
(기억이 좀 불확실한데, VOY에도 보그를 상대로 바이러스를 뿌리는 에피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첫째로, VOY가 중심으로 삼는 테마 중에서 연방 자체의 도덕성은 순위가 밀리는 편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커피! 블랙! 홈 스윗 마이 홈으로, 프라임 디렉티브만은 지키려 노력하지만 그 밖에는 무슨 수단이든 동원할 각오가 되어 있고 그것이 꽤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되는 편이다. 둘째로, 보그는 트렉 공인의 악당이다. 체인즐링과 휴머노이드는 공존할 수 있지만 보그와 휴머노이드는 아마도 그렇지 않다. 요컨대 대연결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시청자는 충격과 연민을 느끼겠지만 보그드론의 시체를 보면 별 감흥이 없을 것이며 보그퀸에 이르면 만세삼창일 것이다.-_-a)
2.
어라, 잠깐. 3x20과 3x21에서는 카다시아와 로뮬란의 손을 빌려 슬그머니 힌트를 줬고, 4x10과 4x11에선 연방 측이 본격적으로 공포를 느낌으로써 그런 방향을 고려할지도 모른다는 배경을 깔아줬더랬지. (7시즌 들어서야 끼워넣은 게 아닌가 싶지만, 어찌 됐든 오도가 처음 감염된 시기는 지구를 방문한 이 무렵으로 설정되어 있다) 거기서 묘사되는 체인즐링에 대한 공포는 알 카에다 류의 테러가 야기한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와 비슷한 데가 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스타플릿의 장성 씩이나 되는 인물이 연방을, 정확히 말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인권침해와 권한남용은 9.11 이후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선보인 태도와 비슷한 데가 있다. 4시즌은 95년에 방영되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거 그깟 드라마 속에 몇 년 후의 현실이 예고되어 있었네 그려? -0-;
대중적인 문화물에서조차 소 뒷걸음질 격으로나마 선견지명이 드러날 때가 있지만,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정해진 법이고, 그것으로 뭔가를 해내기까지 할 수 있는 인물은 더더욱 적을 수밖에 없겠지. 아무튼 현실의 미국에서는 대인배 시스코 부자가 아니라 체니스러운 레이튼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이어졌다.
3.
어찌 됐거나- 트렉 내의 커다란 줄거리가 유유히 굽이치는 한편에서는 개인사들이 마구 요동치고 있었더랬지.
에혀.. 그냥 디카를 지르던가 해야지.. 스탠드 아래에 대놓고
휴대폰으로 찍었더니 난데없는 장소에 광원효과가 박혔네;;;
사실 오늘의 포스팅 목표는 이 낙서를 올리는 것인데 뭔가 머리가 커졌다. 하여간 뽑아내려고만 하면 이야깃거리가 마구 나오는 게 DS9인지라.;
요즘 카다시안들을 집중적으로 낙서하다 보니 갑자기 개랙의 에피소드가 땡겼다. 음, 개랙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대부분이 별 다섯 만점에 최소 4.5개는 받을 것들이지. 생각난 김에 3x20(Improbable cause)과 3x21(The die is cast) 고고싱.
3시즌 당시, 타의로 추방된 개랙과 자의로 망명 비슷한 처지에 놓인 오도는 이 웜홀 앞 우주정거장 밖에 있을 곳이 없는 아웃사이더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었다. 그 안에서 맺는 인간관계들은 피상적이었으며,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단은 오직 일 뿐이었다. 그나마 오도에게는 일방통행에 불과해도 키라(와 쌍방통행의 쿼크. 인정하쇼 -_-)가 있었지만 개랙은 꿈도 희망도 없었다. 그렇기에, 친부이자 스승이자 그를 추방한 장본인인 테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정거장에서 보낸 3년간 개랙은 변했다. 어쩌면 개랙이 추방당했을 무렵 이미 모종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추방을 설명한답시고 늘어놓은 거짓말들에는 공통적으로 도덕적 가책에 대한 언급이 들어있었으니까. 오도를 고문하면서 자신이 고문당하는 것처럼 괴로워하던 개랙은 테인이 기억하고 필요로 하던 그 냉혈한이 아니었다. 그리고 고문 끝에 얻어낸 오도의 진심은 단 한 마디, "동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것 뿐. 어쩌면 개랙에게는 오도를 고문했다는 것 자체보다 이 한 마디가 더 통렬하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가 그런대로 가까이 지내던 사람을 그렇게 쥐어짠 것은 바로 테인의 눈에 듦으로써 어떻게든 동족에게 돌아갈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계획을 역으로 이용당해 연합함대가 공격당할 때 개랙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도를 구출하는 것이었고, 테인을 구하려고 불구덩이에 뛰어든 개랙을 끄집어내어 목숨을 살려놓은 것은 오도였다. 돌아가는 런어바웃 안에서 개랙이 사과하지만, 아마도 기분상 말로 표현해야 할 것 같아 했을 뿐, 두 사람 모두 서로의 행동을 완벽하게 이해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역시 개랙이 나오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을 때였다.
개랙이 자기 손으로 날려버린 가게를 정리하고 있을 때 오도가 들어온다. 그의 모습은 직접 드러나지 않은 채 폭발 때 거울에 묻은 그을음을 닦아낸 자리에 그림자로 비친다. 개랙은 앞으로도 DS9의 "재단사"로서의 가면을 유지하겠다 말하고, 오도는 식사가 필요하지 않은 존재이면서 함께 식사하자고 말한다. 연달아 이어진 두 개의 에피소드 내내 두 사람의 대화는 그런 식이었다. 수 개로 해석될 수 있는 함의와 감정과 상황이 얽혀 모호하고 묘한 여운이 있었다. 이 장면은 무슨 의미일까. 가게 정리는 개랙이 여태 가장했던 모습을 스스로 날려버렸기에 다시 같은 가면을 쓰더라도 그 아래의 얼굴은 이전과 달라질 것을 암시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도는 왜 흐릿한 그림자로 등장할까. 개랙과 오도의 관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약간의 교감이 좀 더 더해진 상태에서 피상적으로 이어질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그을음을 닦아낸 진심에 드디어 누군가가 그림자를 슬그머니 비친 것인가?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사실 전 시리즈를 끝까지 보고 나서도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개랙은 새빨간 거짓말쟁이이고 오도는 키라(그리고 쿼어어크) 이외의 사람에 거의 눈길을 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개랙 역의 앤드류 로빈슨이 보여준 저 표정이, 내 낙서에서는 비록 망쳤지만;;; 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그늘진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전 시리즈를 통틀어 개랙이 생글거리는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정말 몇 안 되는 장면이기에.
(물론, 앓는다던가 훽 돌아버린다던가 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일 때는 제외하고. -_-)
둘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고, 내가 읽지 못한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겠지. 확실한 것은, 아마도 바시어와 개랙이 지인 이상 친구 미만의 기묘한 관계에 서로 만족하던 것처럼, 이들도 이 정도에서 만족했으리란 것이다. 웜홀 앞 우주정거장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적 아니면 친구로 명확하게 갈리는 것이 아니다. 그곳은 대단히 다양하고 넓은 명도의 회색들이 물 위에 유성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섞여있다.
내가 낙서 실력만 되었다면 좋아하는 에피소드 별로 패러디를 덧붙여서 이리저리 꼬아보며 놀 수 있을 텐데. 이러다 카테고리 트는 건 아니겠지 설마. 사, 사실 전 트레키 같은 거 아니라는. 다른 시리즈는 그냥저냥 봤고 DS9만 불타오르는 거라는.;;;
당하기 전에 먼저 친다, 당장은 아니지만 당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일단 공격한다- 전략의 기본은 도미니언이나 카다시아&로뮬란 연합이나 마찬가지. 고형족이 자신들을 해칠 수 없도록 선수를 쳐서 지배 하에 두려는 도미니언이나, 감마 분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거대 제국이라면 여러 세력이 알력 다툼을 하는 알파 분면 쯤은 가볍게 찜쪄 먹으리라 보고 종족(21세기 식으로 말하자면, 인종)청소를 시도하는 연합이나, 구경꾼 입장에서는 솔직히 병맛이다. 하지만 파운더들의 편집증에 가까운 행태나 알파 분면 쪽의 "전시에 종족 청소 그까이거" 마인드나, 둘 다 아주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양 분면의 충돌은 대개 종족갈등이나 전쟁의 이유가 되는 정치적인 문제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생물이 기본적으로 지니는 생존본능, 즉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근원적 공포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여기서 DS9의 연방은 다른 트렉이었다면 피했을지도 모를 길로 갔다. 언제나 도덕을 소리높여 외치던 연방이 카다시아와 로뮬란의 전략을 이어받아 종족 청소를 시도하고, 그것이 도미니언 전쟁에서 알파 분면이 승리하는 양대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물론 DS9의 웜홀 사수. 아쉽지만 카다시아의 독립투쟁(?)은 전체 국면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후방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긴 하지만 도미니언의 생산력과 화력이 워낙 월등했달까 카다시안의 무장독립투쟁과 사보타지가 효과를 내기 전에 연방이 들이닥쳤달까 막판에 키라와 개랙이 쳐들어가지 않았어도 어쨌든 연방이 이기긴 이길 상황이었다)
(기억이 좀 불확실한데, VOY에도 보그를 상대로 바이러스를 뿌리는 에피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첫째로, VOY가 중심으로 삼는 테마 중에서 연방 자체의 도덕성은 순위가 밀리는 편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2.
어라, 잠깐. 3x20과 3x21에서는 카다시아와 로뮬란의 손을 빌려 슬그머니 힌트를 줬고, 4x10과 4x11에선 연방 측이 본격적으로 공포를 느낌으로써 그런 방향을 고려할지도 모른다는 배경을 깔아줬더랬지. (7시즌 들어서야 끼워넣은 게 아닌가 싶지만, 어찌 됐든 오도가 처음 감염된 시기는 지구를 방문한 이 무렵으로 설정되어 있다) 거기서 묘사되는 체인즐링에 대한 공포는 알 카에다 류의 테러가 야기한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와 비슷한 데가 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스타플릿의 장성 씩이나 되는 인물이 연방을, 정확히 말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인권침해와 권한남용은 9.11 이후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선보인 태도와 비슷한 데가 있다. 4시즌은 95년에 방영되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거 그깟 드라마 속에 몇 년 후의 현실이 예고되어 있었네 그려? -0-;
대중적인 문화물에서조차 소 뒷걸음질 격으로나마 선견지명이 드러날 때가 있지만,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정해진 법이고, 그것으로 뭔가를 해내기까지 할 수 있는 인물은 더더욱 적을 수밖에 없겠지. 아무튼 현실의 미국에서는 대인배 시스코 부자가 아니라 체니스러운 레이튼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이어졌다.
3.
어찌 됐거나- 트렉 내의 커다란 줄거리가 유유히 굽이치는 한편에서는 개인사들이 마구 요동치고 있었더랬지.
휴대폰으로 찍었더니 난데없는 장소에 광원효과가 박혔네;;;
사실 오늘의 포스팅 목표는 이 낙서를 올리는 것인데 뭔가 머리가 커졌다. 하여간 뽑아내려고만 하면 이야깃거리가 마구 나오는 게 DS9인지라.;
요즘 카다시안들을 집중적으로 낙서하다 보니 갑자기 개랙의 에피소드가 땡겼다. 음, 개랙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대부분이 별 다섯 만점에 최소 4.5개는 받을 것들이지. 생각난 김에 3x20(Improbable cause)과 3x21(The die is cast) 고고싱.
3시즌 당시, 타의로 추방된 개랙과 자의로 망명 비슷한 처지에 놓인 오도는 이 웜홀 앞 우주정거장 밖에 있을 곳이 없는 아웃사이더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었다. 그 안에서 맺는 인간관계들은 피상적이었으며,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단은 오직 일 뿐이었다. 그나마 오도에게는 일방통행에 불과해도 키라(와 쌍방통행의 쿼크. 인정하쇼 -_-)가 있었지만 개랙은 꿈도 희망도 없었다. 그렇기에, 친부이자 스승이자 그를 추방한 장본인인 테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정거장에서 보낸 3년간 개랙은 변했다. 어쩌면 개랙이 추방당했을 무렵 이미 모종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추방을 설명한답시고 늘어놓은 거짓말들에는 공통적으로 도덕적 가책에 대한 언급이 들어있었으니까. 오도를 고문하면서 자신이 고문당하는 것처럼 괴로워하던 개랙은 테인이 기억하고 필요로 하던 그 냉혈한이 아니었다. 그리고 고문 끝에 얻어낸 오도의 진심은 단 한 마디, "동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것 뿐. 어쩌면 개랙에게는 오도를 고문했다는 것 자체보다 이 한 마디가 더 통렬하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가 그런대로 가까이 지내던 사람을 그렇게 쥐어짠 것은 바로 테인의 눈에 듦으로써 어떻게든 동족에게 돌아갈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계획을 역으로 이용당해 연합함대가 공격당할 때 개랙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도를 구출하는 것이었고, 테인을 구하려고 불구덩이에 뛰어든 개랙을 끄집어내어 목숨을 살려놓은 것은 오도였다. 돌아가는 런어바웃 안에서 개랙이 사과하지만, 아마도 기분상 말로 표현해야 할 것 같아 했을 뿐, 두 사람 모두 서로의 행동을 완벽하게 이해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역시 개랙이 나오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을 때였다.
개랙이 자기 손으로 날려버린 가게를 정리하고 있을 때 오도가 들어온다. 그의 모습은 직접 드러나지 않은 채 폭발 때 거울에 묻은 그을음을 닦아낸 자리에 그림자로 비친다. 개랙은 앞으로도 DS9의 "재단사"로서의 가면을 유지하겠다 말하고, 오도는 식사가 필요하지 않은 존재이면서 함께 식사하자고 말한다. 연달아 이어진 두 개의 에피소드 내내 두 사람의 대화는 그런 식이었다. 수 개로 해석될 수 있는 함의와 감정과 상황이 얽혀 모호하고 묘한 여운이 있었다. 이 장면은 무슨 의미일까. 가게 정리는 개랙이 여태 가장했던 모습을 스스로 날려버렸기에 다시 같은 가면을 쓰더라도 그 아래의 얼굴은 이전과 달라질 것을 암시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도는 왜 흐릿한 그림자로 등장할까. 개랙과 오도의 관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약간의 교감이 좀 더 더해진 상태에서 피상적으로 이어질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그을음을 닦아낸 진심에 드디어 누군가가 그림자를 슬그머니 비친 것인가?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사실 전 시리즈를 끝까지 보고 나서도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개랙은 새빨간 거짓말쟁이이고 오도는 키라(그리고 쿼어어크) 이외의 사람에 거의 눈길을 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개랙 역의 앤드류 로빈슨이 보여준 저 표정이, 내 낙서에서는 비록 망쳤지만;;; 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그늘진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전 시리즈를 통틀어 개랙이 생글거리는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정말 몇 안 되는 장면이기에.
(물론, 앓는다던가 훽 돌아버린다던가 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일 때는 제외하고. -_-)
둘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고, 내가 읽지 못한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겠지. 확실한 것은, 아마도 바시어와 개랙이 지인 이상 친구 미만의 기묘한 관계에 서로 만족하던 것처럼, 이들도 이 정도에서 만족했으리란 것이다. 웜홀 앞 우주정거장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적 아니면 친구로 명확하게 갈리는 것이 아니다. 그곳은 대단히 다양하고 넓은 명도의 회색들이 물 위에 유성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섞여있다.
내가 낙서 실력만 되었다면 좋아하는 에피소드 별로 패러디를 덧붙여서 이리저리 꼬아보며 놀 수 있을 텐데. 이러다 카테고리 트는 건 아니겠지 설마. 사, 사실 전 트레키 같은 거 아니라는. 다른 시리즈는 그냥저냥 봤고 DS9만 불타오르는 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