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이중텐 교수의 책을 봤더니, 삼고초려에 대해 이설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요는 실제로 유비가 세 번 찾아갔느냐, 아니면 나본의 창작이냐 였다. 후자의 근거는 제갈량 쪽에서 먼저 유비를 찾아갔다는 썰이다. 썰인즉-

"유비가 신야에서 세월아 네월아 하는 동안 형주의 숱한 명사와 재사들이 유비를 방문했다. 유비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었던 제갈량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그 무리에 슬쩍 끼었다.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드는 동안 제갈량은 구석에서 잠자코 구경만 했다. 드디어 사람들이 모두 물러간 후 유비와 제갈량만 남았을 때, 유비는 돗자리장수 시절의 특기를 살려 짐승의 털로 방석을 짜기 시작했다. 제갈량은 그런 유비를 책망하며 군사를 좀 더 모을 수 있는 방책을 내놓았다. 이 청년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게 된 유비는 비로소 스카웃에 나서고..."

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물론 삼고초려가 뻥일 리는 없다. 삼고초려는 바로 전출사표에 언급되는데, 그 시점에는 신야 시절부터의 인사들이 아직 살아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운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열심히 조운과 제갈량 사이에 썸씽이 있으리라 망상하고 있다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두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열혈유비빠돌이다. 명색이 황제에게 올리는 표문인데 거짓말이 있다면, 그것도 선주 유비가 관련된 것이라면, 당시에 생존한 열혈유비빠돌이들 중에서 짬밥으로 넘버원을 차지했으며 어느 정도 실권도 있던 조운이 가만 있었을 리가 없다. 평소엔 조용하고 나서지 않지만 아니다 싶을 땐 극도로 열받은 유비한테조차 정면으로 토를 달던 양반이다. 그런 양반이 제갈량을 무서워 하겠나. 제갈량의 인품으로 봐도 그런 표문에 거짓을 쓸 리 없다. 제갈량이 대대손손 숱한 빠를 낳으며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는 위로는 충절을 지키고 아래로는 신의를 지킨 인품이 반드시 포함된다.
흥미로운 것은, 야사틱한 이 썰도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유비가 수시로 융중을 드나들며 제갈량과 시국논담을 하다 점점 마음이 맞아 출사를 종용한 것이란 쪽에 걸지만, 그런 만남을 갖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으며 그것이 위의 썰 비슷한 것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당시의 유비는 세력이 약하나마 유명인이었고, 제갈량은 형주 내에서나 유망주 정도로 알려진 상황이었을 터이다. 상식적으로 전자가 후자를 몸소 방문하는 게 쉽겠나 후자가 전자를 찾아가는 게 쉽겠나. 뭐, 그 상식을 뒤집고 주군 될 사람이 먼저 예를 갖췄기에 삼고초려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거지만 말이다.

가설라무네, 화봉의 제갈선생께서는 유비가 싹수를 보이기는커녕 조조조차 클까 말까 하던 시절(그러니까 관도대전도 아니고 여포 리즈 시절)부터 유비를 마음에 두셨더랬다. 다만 워낙 비싼 분이다 보니 이름도 얼굴도 알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 이유에 대한 힌트로 진모가 던져준 게 유비가 원술을 바른 전쟁이 아닐까 싶다. 어시노동력착취의 산증거, 인간들의 피투성이 싸움에 창천은 냉소를 보낼 뿐이라는 냉엄한 내레이션이 들어간 그 전투 말이다.(배경이 된 지명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서;;) 그 에피소드 끝에는 전투를 관찰한 7기가 그동안 품어왔던 忠 개념에 회의를 느껴 한동안 침잠하게 된다는 검은바탕 흰글씨 내레이션이 따라붙는다. 그 장면을 본 나는 이 제갈량이 유비를 흠모하되 아직은 자신의 출사를 통해 이룰 일들에 대해 자신 내지 확신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그렇다고 그게 8, 9년 가다니 거 고집 한 번 쇠심줄인 양반일세. -_-;;;
진모는 서주학살 당시 실제로는 십대 초반 꼬꼬마였던 제갈량을 '어른'으로 등장시켜 그 상황에 직접 개입하게 했다. 혼자 조조군 전체에 맞설 정도로 행동파 지식인인 이 제갈량이라면, 직접 출사하진 않더라도 208년의 그날까지 유비를 위해 살그머니 손을 쓸 법도 하다. 그 과정에서 조운이 신야와 융중 사이에서 뺀질나게 셔틀 노릇을 할 거라.. 아니 해 달라고 내가 망상하는 바이고. 실제로 원술을 완전히 결딴내기 전에 한 번 셔틀 다녀온 적이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지금의 심히 멜랑꼴리해진 7기가 출사를 결심하려면 마음을 굳힐 상황( ex)유비와 7기 사이에서 조운이 셔틀 노릇을 해야 할 상황)을 서서히 조성해줘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 과정에서, 7기 쪽에서 먼저 유비를 슬그머니 찾아가는 사건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위의 썰처럼 이름을 숨기고 평범한 빈객마냥 찾아온 7기가 멋진 방책을 슬쩍 찔러주고는 경악한 유비를 남겨둔 채 홀연히 떠나는 것이다. 물론 팔기의 제복과도 같은 복면은 벗어둔 채 눈을 가리는 삿갓 하나만 쓰고 나타났던 것이지! 유비는 애초에 7기의 얼굴을 저어언혀 모르니까! 총총히 떠나던 7기가 마침 바깥에서 돌아오던 조운과 마주치고, 조운만은 이 낯선 방문자가 그 7기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리하여 짧은 인사가 오가는 그 장면에서 7기가 드디어 얼굴을 온전히 공개하는 것이다아아아악!!!!!!!!

..........제 블로그에서 혼자 망상하고 노는 건 제 자유잖아여... 너무 뭐라 하진 말아주세여.....



p.s. 잠시 후 삼국전투기가 업뎃되면 그걸로도 포스팅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글쎄, 오늘 하루만 삼덕질로 포스팅을 세 번 하는 건 뭔가 슬픈 일이 될 것 같은데... 게다가 내일은 장판파 때문에 미친듯이 버닝할 게 뻔하고 말이지.;;;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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