落 鳳 坡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눈치껏 내용을 때려맞춰가며 적는 감상입니다. 드라마의 실제 내용과 어긋나거나 곡해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어제 방영분이다만, 64화에서 유비가 법정인가 장송인가와 대화하다 굉장한 소리를 해버렸다. 조조가 폭력으로 나온다면 나는 仁으로 간다, 나는 조조와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천하를 얻는다- 라는. 출처는 잊어버렸지만;; 분명 사료에 속하는 책에서 같은 이야기를 봤던 것 같다. (추가 : 파성넷의 촉서 방통전에 주석으로 자세하게 달려있다) 그런데 유사한 사례가 삼국시대보다 앞선 때에 있었다. <자치통감>에서 본 기억이 난다. 바로 유방이 항우에 대해 취한 태도였다.
그러고 보면 삼국지의 장면들은 묘하게 초한지의 고사들과 겹쳐보이는 데가 있다. <창천항로>의 장판파에서 유비가 수레를 가볍게 하기 위해 자식들을 던져버리고 서서가 구하는 건 누가 봐도 하후영의 고사를 패러디한 거다.(물론 장판파의 주인공 조운은 아예 진수로부터 하후영에 비견되었고ㅋ) 역사 속의 유비가 한고조 유방의 혈통으로서 "역적" 조조를 향해 한중왕 선언을 한 것은 대놓고 한중왕 유방이 서초패왕 항우를 거꾸러뜨려 한나라를 세운 역사를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지 않았던가. 그런 굵직한 장면들만이 아니다. 오늘 방영분인 65화에선 유장 앞에서 방통과 위연이 짜고 홍문의 연 비슷한 짓을 하네. 내 보다보다 위연이 카리스마 풍기며 날리는 칼춤은 처음 보는 듯. 그 위연이. 아니 내 안의 위연은 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야이 개객기들아 이때만 제작비가 딸렸던 거냐? 응? 장강에 배 한 척 띄우고 상산 조자룡의 장대높이뛰기를 보여주면 뭐가 덧나냐?!! 평범한 무쌍보다는, 어 물론 특기 자체가 닥돌 + 다대일무쌍난무이긴 하다만 평소에 하는 게 그거니 평범하다는 거고, 두고두고 회자될 임팩트있는 장면 한 컷으로 말하는기야, 상산 조자룡은! 동오를 탈출할 때 동고동락했던 손부인이 이제는 적이 되어 그 손에서 아두를 빼앗아오는 장면인데 장판파 정도는 아니어도 결사적이고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인 뭔가가 있어야 할 거 아냐 맨땅에서 평소처럼 칼부림만 하다니 이건 아냐 이건 아니라고오오오오 OTL
그나저나, 동오에서 손부인을 데려간 건 동맹을 반쯤은 깬 거나 마찬가지인 행위 아닌가? 본래 주유가 집적거리려 한 땅을 유비가 멋대로 혼자 차지하려 드니 손권 쪽에서 열받을 만하긴 한데, 혼자 촉을 먹겠다니 치사하다 or 형주를 안 주겠다니 더럽다 둘 중 어느 쪽이 이유라 해도 정말 강도높은 항의다 싶다. 여차하면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의미잖아. 그렇지만 유비는 촉을 평정하느라 형주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한번은 손권과 전쟁까지 갈 뻔했지만 때마침 조조가 쳐들어와줘서 땅 좀 떼어주고 마는 걸로 무마하려 했다. 뒤늦게 자기 기반을 얻은 유비로서는 꽤 오랫동안 형주까지 살필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 기간동안 풀리지 않고 엉망진창으로 쌓인 것들이 최악의 결과로 귀결되어 관우의 죽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유비 패밀리는 평생을 바쳐 정말 안 되는 싸움을 물고 늘어진 거란 생각이 든다. 누구 말마따나 객관적으로 갖출 수 있는 것이 처음부터 제한된 상황에서 주관적인 노력만 죽도록 한 게 아닐까. 유비든, 제갈량이든.....
-유비는 도겸의 서주를 거절하고 유표의 형주도 거절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 땅들이 잠깐이나마 유비의 손에 들어왔고, 위로는 관원으로부터 아래로는 평범한 백성들까지 (이유는 좀 복잡했지만) 열렬히 그를 환영했디. 민심을 사로잡는 방법에 관한 한 조조는 결코 유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이야기. 유비의 아이덴티티는 역시 귀 큰 도적놈이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게 어디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런 과거의 경력과 비교할 때 유비의 입촉은 좀 별다른 구석이 있다. 우선 유장이 유비를 불러들이는 것 자체를 숱한 중신들이 반대했고, 유비도 사양은커녕 애초부터 익주를 훔치러 들어왔더랬다. 결국 유비는 익주를 손에 넣어 굳건한 자기 땅으로 만들기까지 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저항에 부딪쳤을 뿐더러 익주 인사와 형주 인사의 대립구도가 제갈량 사후까지 이어져 촉이 망하는 데까지 영향을 끼쳤다. 확실히 적벽 이전까지의 유비가 보인 행보와 맞지 않다. 모처에서는 그런 것도 조금씩 끌어다 유비 대 제갈량 대결구도 떡밥을 만드려는 시도가 있는 모양이던데 나는 아는 게 없어서 잘 모르겠고ㅋ 도겸이나 유표가 살아있던 때와 유비의 입촉 시대는 시대적 상황 자체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든다. 도겸은 군웅할거 시대를 살았고 유표는 아직 천하삼분이 실행되기 전의 사람이다. 그리고 천하삼분계는 제갈량 입장이든 노숙 입장이든간에 끝판왕(은 사실 따로 있었지만) 조조를 상대로 아직 정복당하지 않은 세력들이 뭉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결과물이다. 즉, 조조가 원가를 쓰러뜨려 중원에서 세력을 확고히 한 이래 유비나 손권 같이 아직 '천하'를 노리는 후발주자들에게는 군웅할거 시대처럼 손쉽게 땅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손권은 아버지와 형이 침을 바른 땅이라도 있었지만 유비는 정말 기반이 없었다. 부평초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땅주인들을 농락하기엔 이제 나이도 있었고, 농락할 땅주인 자체가 거의 남지 않기도 했고. 유비가 정말 뜻이 있다면 익주에서 대놓고 강도질을 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도겸 유표 때도 본질은 같지 않나 생각해 보면, 도겸은 군웅할거 때 잠깐 붙잡은 땅인데다 조조와 여포에게 번갈아가며 두들겨맞아 자기 세력을 굳건히 키우지 못한 채 죽었다. 당연히 충심으로 유비를 반대할 세력이 없다. 좀 더 오래도록 형주를 지켜온 유표 쪽에서는 채씨로 대표되는 형주 호족들이 유비를 참 싫어라 했다. 여기서는 유비가 자기 목숨부터 걱정해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유비 본인이 오래 눌러살았기 때문에 친 유비세력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때문에 유종이 쉽게 항복해버리자 열받은 사람들은 유기를 중심으로 유비한테 붙어버렸고, 그때 발디딘 조그만 땅이 적벽대전 이래 유비가 서쪽으로 뻗어갈 발판이 되었다. 어느 쪽이든 유장이 20년 넘게 다스리면서 하나의 독립된 왕국과 같은 체계가 "이미" 잡혀있던 익주와는 사정이 다르지 않냐는 이야기다.
그게 유비가 인덕의 가면을 쓴 진짜 효웅이란 걸 대놓고 까발리는 행위였다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양반한테 仁德의 상징성을 부여한 건 후세 사람들이며 본인은 처음부터 '평민들에게조차 인기있는 효웅'이었을지도 모를 노릇이지 않나. 어쨌거나 나는 정사의 유비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연의만으로도 좋은데 뭘.
-낙봉파는 역시 나본의 뻥이겠지? 적로마 자체가 <세설신어>에서 유비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이란 게 인증됐을 뿐더러, 장송이 지도를 바쳤으니 지형이 더러운 걸 알았을 텐데 거길 방비 없이 들어간다는 것도 괴이한 노릇이다. 북방선생이 묘사한 것처럼 전투 중 맞을 까닭이 없는 유시에 맞았다는 게 더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나저나 이 드라마에서는 앞으로 위연을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하다. 다른 데선 현실적이던 제갈량이 위연한테는 갑자기 연의 모드가 되어 디스를 시전했으니 앞으로도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의대로 가겠지. 드라마의 위연은 방통과는 제법 장단이 맞았던 모양이던데 여러모로.. 그랬다. =_=
-마초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안 든다. 내가 묘하게도 오호대장 중에서 가장 관심이 안 가는 게 이 사람인지라, 삼국지든 뭐든 마초의 난 언저리는 대충 본다. 음, 언제 날잡고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서량에서 한중을 거쳐 익주까지 흘러가는 모양새를 보면 배신만 안 때렸지 여포 리즈 시절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는데, 정말 두 사람의 인생에 매치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것도 안습인지라. 그보다 마초를 비롯한 서량 사람들의 저 풀어헤친 긴 머리가 대단히 눈에 거슬린다. 머리가 저렇게 두서없이 산발되어서는 축구도 못 한다, 시야가 가려서. 하물며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장인데. 아마도 마초가 백마에 흰 전포를 입는 데서 조운과 캐릭터가 슬쩍 겹치는지라 차별성을 가한답시고 한 게 아닐까 싶은데, 차라리 마초 본인에게도 강족의 무장을 입히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엔 광영놈녀석들이 퍼뜨린 폐해가 지독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