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火鳳燎原 2011. 9. 29. 16:51

오소 불놀이는 200년 겨울 10월의 일. 이것이 현재 화봉요원의 진행시점이다.
201년 조조의 근황에 대해 무제기는 무척 간략하게 적고 있다. 관도에서 한 번 크게 패했다고 원소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어서, 세력을 정비한 후 지리한 공방이 이어진 듯하다. 그 밖에 특기할 만한 사항은 하반기에 조조가 여남에서 유비를 쫓아냈고 이로부터 유비 패밀리의 암울한 신야 시절이 시작되었다는 것 정도다. 그럼 202년에는?


건안 7년(202년) ... 원소는 군이 격파된 이후로 병을 얻어 피를 토하다 여름 5월에 죽었다. 작은 아들 원상이 이를 대신했고, 원담은 거기장군을 자칭하며 여양에 주둔했다.(무제기)

원소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황하를 건너 원소의 아들 원담과 원상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원소의 장군 고간과 곽원이 황하의 동북지역을 침략하자 관우(關右)가 동요하였는데, 종요가 마등 등을 이끌고 그를 격파하였다. ... 8년(203)에 태조는 순욱이 ... (순욱전)

건안 연간, 태조가 여양에서 원담, 원상을 토벌하자, 원담은 곽원, 고간 등을 보내어 하동군을 공략케 하였다. 태조는 종요로 하여금 관중의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이를 토벌케 하였다.(방덕전)

사례교위 종요가 관중을 진수하게 되자 한수, 마등에게 서신을 보내 화와 복에 관해 진술했다. 마등이 마초를 보내 종요를 뒤따르게 하니 평양(하동군 평양현)에서 곽원, 고간을 토벌하고 마초의 장수 방덕이 직접 곽원을 참수했다.(마초전)

다른 일이 있어 마초전을 찾아보다가 위에 적은 것과는 역순으로 순욱전과 종요전, 무제기까지 봤다. 마초가 곽원, 고간과 싸운 기록을 보니 이 생각부터 든 탓이었다.

슬슬 진모가 좋아하는 이분이 잠깐 복귀할 때가 되었음 ㅇㅇ


오소가 박살난 지금, 가후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1년 넘게 전개되는 동안 성의 없이 한번 훑어보고 만 탓도 있는데, 관도대전 전개가 머리에 입력되어 있지 않다. 지들끼리만 뭐라카노!;;;) 시기적으로 볼 때 조조 세력이 슬슬 서량과 접촉을 가져도 좋겠지 싶어졌다. 곽가가 하북평정의 기초를 다지는 동안 가후는 마등과 만나 물 밑에서 작업을 했고, 그게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를 거둔 것이 종요가 마초를 빌려가 곽원, 고간을 치는 거라는 식으로 망상해보니, 이거 재미지다. 의대 사건에 당당히 끼어있던 마등이라면 반 조조의 기치 아래 원씨와 연합해줄 줄 알았건만 아뿔싸, 그새 조조와 손을 잡고 양쪽에서 때리네! 이런 전개를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어차피 화봉요원의 가후에게는 국수 그릇 뒤집어 써가며 장안에 쳐들어온 마등과 담판을 지은 과거가 있고, 역사적으로는 서량에서 마초를 완전히 쫓아낼 미래가 준비되어 있다. 연의에서 의대 사건에 끼어있던 마등이 후에 입조하게 되는 경위를 구성할 필요도 있고. 오소 불놀이로 원소가 무너지고 원방은 ??? 상태가 된 지금이야말로 그런 작업을 시작할 적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종요가 등장했던가? 여포가 죽은 후로는 대충 봐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래도 종요니까 등장은 했겠지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고 사실 난 이분들 근황이 더 궁금함.
7기님녀석이야 융중에서 니트질 중일 테고 사마의는 껀수 하나 터뜨릴 듯 께작께작 나오고 있더라만, 요원화 놈은 도대체 어디에 처박혀서 무엇을 하는 건지 모르겠음. 지금 이 시점에서 유비는 불난 배에서 탈출해야 할 상황이고 손권은 인수인계하느라 미칠 지경일 텐데 그 양반들 나오기도 전에 내가 뻗어버리겠다. 오소 불놀이가 너무 길다. =_=




p.s. 생각해 보니 곽가가 꺽다리 3기를 구출한답시고 달리는 말 위에 끌어올렸을 때 가후의 머리 뒤로 육수가 방울져 흩날렸겠구나. 아니.. 내가 원래 이런 식의 짓궂은 망상은 즐기지 않는 편이었는데.(...)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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