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210년 무렵 유손연합이 돌아가는 상황 망상용 재료
1. 노숙전 메모
1) 200년 손책의 죽음 후~203년 손권의 첫 황조 공격 사이
손권 : 난 제환공, 진문공의 업을 이룰거임. 자 너님은 나를 어떻게 섬길 생각?
막 빈객이 된 노숙에게 하는 말이니 아마도 관도대전 전후한 무렵일 테고, 조조의 위세는 차치하더라도 아직 천하가 유씨의 황실을 형식적으로는 인정하고 있어서, 실제 포부보다 줄여서 말했을 가능성은 있음. 즉슨 춘추오패가 그랬듯 황실을 인정하면서 독자적인 왕국을 세우겠다 정도의 말로 여겨짐.
이에 대한 노숙의 대답 : ㄴㄴ 님이 목표해야 할 건 한고조.
유씨는 이미 시tothe망. 그렇지만 조조는 잘 나가니까 일단 강동만 먹고 관망하는 거임. 그 정도 규모만 가지면 역적의혹은 안 받겠져. 조조가 북쪽(원씨 문제)에서 바쁜 동안 황조 잡고 유표 쳐서 장강 먹은 다음, 왕이 되고, 한고조처럼 천통 고고싱하는 거임요.
손권의 반응 : 헐 님 지금은 한실 인정하면서 본진부터 키워야겠음 아직은 본진이 딸려서 멀티 못 침
(+자포 어르신의 반응 : 노숙 저 꼬꼼화 늅늅새퀴 껒ㅗㅗㅗㅗㅗㅗ)
2) 208년
유표가 죽은 직후 노숙의 판단 :
앞서 언급했듯 형초(장강)를 먹어야 왕노릇도 한다는 전제로,
유비가 유종 세력과 연합 -> 동맹하죠
유비가 유종 세력과 불화 -> 상황봐서 생각하죠
당시 유비 패밀리는 조그만 현 하나에 객으로서 틀어박혀 있을 뿐이었는데도 형주의 후계자가 아니라 유비의 행보를 중심으로 생각했다는 게 의미심장함.
그리하여 노숙이 하구에 도착했을 때 조조가 벌써 형주로 출발했다는 소식 들음
(노숙은 오군에서 유표 죽음 듣고 출발했다는 것 상기할 것)
남군에 도착했을 때 유종 투항, 유비 탈출 (유종도 조조도 레알 서두르긴 서둘렀근영)
이에 직접 유비 만나러 당양현 장판까지 감
색깔의 의미는 적지 않겠심. 아무튼 노숙 또한 미친듯이 서둘러서 유비를 만나러 갔다는 건 알겠음.
노숙은 유종이 항복함으로써 유비와 결별한 걸 알자 유종 버리고 유비 선택. 이게 조그만 유비 패밀리는 흡수해서 조조와 대적시키고 강동은 형주의 나머지 땅이나 먹자는 생각인 건지, 신야에서도 쫓겨난 유비를 형주의 주인이었던 유표와 동등한 가치가 있는 상대로 봐 본래 동맹하려 했던 유표(정확히는 유표의 후계자) 대신 형주의 진정한 대표로 인정한 건지는 모르겠음. 후자의 경우라면 나의 촉빠 성향 때문에 좀 비약된 망상일 가능성은 있는데, 노숙이 다름아닌 장판파까지 갔다는 게 중요할지도 모르겠음. 고향땅 버려가며 유비를 따라나온 10만 명의 형주 사람들을 직접 목격했다면, 그 10만 명의 주인을 누구라 생각하겠음? 유종은 아니지 않겠음?
무엇보다도, 신야를 버려야 했고 양양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유비를, 도대체 가진 것 하나 없어 보이는 그 유비에 대해 뭘 믿고 노숙이 저렇게 죽어라 찾아갔던 것인지 그게 정말 궁금함.
조조는 유비가 정말로 포기하는 법 없이 죽을 때까지 자신과 싸울 거라는 걸 알았고, 그렇게 믿었음. 그래서 양양을 떠난 유비가 싸울 장소를 찾을 것이고 그게 강릉이라는 것도 알았음. 유종이고 군대고 내버려둔 채 경기병만으로 무조건 유비부터 잡으러 가면서 조조가 무슨 생각 했을지 상상하면 섬뜩하면서도 뭔가 짜릿한 기분이 듦.
물론 유비는 그럴 생각으로 도망쳤고, 그러면서도 자신을 따르는 10만 명을 버리지 않았음. 10만 명의 목숨을 담보로 조조와 조낸 정치적인 밀당을 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냥 그게 유비, 유현덕이라는 사람인 것 같음. 평범하게 생각하면 미쳤다고 밖에 할 말이 없는데도 그렇게 해야 하니까 하는 양반.
노숙은 어떻고. 진짜 뭘 믿고 끝까지 유비를 쫓아갔나. 유종이 유비를 버린 순간 이미 쥐쥐 아닌가. 그런데 왜 당장 손권한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사람을, 조조군의 맹추격 때문에 노숙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양반을 저렇게 찾아갔느냔 말이다. 노숙이 처음 본 유비 패밀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조군이 들이닥치기 직전의 어수선한 피난민 행렬이었을까? 조조군이 이미 들이닥쳐 유비조차 처자를 버리고 도망쳐야 할 정도로 우왕좌왕하고 있는 생지옥이었을까? 다 끝나고 피로와 패배감 같은 것에 쩔어 있는 너덜너덜한 무리였을까? 혹시, 이후 유비에 대해 노숙이 강동의 여타 중신들과는 다른 태도를 취한 것은 장판파에서 목격한 것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모든 사건이 어떻게 장판파라는 한 장소에서 짠 하고 벌어지느냔 말이다. 아. 장판파만 생각하면 난 진짜 미칠 것 같아. 이런 드라마가 또 있을까!
오서(삼국지 말고)에 기록된 노숙과 관우의 회담 중에 노숙이 당시의 일을 회상하는 대목 주의. 노숙은 장판파에서 유비군과 조우했을 때 그쪽의 상황이 매우 열악한 걸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 물론 이 대목은 노숙이 형주 문제로 관우와 언쟁을 벌이는 중에 언급되는 것이니 기싸움에서 압도하려는 의도가 있었겠지. 오서 자체가 오나라 입장에서 적힌 책이기도 하고. 그래도 장판파의 그 순간 10만 피난민을 빼면 유비군 자체의 위용은 매우매우매우 비참했으리라는 게 촉트루였다고 봐야 할 듯. 장비한테 겨우 20기 주고 조조군 막으라고 보낸 것만 봐도(...)
+난 보통의 경우엔 배주에 굽신거리는 쪽인데 이 부분 태클은 무의미한 것 같음. 진수가 서술한 방식을 보면 각 열전의 주인공 관점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음. 가령 완성 사건의 경우 무제기만 보면 장수가 먼저 항복해놓고 그냥 배신 때린 나쁜 놈 같은데, 장수전을 보면 조조가 실수한 부분이 있고 인간적으로 장수는 열받을 만했다는 게 보이는 식임. 물론 위략이나 강표전처럼 남의 나라 다루는 부분은 좀 감안하고 봐야 할 기록들도 있긴 한데, 아무렴 진수가 생각이 없어서 혹은 귀찮아서 혹은 사서 쓸 줄 몰라서 참고한 기록들을 대조 한 번 안 해보고 그냥 옮겼을까? 하나의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의 열전을 모두 취합해봐야 각자의 사정과 견해를 가진 목소리들을 다 들어볼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생생하고 상당히 공정하게 들리진 않는가? 내 보기엔 실컷 싸운 삼국을 냅두고 제3자가 승리한 마당에 패배자 출신으로 사관한 진수가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삼국의 옛 사람들이 열나게 싸우고 살아간 이유와 변명을 보존한 눈물겨운 흔적 같은데.
천하삼분은 사실 제갈량이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 수준으로 창조한 전략은 아니긴 함. 옛날 옛날 진나라에 대항한 합종연합군도 뭐랄까 진(관중, 파촉) vs. 삼진, 연, 제(화북, 중원) + 초(초, 오월 그러니까 형주, 강동) 구도가 그려지는 느낌이고, 항우 장사 시절에는 한신이 괴철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 시대의 이야기야말로 초한지가 아니라 삼국지가 되었을 수도 있는 그런 순간이 있었음. 그로부터 400년 뒤인 후한 말에 주유, 감녕 같은 양반들이 구상한 것도 이런저런 세부계획은 어떻든 나눴다가 합치자는 본지는 같음. 그걸 세련된 형태로 다듬어 실현한 게 노숙과 제갈량이고. 요컨대 난세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특정한 여론이 있었다면 그 전에 특별한 의견교류가 없던 사람들끼리도 비슷한 생각을 비슷한 시기에 각자 몸 담은 세력의 관점에서 구상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니 애초에 제갈량이 융중대를 읊은 건 삼고초려를 받은 때라 장판파에서 노숙을 만나기 전의 일인데 어떻게 그 양반과 회동하고서야 강동과의 동맹을 생각한 거란 식의 말이 나옴? 송지 영감이 오랫동안 책 보다가 진수의 서술방식에 대한 짜증+모종의 이유에 의한 다른 짜증이 확 터진 게 바로 노숙전에 주 달던 무렵 아닌가 살짝 의심스러움.
2. (아마도) 210년 무렵 오나라 쪽 분위기 메모
후에 유비가 경(=오군 말하는 듯? 京口라는 지명이 따로 있는듯. 현대의 장쑤성 전장 시 징커우? 이게 어디냐면 현대의 난징 바로 동쪽입니다. 오군 정도는 아니어도 여전히 엄청나게 치우친 동오 한복판입니다.)으로 와서 손권을 알현하고, 주(형주)를 관할하기를 청했을 때, 오직 노숙만이 유비에게 땅을 빌려주어 함께 조조에게 대항하도록 손권에게 권유했다.(노숙전)
유비가 수도로 돌아와 손권을 알현할 때, 여범은 유비를 구류할 것을 은밀히 요청했다. ... 손권은 관우를 토벌하러 갈 때 ... 여범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전에 일찍이 그대의 말을 따랐더라면 이러한 수고로움은 없었을 것이오.(하략)"(여범전)
여범은 유비를 묶어두도록 권하였으나, 노숙이 말하였다. "안 될 일입니다. ... 조공의 위력은 실로 대단한 경지이며, (우리 군이) 형주에 주둔한 직후인지라 은총신의는 아직 널리 퍼져있지 않습니다. 유비에게 이를 빌려주어 위무토록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조조의 적을 늘리는 한편, 우리 측의 친구를 만드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손권은 곧 이를 받아들였다.(노숙전 인용 한진춘추)
(강릉공방 끝에 조인이 퇴각하자) 손권은 주유를 편장군에 제수하고 남군태수를 겸임하도록 했다. ... 강릉에 주둔하여 지키도록 했다. 유비는 좌장군의 신분으로 형주목을 겸임하고 공안에 주둔했다. 유비가 경까지 와서 손권을 알혔했을 때 주유가 상소를 올려 말했다.(주유전)
이하 상소의 내용은 유관장을 갈라놓고 특히 유비는 오군에 옮겨 호의호식하게 해서 결국 손권에게 굴복시켜야지 노숙의 주장처럼 땅 주면 안 된다는 내용. 연의에서 유비가 손씨와 혼인하는 데 성공하자 주유가 내놓는 계책 그거.
+알현??? 원문을 보니 備詣京見權 이라 되어 있는데 고문에서 見이 쓰이면 謁見을 뜻하나 보다. 아무튼 강동이 유비를 대등한 상대로 보진 않았던 것은 확실. 일개 세력의 장이 직접 남의 세력 한복판까지 가서 형주 문제를 논하는 마당에 강동에선 구류를 하네 마네 하고 있다니, 아이고. 이때 이미 그 동네에선 유비를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모양. 역시 이 방문 때 형주 문제에 대한 일차적인 담판을 지었다 + 작은 유비여 안심하라 이 엉아는 너를 해치지 않는다. 아마도. ㅡㅡ →이런 의미로 혼사가 이뤄졌다고 보면 무방하지 않을까 함.
3. 뽀나스
사망할 당시 주유는 병사 4천명에 봉읍으로 4개 현을 가지고 있었음.(노숙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