順平侯

三國志妄想 2011. 2. 19. 02:35

일전에 조운의 시호를 두고 그 사람 참 알 수 없다고 끄적인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로 관장마황+방통보다 1년 늦게 시호가 추증되었고, 둘째로 시호 자체에서 운별전에 기록된 일신도시담 전설의 용맹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호라는 것이 그 사람의 공과를 한꺼번에 드러내는지라, 가령 관우의 壯繆侯. 장무후? 장목후? 이거 독음 어렵네. -_-;  아무튼 이 시호만 해도 위대한 무장이었던 관우와 싸우다 죽은 관우가 다 들어가 있다. 繆라는 글자의 경우 시호법에서 좋지 않은 죽음을 맞았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는데 나 자신은 정확히 아는 바가 없으니 카더라통신으로 적어두고. 조운의 시호는 운별전이나 나본 등에 의해 만들어진 인상과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문제다.
일단, 조운의 시호를 논할 때 강유가 한 말을 보면

勞績旣著, 經營天下, 遵奉法度, 功效可書。當陽之役, 義貫金石

라고 한다. 나는 이걸 그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으니 이번에도 파성넷에 신세를 지자.(...)

"(조운이 지난날 선제를 따르며) 공적이 이미 현저했고 천하를 경영하며 법도를 준봉했으니 그의 공효가 가히 기록될 만하며 당양 싸움에서는 의로움이 금석을 꿰뚫듯 하였습니다." <촉서 조운전>

그때 나를 환장하게 만든 건 이 부분이었다. "천하를 경영하며(經營天下)"
파성넷의 열전에서 經營이라는 단어로 본문 검색을 해보면 저 표현이 쓰인 사람들이 조금 나온다. 대개 '산업을 경영하지 않았으므로(만총전)' 같은 식으로 쓰인다. 그걸 보면 그 시절에도 '경영'이라는 단어의 용법은 지금의 우리가 쓰는 그 단어 그 뜻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경제사업과 관련된 것이든 정치에 대한 것이든 '경영'이라는 단어는 무장한테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물며, 천하대사라니? 무장에게 '천하대사를 다뤘다'는 식으로 쓰려면 거의 이치트공 급의 위상과 업적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술 더 떠 시호에 쓰인 平이라는 글자는 시호법에서 이르길

執事有班曰平

일을 처리함에 있어 공정했다,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이 뒤에 克定禍亂(난을 능히 평정하다)이라는 글자가 또한 平의 쓰임으로 적혀있는데 그건 順과 平에 대해 설명한 앞의 두 줄로는 무장 냄새가 안 나니까 다시 부연했다는 느낌이다. 順은 柔賢慈惠라 해서 조운의 성품에 대한 평이고 平은 업적에 대한 평일 텐데, 성품이야 개인차가 있으니 그러려니 싶어도 平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참 대조적이게도 관장마황에게 붙은 시호는 하나같이 이 한 마디로 설명된단 말이다. -> 이 님 졸라짱셈

조운이 원칙에 엄격했다는 것은 조운전 내지 운별전에 적힌 행적을 보면 곳곳에 나온다. 그렇지만 천하대사를 논하는 이미지는 아니다. 우선 문관이 아니니까. 진수는 조운에 대해 쓸 때 황충과 더불어 용맹한 장수로 등공 하후영에 비견할 만하다고, 명백하게 '무장'으로서 평했다. 위치도 관장마황과 함께 분류되어 있다.
그럼 강유가 유선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추임새 넣듯이 표현을 썼을까? 가능성은 있다. 전년도에 시호를 추증한 공신들 중에 조운이 빠지자 유선이 일부러 추증하라고 명을 내린 모양이니. 하지만 조운의 시호를 논한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겼다. 1년 먼저 시호를 받은 관장마황+방통의 경우도 그랬으나, 이들의 시호를 논하는 걸 영광스럽게 여겼다는 기록은 바로 조운전에 적혀있다. 게다가 단순히 유선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사용했다고 생각하기에는 '경영천하'라는 표현이 참 무겁게 느껴진다. (같은 표현이 쓰인 역사인물의 사례를 좀더 찾아보고 나서 비교할 필요는 있음.) 한편 운별전을 제한 순수한 조운전에는 맹장으로서의 전공이 그리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진수가 생각하는 조운은 전공이 명명백백한 황충과 동급의 용맹을 자랑하는 무장이었다. 그렇다면 촉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조운은 진수가 살았고 강유가 활동했던 3세기에도 이미 대단히 사랑받고 추앙받는 장수였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진수의 생몰연도는 233~297. 강유는 202~264. 조운은 229년에 사망)
여기서 진수가 평한 맹장 조운과 강유가 시호를 올린 점잖은 무관 조운의 이미지가 충돌한다. 나는 사가가 아니니 취존실드의 가호 아래 망상을 전개하겠다!


관장마황과 방통에게 시호를 올릴 때는 철저하게 기록에 의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운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강유는 노년의 조운을 안다. 때문에 관장마황+방통의 경우와 달리 그가 보고 들은 조운의 마지막 1년에 대한 기억, 그리고 조운이 죽은 직후 제갈량을 비롯한 촉의 중신들이 보였을 반응이 상당히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무장으로서의 용맹은 잘 모르겠지만(강유가 아는 조운의 전투는 기곡 퇴각 하나 뿐이다) 사람들이 말하고 그리워하는 조운은 덕이 있고 공정한 인물이었다 하니 자연히 강유의 안에서도 그렇게 인상이 자리잡았으리라. 더해서 먼저 간 사람을 추모하며 하는 말들이 무훈보다는 유비나 제갈량 같은 윗사람들에게 간언한 이야기들이고, 주위 사람들도 신중한 조운을 신뢰해 크고 작은 일을 묻고 도움받은 일이 많았다는 식의 이야기를 주로 했을지 누가 아나. 강유가 쭉 군부에 속하게 되니 군부 고참들로부터 조운의 무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진 않았을 것이다. 헌데, 장판파는 그렇다쳐도, 한중전의 위엄 쩌는 일화쯤 되면 강유처럼 각잡힌 사람한테는 과장 심한 전형적인 공갈무훈담 정도로 여겨질 법도 하다. 진수가 용맹한 건 알겠는데 기록을 못 찾겠어! 를 외치며 OTL을 그리는 게 절로 상상되는 지경인데 시호를 짓기 위해 기록을 찾아봐야 했던 강유의 심정은 어땠을까. 먼저 시호를 올린 관장마황의 경우와 비교하면 장수로서는 어떻게 평을 올려야 할지 대략 난감해졌을 것 같다.; 하지만 촉에서 지내는 동안 들은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굉장하니 전장에서 용맹한 장수였다는 것은 사실이려니 어렴풋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그렇게 주워들은 것들을 종합하면 안에서는 재상이 되고 밖에서는 장수가 되는, 당시의 사족들이 지향하던 출사의 상과 대략 비슷한 인상이 나온다. 그렇게 형성된(그리고 살짝 미화된) 강유의 기억 속에서 조운은 약간 과장 보태 '경영천하' 같은 표현을 써도 되는 위인으로 남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순평은 너무 순하잖여 이 사람아.





내가 말 안 했나요 나는 진상악성막장촉빠에 조운빠라고? 깔깔깔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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