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눈치껏 내용을 때려맞춰가며 적는 감상입니다. 드라마의 실제 내용과 어긋나거나 곡해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응? 문관의 수장이 승상 제갈량인 거야 당연한데 조운은 언제 무관의 수장이 되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비가 그런 말을 하다니? 제작진도 조운빠심이 좀 강하근영? 거의 나만큼 센데? 그렇지만 아직 장마황이 살아있다니까 그러네. 마초 황충은 실세가 좀 약할지 몰라도 장비는 확고부동하잖아?
내가 기억하기로, 유비의 선전포고에 조운은 바로 반대했지만 제갈량은 효직이 살아있었더라면 운운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던 것 같다. 형주를 잃고 가장 속이 타는 건 제갈량으로 대표되는 형주인사들이지만, 그 제갈량은 친형님이 동오의 중신인 사정 기타 등등 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었던가 할 것이다. 근데 여기선 제갈량도 직접 나서서 반대하네. 물론 법정이 한중전 이래 어찌 되었는지 묘사되지 않은 채 이제는 고인이 되었을 이 시점까지 와버렸으니 효직이 살아있었더라면 운운하는 대사를 넣었다간 모양새가 이상해지겠지만.. 덕분에 장비가 앰한 제갈량에게 분노를 활활 태웠다. 이 드라마는 그랬지. =_=
그나저나 조복을 갖춰입고 소년장수버프를 받는 조운은 정말 근사한데? 근사하긴 한데, 완전 영천의 순씨 가문 같은 데서 잘 키운 문관 유망주처럼 보일 지경이군?;;;
-역사 속의 유비가 이릉 닥돌을 결정한 결정타는 역시 장비겠지. 냉정한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조운의 직간이 정답이다. 촉의 건국이념과 전략에 비추어볼 때 대외에 내건 손오에 대한 명분(私)은 조위에 대한 명분(公)에 비해 약한 데다, 오와의 전면전은 한 번 시작하면 쉽게 끝낼 수 없어 결국 위만 좋을 일이 될 터였다. 실제로 이릉의 결과는 조운의 우려대로 끝나버리지 않았던가. 그걸 나의 조돌쇠만 예상한 건 아니라서 촉의 중신들 대다수가 강하게 반대했던 모양이다.
융중대에 형주가 꼭 필요하긴 한지라 유비의 당초 목적이 형주만 수복하는 선에서 통 큰 척 손제리를 용서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건 넘어가자. 이릉 닥돌의 진짜 문제는, 유비 패밀리가 본래 지녔던 협객집단스러운 성질 - 최대의 장점이지만 최대의 내재적 한계이기도 한 - 이 최악의 형태로 발현되어 유비를 압박했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삼갤의 어느 능력자가 깔끔하게 정리한 글이 있으니 내가 더 아는 척 할 생각은 없고. 결론은, 관우와 장비가 유비 패밀리 내에서 차지한 위치는 끝까지 '일개 신하'의 반열이 되지 못했고, 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관우의 죽음으로 타격을 받았을 무장 쪽 인사들을 장비가 이성적으로 추스려 위나라를 박살내는 쪽으로 몰아갔더라면, 그랬으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그럴 리 없겠지. 그래선 내가 아는 장비가 아니고, 내가 아는 유비 패밀리도 아니지. 설령 IF대로 되었다 해도 유비 패밀리의 1세대가 황건적의 난 때부터 지녀온 이 성질은 (굳이 따지자면) 1.5세대인 제갈량이 함부로 손보진 못하리라. 때문에 최후까지 내부에서 제갈량 대 장비로 문제를 일으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비가 왕&황제 노릇한 세월이 너무 짧은 탓에 어디까지나 IF를 깔고 하는 말이지만, 유비가 중심인 촉은 언제까지고 유비 "패밀리"였을 것이다. 촉이 일개 주에서 일개 "국가"로 모습을 바꾼 것은 제갈량 "체제" 밑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이릉 닥돌은 촉빠로서 가정 패배 이상으로 한스러운 사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야말로 유비다운 선택이고 유비 패밀리다운 결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도원결의로부터 이어지는 그 처절한 로망 때문에 매번 정신적으로 크리티컬을 먹으면서도 삼국지를 읽고 촉빠질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드라마의 유비는 문관 대장과 무관 대장(...)이 나서서 말리니 마음이 살짝 흔들렸던 모양인데, 직후에 나타난 장비가 여기서도 결정타 역할을 한 것 같다. 한 술 더 떠 죽어버리기까지 했으니...
-이엄이 등장했다. 내가 촉에서 닥치고 까는 사람이 둘 있으니 마속과 이엄이라. 마속은 측은하게 볼 구석이라도 있는데 이엄 요놈은 답이 없다. 근데 그 이엄이 지금 유비와 무슨 대화를 이리 길게 하는 걸까? 촉의 탁고대신은 제갈량과 이엄이었다. 이렇게 늦게서야 등장한 캐릭을 그런 위치에 올려주려면 그 전부터 뭔가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이런 장면을 넣은 것이겠지? 가만 보니 비상시국이라 비상수단을 써야겠음 네가 군사 모아와 'ㅅ' 이런 느낌인데. 유비 앞에서 물러난 이엄이 제갈량과 조운을 언급하는 걸로 보아 이쪽은 이쪽대로 그런 짬밥있는 중신들을 제치고 올라갈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봤자 탄핵맞을 인간이. 위연한테도 디스당할 인간이!
-고우영 선생님은 참 인간적인 싸나이 장비를 그리셨더랬다. 만인지적의 천하무적호걸인 거야 기본옵션이고. 그 장비가 자다가 범강장달이 따위에게 목숨을 빼앗긴 순간을, 고우영 선생님은 한 페이지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칸 하나를 거의 공백으로 그려 표현하셨다. 거기에 적혀있는 내레이션도 단 한 마디였다. 허무하다, 라는. 나에게는 삼국지 전체를 통틀어 장비의 죽음만큼이나 허무한 최후가 없었다. 너무나 장비에게 어울리지 않는 결말이기에, 그리고 '소설'의 인물이 맞을법한 최후와 지극히 동떨어진 결말이기에 더욱 충격이었다.(그만큼 화봉의 장선생에게 기대가 크지만 그 전에 적벽까지 진도나 나갈 수 있을지 ^0^)
그보다 요즘 유비 패밀리는 매 화마다 상복을 입는 느낌이다. 지난번에는 헌제(역사적으로는 제갈량과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죽었지만)더니 오늘은 장비를 위해서다. 아직이야! 아직 이릉과 백제성이 남아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기랄..........................................
아니 근데 이 조운은 왜 이렇게 냉정하지. 헌제의 상(그러니까 안 죽었대도)을 치를 때야 그러려니 싶었는데 장비의 죽음 앞에서도 감정의 동요가 적으니 이건 좀 당황스럽네. 이보쇼 댁은 이 드라마에서 유관장의 넷째 형제로 인증받은 몸이잖아! 어째서 신하들 중에서는 그 장비한테 마지막까지 욕을 먹은 제갈량이 가장 슬퍼보이는 거냐고;;; 장판파에서 거의 울먹거리기 직전까지 간 게 이 조운으로선 진짜 인생에 두 번은 없을 정도로 격한 감정에 휩쓸린 사건인 것일까.;;;;;
-헤에. 이 위연은 제갈량 앞에서 자신을 말장이라 칭하고 거의 눈도 못 마주칠 만큼 극도로 몸을 사리네. 이런 위연이 뒤에서 공공연히 승상은 겁쟁이 드립을 치게 될 거라 생각하니 뭔가 묘하다. 그런데 왜 위연이 출전을 앞두고 제갈량을 찾아간 거지? 이엄이 언급되는 것 같던데, 나름 제갈량을 걱정한답시고 뭔가 하라고 부추기다 되려 혼만 난 건가? 당장은 이엄이 사고칠 일 같은 건 생각나지 않는데. 이놈의 언어장벽이 정말 문제다 문제야.
드디어 이릉을 향해 출정하는 유비를 배웅하다가 제갈량이 마량을 불러내는데 그게 또 짠하다. 이 시점에서야 마량을 이릉-성도구간 셔틀 시키려는 것에 불과하지만, 제갈량을 존형이라 부를 만큼 친했으며 후세에는 백미라는 고사성어까지 남길 이 사람이 이릉의 패배 때 불귀의 객이 될 거란 걸 이젠 아니까 싱숭생숭하다.
-이제와서 손부인을 등장시키다니. 이릉 소식을 듣자마자 장강에 몸을 던지게 하려는 거지? -_-
그리고 창천이 작성하는 데스노트는 현재진행 중이다. 내일은 황한승의 차례구나... 정군산 전투라도 제대로 그려줬더라면 아쉬움이 배가될 텐데 말이다. 이 황영감님은 슬프리만치 존재감이 없거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