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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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연 2011.08.15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500km 직선거리면 고속도로 한계가 100km/h 인 것으로 보아 5시간 걸립니다만 실제 운전해보면 8-10시간 정도 걸립니다. 미국 기준으로 말하자면 저 정도면 가깝네 정도로 느껴지는.. 정도 거리이니 중국 사람들도 그다지 멀진 않다고 느꼈을 것 같고요.

    후한 시대 군의 하루 행군 거리가 꾸준하게 행군한다면 평속 30리, 아주 빨리가면 최대 60리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걸 하루 밤에 행군해버린 등애도 있습니다만 아무튼..). 열라 주파하면 120리도 가능이라고는 하나 이건 일반적으로는 좀 무리데쓰이고.. 후한 기준 10리가 3km 정도니까 30리가 10km 정도이니 500km 나오려면 30x50 해서 1,500리 되겠네요. 즉 평속으로 가면 50일이나 빨리 행군하면 25일. 즉, 전군이 한 달 정도 열라 행군하면 주파 가능한 거리가 아닌가 싶어요.배로 이동을 한다면 행군 날자는 더 적게 잡아도 되지 않을까 싶고요.


    2. 양홍전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cafe424.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AlIR&fldid=LGBg&contentval=00042zzzzzzzzzzzzzzzzzzzzzzzzz&nenc=&fenc=&q=%BB%F3%B6%FB&nil_profile=cafetop&nil_menu=sch_updw


    3. 아문장이라는 위치가 생각보다 낮지는 않은 것 같더군요. 강유가 247년 - 249년 무렵, 아문장 구안 시켜서 국산에 성 쌓다가 곽회 공격 받아서 성 뺏기고 구안이 생포된 전력이 있는 걸 보면 [그리고 그 구안은 263년 촉치러 내려와 답중에서 강유의 길을 막죠], & 당시의 위장군 강유를 군단장으로 가정하고 군단장이 별 셋이라는 걸 가정한다면, 아문장은 요즘 기준으론 별 하나 정도? 그 정도는 되어야 여단 하나 끌고 성 하나 정도는 맡지 않을까 싶고요. 부군단장이나 부사단장 정도?

    참고삼아 마속 밑의 왕평이 아문장이었으니 마속을 군단장이나 사단장 정도 본다면 아문장은 현재로 따지면 준장 내지는 대령 정도가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구안이 위로 잡혀간 시기가 대략 247-249년 정도이니 (확인하면 되지만 귀찮아서) 만약 조광이 구안 후임이면 249년에 아문장 임명, 그 이후 임명이라면 촉장이 대량(..)사망한 단곡 전투 (256년?) 이후, 단곡도 아니라면 후화 전투(262년) 이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광 나이는 대충 저 아문장 임명(?)시기 잡고 계산해보시면 대충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2. 승연 2011.08.15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저나 이 사이트 괜찮네요:

    http://lsw1230795.mysinablog.com/index.php?op=ArticleListing&postCategoryId=168820

    중어의 압박이 상당하긴 하지만 정사 내용 그대로 적은 정도고, 나름 관련 그림 + 현재 지형 사진들이 붙어 있어서 망상(?)하는 정도로는 괜찮더군요.

    • 양운 2011.08.15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울을 출발해 경부고속 타고 부산을 가도 처음 경부고속 뚫렸을 때의 모토인 아침은 서울 점심은 부산이 어렵긴 하지요. 명절 때 주로 탔기 때문이겠지만 보통은 10시간 이상이었고, 가장 짧게 걸렸을 때가 7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물론 중간에 정체구간 피해 국도로 빠지는 등 이동거리를 늘리는 이유들이 있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덜 복잡할 때 간 서해안고속도로는 새벽에 4시간만에 달린 적이 있으니, 자동차 타는 현대 기준으로는 500킬로가 그냥저냥 거리로 여겨질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후한말이면(...) 그리고 후한시대 10리가 3킬로였군요. 당시 행군거리에 대해서도 덕분에 배웁니다.
      양홍전 링크 정말 감사합니다. -_-; 유선에게 알리고 유선의 친위병으로 막았다면, 역시 그 무렵 유선은 성도에 있었나 보네요. 감사합니다!
      아문장을 낮다고 여긴 건 그게 기록상 조운이 공식적으로 얻은 첫 지위이기 때문입니다. 순서만 보면 아문장<편장군<익군장군<중호군<정남장군 이하생략 이다보니. 파성이었나, 어딘가에서 발견한 후한말 장군직에 대한 자료에는 장군 밑에 딸린 아문장, 비장 등을 통틀어서 부장으로 부르기도 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링크를 적어놓지 않은 탓에 OTL 제가 관위의 높고 낮음만 생각했지 실제로 통솔하는 병력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권한보다 낮게 본 것일 수는 있겠네요. 후한말 아문장과 삼국시대의 아문장은 이름만 같고 지위는 약간 다를 수도 있는데 후한말 기준으로만 생각한 것도 있고. 그래도 조운이 밟아온 테크를 생각하면 아문장을 준장이나 대령 같은 고위급으로 빗대어 생각하긴 어렵네요. 저한테 다가오는 느낌은 여전히 대위나 소령; 사실 1800년 전 군대계급을 지금의 계급이나 지휘계통에 넣어 생각하는 건 계급고하에 대한 비유적인 의미는 될 수 있어도 통솔규모(가령 소위면 소대 대령급이면 연대)까지 비슷하게 생각하면 뭔가 꼬이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조광의 연령은 다른 기록이 없으면 그냥 망상의 영역이 되겠지 싶네요. 구안의 후임이라 치면 나이는 맞겠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제자리였다는 게 되는데(...)
      적어주신 사이트 괜찮네요. 간체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맨눈으로 해석이 가능해진다니;;;; 블로그 주인이 정사 기준으로 조금씩 자기 생각을 덧붙인 것 같네요. 저쪽에서도 조운은 배경빨에 밀린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줄은ㅋㅋ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승연 2011.08.15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수 삼국지에서는 멀쩡한 위장군 강유가 편장군으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곽회, 등애, 진태전 중 하나일겁니다). 편장군 자체가 편군(일군 - 10,000명- 이 아닌 조각난 군)을 이끈다는 뜻도 있고 아문이라는 말 자체가 군영 내라는 의미가 있으니, 아문장이란 군영 내 최고 책임자의 부관 정도가 아닐까 싶고요, 그렇다면 그 계급은 최고 책임자의 계급에 따라 다르게 배치되겠죠.

      비장군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생각이 나는데 왕평이 아문장과 비장군이라는 직책을 같이 갖고 있었던 듯 합니다만..

      만약 조광이 240년 말 경 아문장이 되었다면 당시 강유 군세가 10,000명 안되었을테고, 255년 중반 이후의 강유라면 2-3만명은 데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두 시기의 아문장 계급 자체가 달랐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튼 저 당시 강유가 서열 3위 위장군이었고 규모는 작지만 독립 군단 (좀 규모를 축소해도 독립 여단)을 맡고 있었으니, 그 밑의 부관이라면 대령급이 맞지 않을까 싶고요..

      그러다가 군단장 전속부관이라 대위나 소령 급이라면 충공깽 ㅎㅎ

      아무튼 제 망상 속의 조광은 뭐랄까..유선 또래? 촉 2세대들을 대충 놓고 생각한다면 강유보다 5살 어렸던 유선을 기점으로 조통, 조광이 한 또래, 235년 경에 20살 정도가 아니었나 추정되는 진지, 약간 아래로 제갈첨과 동궐이 한 또래 그냥 이 정도로 시대를 나눠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제 경우 망상 속에선 조광, 조통은 별로 중요 인물이 아니라서 이 쪽은 그다지 구체적으로 나오질 않더라고요.--ㅋ

    • 양운 2011.08.15 1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문장, 비장 등등의 권한이 최고 책임자의 계급에 따라 다르게 배치되었으리란 쪽에 한표입니다. 주목 밑의 종사와 태수 밑의 종사는 둘 다 종사지만 동급은 아니었겠지요. 그렇게 보니 설명이 되는 듯하네요. 그러고 보니 왕평이 아문장비장이던가? 그런 직책명을 가졌던 게 아마 마속 따라간 시점이었지요?
      촉나라 2세대야 뭐. 많은 분들이 통, 광 > 첨으로 잡더군요. 통, 광에 대한 제 언급은 순전히 상산남자빠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저 자신은 2세대에 관심이 없습니다. 본문에서도 메인으로 끄적인 건 관평 장포 쪽입니다.ㅋㅋ 취향과 망상의 영역이라 재미있는 썰이나 팬픽을 발견하면 열심히 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