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 이야기가 나오면... 정줄이 자동적으로 현실에서 로갓합니다. 어흑 OTL
230년 이후, 특히 제갈량 사후는 제가 도통 아는 게 없으므로 할 말이 없습니다. 승연님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기보다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중호군이 무엇인지 파보기나 하자는 의미에서 본 포스팅을 시작합니다.
본래 승연님께서 달아주신 댓글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으니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이쪽으로
진서 직관지에서 호군장군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진(秦)나라의 호군도위
-> 한고조 시절 호군중위
-> 전한무제 시절 대사마 밑에 호군도위
-> 조조가 승상 된 후 호군, 영군 설치
(단 영군, 호군이 조조 사공 시절에 이미 등장하기 때문에 이건 진서의 오류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 승상 된 후 호군을 중호군, 영군을 중령군으로 고침
-> 위나라 초에 이를 바탕으로 호군장군 설치
이런 변천이 보입니다.
한편 진서 직관지는 호군장군의 유래를 설명하는 위 글에 이어서 "자격이 무거운 경우 영군과 호군, 자격이 가벼운 경우는 중령군과 중호군이 되었다.(資重者爲領軍、護軍,資輕者爲中領軍、中護軍)" 이렇게 적고 있는데, 제가 진서 직관지 번역을 참고한 고원님 블로그에서는 영군, 호군이라 적힌 부분이 정확히는 '영군장군'과 '호군장군'을 지칭한다 보시는 듯합니다. 문맥상 그렇게 해석하는 게 맞다 여겨집니다. 진서를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 송서 백관지에서는 정확하게 영군장군, 호군장군이라 표기하고 있습니다.(領、護資重者爲領軍、護軍將軍,資輕者爲中領軍、中護軍)
재미있는 건 유비 생전에 법정이 유비의 호군장군이었다는 건데요, 일전에 호군™ 문제로 파성에서 검색해보니 법정 이후로는 촉나라에서 호군장군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유비 시절 호군장군 -> 제갈량 시절 중호군으로 역할이 대강 이어지는 건가 싶습니다. 진서 직관지의 설명대로라면 호군장군과 중호군은 무겁고 가볍고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같은 임무를 수행하니 그렇게 봐도 무관할 듯합니다.
조조가 중호군을 만들면서 참고한 전례가 후한의 대장군 두헌이 흉노 원정을 가면서 대장군부 소속으로 중호군이라는 임시직을 만들고 거기에 반고를 앉혀 데려간 일인데, 미루어 볼 때 중호군은 처음 설치될 당시 조조의 거기장군부 속관으로 시작했던 듯합니다. 이 직책이 위나라 초 호군장군으로 변천해가면서 점차 인사권을 관장하는 요직으로 발전합니다. 송서 백관지에 의하면 위나라 및 서진 시대의 영군장군, 호군장군은 독립된 영(營)을 가졌다고 합니다. 위나라의 어느 시점부터 독립된 영을 가지게 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파성이 터져서 확인을 못 하겠는데 위나라 쪽 기록상 가장 앞선 시기에 발견되는 호군장군이 하후연이라 하니 하후연과 이후 후임자들을 살펴보면 이 시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호군장군이 그 정도로 중시되었다면 중호군도 비슷한 대우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호군은 뭐가 되는 걸까요. 조운 중호군 시절 동시대의 촉나라에는 중도호 이엄 휘하에 호군 진도가 있었습니다. 중호군과 중도호가 동급인지 여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동급이 아닐 경우 승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중호군과 호군의 차이가 부대의 역할, 규모에 따라 좌/우/중 같은 걸 붙이고 말고의 여부 뿐일 가능성이 있기에, 이것만으로는 단순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강주 시절 이엄군이 북벌군보다 규모와 역할이 클 리 없으니까요.
문제는 조운, 비의가 각각 중호군을 역임하던 시절 촉나라에 호군은 있어도 좌호군, 우호군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무렵의 위나라에는 좌우호군이 있었고, 촉의 경우에도 장완 시절 중감군과 우감군이 동시에 존재한 때가 있던 것과 비교됩니다. 게다가 제갈량 밑에 중호군 조운, 이엄 밑에 호군 진도가 있던 시절은 이엄이 독립된 자기 군을 통솔했습니다만, 중호군 비의, 호군 강유 시절은 그 이엄까지 한중에 불려간 때로 중호군과 호군이 모두 제갈량 한 사람 밑에 소속됩니다. 무엇보다도 호군장군/중호군이 위나라에서 저런 루트를 밟아가며 발전하는 동안 호군은 다른 장군부 아래에 소속된 별도의 '호군'이나 잡호 호군 형태에 머물렀습니다.(여기까지 적는 동안 고원님 블로그의 번역과 주석에 엄청 신세지고 있습니다ㄷㄷ) 그렇다면 중호군은 호군에서 좀 더 특화된 직책으로 서열 차이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호군장군/중호군에게는 제장의 감호 및 무관 선발의 관장, 곧 인사권이라는 중요한 업무가 있었습니다.
A 기간의 특정한 장군직이 B 기간의 해당 장군직과 비슷한 서열, 역할 등을 했을까에 대해서는 저도 승연님과 비슷한 이유에서 의문이 드네요. 다만, 우리가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급되었듯이 촉에서는 230년을 전후해 군부에 대규모 개편이 있었던 걸 생각합니다. 조운의 중호군직과 비의의 중호군직이 서열, 역할 면에 차이가 있다면 아직 관료제가 덜 정착된 시대적 특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군부의 '개편'이 행해졌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조운 사후 비의가 중호군 되기까지 공백이 기껏 1, 2년 정도이니 직무상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진 않네요. 조운 생전에는 없던 직함이 이제부터는 마구 생겨나기에 상대적으로 중호군의 위치가 바뀌었을 수는 있지만요. 때문에 특히 '서열'을 비교하고자 한다면, 전과 후의 위치를 그대로 단순비교할 게 아니라 "상대적"인 위치를 봐야 할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