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 내직/외직 구분은 2012년으로 넘어간 지금도 잘 모릅니다. 본문에서 관직에 대한 내용은 매우 부정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도 중심으로만 봐주세요.)
리퀘를 하러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니 평소 소홀했던 촉서 후반 부분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비의전을 읽다가 돌연 졸린 눈이 번쩍 뜨였다.
건흥8년(230년)에 비의는 중호군으로 전임되었고 ... (비의전)
1.
촉에는 비의 이전에 중호군을 역임한 사람이 있었다. 조운이다. 조운이 사망한 시점은 후출사표를 진짜라고 전제할 경우 228년, 조운전에 적힌 연도가 정확할 경우 229년이다. 어떻게 봐도 비의가 임명되기 전까지 중호군직이 1년, 어쩌면 그 이상 붕 떠있었다. 아스트랄하기 짝이 없는 촉한의 관직체제와 사료가 얽혀 그 사이에 잠시 중호군 노릇을 한 누군가를 빼먹었거나, 비의가 228년 내지 229년에 사망한 조운을 이어 바로 임명되었지만 비의전이 부정확하게 기록된 것이거나, 정말로 공석이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중호군은 일단 내직이다. 일전에 제갈량의 남중 평정과 관련된 망상잠답을 할 땐 조운이 중호군에서 외직인 정남장군으로 옮겨갔다는 식으로 끄적이긴 했는데, 그건 내직과 외직을 겸하지 않는 게 상례였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2.
우선 '중호군'이 뭐하는 자리인지 정확히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中護軍으로 구글링하니 대륙의 위키가 떴다. 간체는 눈이 아픈지라 다 읽진 못했고, 단어를 정의하는 부분만 옮겨본다. 허섭하게 한자의 훈만 따라가자면,
護軍是中國古代的高級軍事長官的官名,其中中护军、中领军、中都护等职位掌管禁軍、主持選拔武官、監督管制諸武將。(護軍)
호군은 중국 고대의 고급군사장관직명이다. 그중 중호군, 중령군, 중도호 등은 금군을 담당했으며, 주로 무관을 선발하고 모든 무장들을 감독, 관제했다.
쯤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중국어를 아는 분들께서 오역을 발견하실 경우 지체없이 댓글로 정정해주시길 부탁합니다. 구글링하다 보니 바이두ㅋㅋ까지 흘러갔는데 거기선 건안12년(207) 조조가 기존의 호군, 영군을 중호군, 중령군으로 바꾼 기록을 적었다. 그 글의 출처는 진서 직관지인 듯하다. 그냥 고원님 블로그를 가지 내가 뭣하러 읽지도 못하는 바이두에 들어갔을까ㅋㅋㅋ 어쨌거나 저 셋이 관련업무에 관해서는 대략 비슷한 직급이라고 친다면, 셋은 모두 일반적인 호군보다 위다. 진도가 호군으로서 중도호 이엄의 명령을 받으며 영안에 주둔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엄전)
일단 후주 시절 중호군, 중령군, 중도호였던 촉나라 사람들을 검색해보았다. 즉슨 한중왕의 호군장군인 법정은 제외.
중호군에는 조운(조운전), 비의(비의전) 두 사람이 있고 중령군에는 상총(상랑전)이 언급된다. 중도호의 경우 위나 오에는 그런 예가 없고 오직 이엄 한 사람만이 검색된다. 촉 특유의 제도였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도호 역시 호군의 일종으로 취급되는 듯하니 그렇게 전제하겠다. 이엄은 후주가 즉위한 때부터 그 자신이 서인으로 강등될 때까지 쭉 중도호 직을 유지했던 것 같다. 특히,
장무3년(223년)에 ... 이엄을 중도호로 임명하고 안팎의 군사를 통솔하며 영안에 주둔하도록 했다. ... ... 가절로 삼고 ... 건흥4년(226년) 전장군으로 전임됐다. 제갈량은 한중으로 출병하려고 하면서 ... (이엄을) 강주로 옮겨 주둔시키고 ... ... 건흥8년(230년) ... 이엄에게 중도호의 신분으로 승상부의 일을 맡도록 명령했다. (이엄전)
여기서 보듯이 이엄은 중도호이면서 영안이나 강주 같은 외지에 나가 주둔하고 있었다.
한나라의 조직을 그대로 계수한 위나라라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다소 변형해서 쓴 촉에서는 내직 외직 구분이 엄격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조운은 성도에선 중호군이고 출장 나가면 정남 내지 진동장군이었을 것이다. 중도호가 정확히 어떤 특성을 가진 자리인지를 파악하고 나야 확실해지겠지만 말이다. 이래서 정확한 근거에 바탕하지 않으면 줄줄이 꼬이지. -_-;
3.
헌데, 이엄이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고 본다. 이엄은 제갈량이 남정과 북벌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동안 중앙에서 뚝 떨어져 동오 방면을 수비했다. 부하를 처형할 권한인 가절에 무관을 선발할 권한이 있는 중도호 자리까지 있었으니, 아마도 동쪽에 있을 때의 이엄은 탁고대신의 후광까지 겹쳐져 대단한 권한을 가졌으리라 생각된다. 역시 중도호가 정확히 어떤 자리인지 알아야 좀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을 듯한데, 중도호로서의 이엄은 호군™의 연장으로서 내직인 중호군이나 중령군과 비슷한 부류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제갈량이 같은 탁고대신에게 동방을 완전히 맡겼다는 신뢰의 표시인지 어떤 의미로 견제 들어가면서 생색을 내준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유비가 죽기 직전 직접 백제성까지 불러 상서령으로 임명한 사람을 유비가 죽자마자 중앙에서 배제시켜 바깥으로만 돌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니 넘어가자.)
(+추가 : 이엄이 중도호 된 건 유비 생전의 일. 이엄전에서 같은 해에 있었던 일을 일부러 장무/건흥으로 연호 구분해 적고 있는 걸 내가 빠뜨린 것. 승상은 무죄다! 무죄다! 무죄다!)
그 이엄의 시대에 중앙 쪽에서 무관을 선발할 권한이 있었던 사람은 대체로 조운(223~228/229)이었고 조운이 사망한 후에는 비의(230~이엄이 실각하는 231)였을 것이다. 다시 조운과 비의 사이의 공백으로 가자. 이들과 같은 호군™으로 분류되는 상총의 케이스에 답이 있었다.
다름아닌 전출사표다. 밑줄 친 부분은 중웹에서 가져온 호군™의 직무와 대강 일치한다. 실제로 상총은 제갈량이 출사표를 통해 천거한 후 중령군이 되었다.(상랑전)
내 생각인데, 기존에 중호군으로서 중앙군을 통제하고 무관의 선발을 관장하던 조운이 제갈량을 따라 북벌하러 나가면서 생긴 공백을 상총에게 맡긴 것 같다. 그렇다면 조운이 사망한 후 비의가 중호군이 되기까지 사이의 공백 역시 상총이 담당했을 것이다. 어차피 비의도 북벌이 시작된 때부터 참군으로서 따라다녔으니까 혹시 비의가 인사권을 행사한다면 그건 한중에서 북벌군을 상대로 하는 이야기였겠지. 생각보다 답이 간단했네.
p.s2 이게 무슨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이 포스팅 끄적이고 얼마 안 되어 갤에서도 호/령/도 썰이 풀려서 깜놀. 특히 모 님이 올리신 자료짤에 대략 정신이 아득해진다. 중도호가 내외의 군사 통할, 중령군은 성도에서 금군 숙위, 중호군은 외정 따라가기? 물론 그렇게 보면 해당 관직에 있었던 인물들의 행보와 상당히 맞아 떨어지긴 하는데, 정확한 내용을 모르겠다. 우선 나는 중령군과 중호군의 우열엔 관심이 없고, (설령 따지더라도 조운의 공석을 채우러 들어온 상총이 조운보다 높다고 생각하긴 어렵지 않은가. 상총 이전에는 촉나라에 중령군이 없었던 것 같은데 상총이 중령군 된 시기를 보면 더더욱 상총>조운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된다. 이미 중호군(조운)이 있으니까 북벌 나간 사람 대신 성도에 앉히면서 호군™으로 중령군 시켜준 거지 위나라처럼 상하관계였다거나 하는 걸로 보이진 않는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군부의 실권이 성도에 남은 유선이 아니라 제갈량한테 있는 상황에서 유선 지키는 사람이랑 제갈량 따라간 사람을 비교하면 누가 더 빠와가 있겠냐고(...)) 중호군이 정확히 뭐하는 자리인지만 알면 속이 시원해지겠는데 말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외직 내직 구분하는 게 의미 없는 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으아아 모르겠어! 제발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안다고 썰을 풀어달란 말요!;;;
p.s.3 방금 갤에서 그 자료짤 올린 횽이 흘린 자료를 또 하나 받아먹었음. 촉의 호군은 동한의 대장군 제도를 답습했다, "대장군 출정시 중호군 1인을 둔다" 라고. 조운이 중호군 된 223년 이후 촉나라에서 대장군 노릇한 게 누구였냐면(...) 내가 빨리 리퀘부터 해치우고 또 팬픽질을 해야 할 것 같아.(...)
p.s.4 왜 비밀글이 화봉 포스팅에 달렸나 했더니 이게 비공개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