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월 29일에 파성넷이 터졌다. 두 주가 훌쩍 지나 광복절 새벽이 다 된 지금도 복구될 기미는 요원하다. 그럼 자치통감을 보면 될 것이나 이 근처에서 그 책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중도가 지금 공사 중이라 접근 금지다. 심지어 비 때문에 공사기간이 연장됐다! 그 비 우리 팀 경기할 땐 안 오면서! 나한테 왜 이러는가!
이하, 급한 대로 웹 아무데서 주운 선주전에서 개인 참고용으로 발췌, 메모
222년 6월 이릉대전. 유비는 어복으로 돌아옴. 어복을 영안으로 개명. 오군이 계속 추격해 촉군 밟고 남산에 주둔.
8월 병사를 수습해 무현으로.(한자는 확인 못 했는데 일단은 영안 동쪽에 있는 巫縣인 것 같다. 유비가 아직 동오정벌을 포기하지 않았거나, 한번 크게 진 걸로 오군이 촉에 넘어오게 내버려두지 않겠다 시위한 게 아닐까 싶음. 아무래도 조운이 이 무렵 유비 모시면서 패전 수습하고 무현으로 진격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사도 허정 사망(익주 토호 출신들의 동요 가능성?)
10월 제갈량에게 조칙 내려 성도 남북의 교외에 군영을 세우게 함.(유비는 이릉 패배로 익주 내부에서 말 안 듣는 놈들 나오리라 예견했던 걸까?) 손권은 유비가 백제성(=영안)에 있다 하니 두려워해 사신 보내 화해 청하고, 유비가 받아들임.(이 무렵 조비가 손권이 인질 안 보낸다고 열받아서 군사 보내니까 급해진 손권이 유비한테 화해 청한 거란 글 발견. 문제는 내가 문제기나 오주전을 보면 행간이 잘 안 읽혀서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는 것;)
12월 한가군 태수 황원이 유비의 와병 듣고 불의에 병사 일으켜 대치하며 수비
223년 2월 제갈량 영안 도착. (노왕 유영, 양왕 유리가 동행한 건 확실해 보이고, 222년 상서령이 된 이엄은 이때 동행했는지 어쟀는지 모르겠음. 탁고대신이니 동행했을 가능성 쪽이. 그보다 유선 이 녀석이야말로 영안에 간 게 아니었나? 국내웹에서 촉서 양홍전을 찾을 수 없다!)
3월 황원이 진격해 촉군 임공현 공격. 치중종사 양홍이 장군 진홀을 보내 토벌.(..했다고 일웹 위키에서 발견. 그러니까 누가 양홍전 좀...) 아무튼 황원은 패했고 황원의 병사들이 그를 결박해 성도로 보냄, 참수.
이 무렵 유비가 위독해짐, 제갈량과 이엄에게 탁고
4월 서거 (내가 아무리 촉빠라지만 崩을 쓰긴 뭣하고, 그렇다고 진수처럼 殂라고 쓸 수도 없는 노릇)
지도 보니 한가군 한가현은 성도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황원이라는 자는 222년엔 일단 불미스러운 분위기를 풍겨 성도의 반응을 간본 게 아닌가 싶음. 황원이 군사 일으키기 전에 유비의 명으로 성도 주변에 군영을 세우기도 했고, 당시엔 승상 제갈량도 멀쩡히 성도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제갈량이 성도를 비우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진군한 게 아닐까 싶음. 문제는 제갈량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 성도를 떠났느냐는 건데.
.......이젠 구글어스를 찍어봐도 잘 모르겠다. 대륙의 지리와 거리감각이 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그냥 멍 때리게 된다. 광한으로 가서 장강 타고 굽이굽이 내려가면 바로 영안이니 생각보다 시일이 덜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그래도 성도-영안이 직선거리만 500킬로..; 실은 저보다 더 멀다. 백제성을 찾았더니 쓸데없는 관광지만 잔뜩 나오기에 영안과 가장 가까운 현대의 도시 펑제(奉節)를 기준점으로 잡았는데, 사실 펑제에서 동쪽으로 더 가야 한다. 위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장강은 직선으로 흐르는 게 아니니 실제이동거리는 더 멀어진다. 게다가 저 구간이 강 아니면 죄다 산지인 모양인데... 아, 그런 건 잊어버리자. 대충 잡자, 대충!
공안-임증의 거리에 놀라 멍 때리던 옛날의 내가 뭔가 우스워졌다.;
2.
이상은 개인적으로 들어온 리퀘를 위해 찾아본 것이고, 근래에 망상질을 시작하던 것은 따로 있다.
유비 패밀리의 신야 시절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망상해보니 생각보다 짭짤하다. 채모가 의외로 사정이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유비는 역시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고. 우선 리퀘부터 정리하고, 어서 시작하고 싶다. 그러니까 누가 채모전 장윤전 좀...
3.
말 나와서 말인데 관평, 장포의 연령대를 따져보다 기함했음. 중웹 위키에 적힌 관평의 처자관계를 믿는다면(관평의 아내라는 趙씨가 누구 딸이라는 소수설에 대해서는 논평하지 않겠음. 나쁜 놈들아 그런 거 올리기 전에 출처부터 내놔!!!) 관평은 무조건 190년 초반 이상. 연의를 따라가면 180년대로도 소급 가능하지만 유비의 칭제(221년)를 본 게 스물이 되기 전이었던 관흥을 생각해서 190년대라 쳐야겠음. 장포도 일단 221년 이전 사망 추정인데 아들이 있었으니 역시 190년대 위로 소급됨. 장판파 때는 다들 제 힘으로 도망칠 수 있었겠지. 나는 유비 패밀리의 2세가 대체로 신야 시절 내지 입촉 이후에 출생했으려니 어렴풋이 생각했더랬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다. 생존률이 무척 낮아서 그렇지.
...그렇지만 상산남자네 두 아드님이 입촉 이후 출생이라는 내 망상질은 흔들리지 않으리라. 조운이 229년에 사망하고 답중전투는 260년대인데 그 전투에 나가 전사한 광이가 당시 아문장이었다 하면, 그거겠지. 개국공신인 부친과 맨날 유선 옆에 붙어다니는 직위를 가진 형을 두고도 겨우 하급장교 하나 할 역량 밖에 없었거나, 그때까지 다른 일을 하다 막 군문에 들어갔거나, 상대적으로 젋은 나이였거나. 물론 조광의 상관인 강유가 중앙과 어떤 마찰을 빚었는지 생각하면 온갖 썰이 다 나올 여지가 있지만, 근거가 없으니 망상이요 썰일 뿐이다. 근데 난 그렇게 썰을 풀더라도 광이가 유복자라는 식으로 마구 망상질을 해대는 쪽이 좀 더 그럴듯하게 재미있단 말이지? 그래서 내 망상대로 가면 애들 연령대가 후주>>>통>첨>광 순이 되어버린다.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