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전 중심, 메모 포스팅에서 계속됩니다.

 

 

노숙전 원문을 보니 이런 구절이 있네요.

 

"及說備使撫表衆, 同心一意, 共治曹操, 備必喜而從命."

 

유표가 죽은 직후까지만 해도 노숙은 승연님의 말씀처럼 -그리고 주유가 땅 주지 말고 대신 유관장을 갈라놓아 자기 같은 사람들이 부리게 -_-;;; 하라고 상소했을 때 드러나는 것처럼- 용맹한 소규모 군벌 정도로 생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에 유비는 공손찬의 부하 같은 위치였고, 여포한텐 항복했으며, 조조, 원소, 유표에 대해서는 의탁한 처지였긴 합니다. 다 대등한 관계는 아니었지요. 유표가 죽은 직후 노숙이 처음 계획한 것도 유비로 하여금 유종이 조조에 대항하도록 설득시켜 '유표의 후계자'와 연합하자는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유종은 조문사절인 노숙이 도착하기도 전에 너무 서둘러 항복해버렸습니다.  그 무렵 형주 여론은 바깥 사람인 노숙이 보기에도 극명하게 반반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형주 인심이 모두 유종을 따르는 것도 아닌데 항복부터 해버렸으니 대립하던 여론을 설득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겠지요. 경계는 그대로지만 형주는 사실상 쪼개진 셈입니다. 노숙은 이런 상황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에, 유종에 반대하는 나머지 여론을 규합하기 위해서 유비를 대등한 '독립군주'처럼 대우하자고 생각을 바꾼 게 아닐까 싶어지네요. 유비를 유종의 대항마로 세움으로써 항복에 반대하는 형주의 절반을 손권 쪽으로 끌어오려는 것이죠. 이 경우 유종이 항복했는데도 장판파까지 쫓아가서 유비를 만나 "우리 강동은 강하니까 (조조에 맞설 수 있으니) 협력하자"고 설득한 게 설명이 되네요.(及陳江東彊固,勸備與權併力) 후에 유비가 형주를 가져가는 문제에 대해서도 동오의 중신들은 반대하는데 노숙 혼자 찬성하면서 유비가 형주 민심을 다루게 해야 한다고 한 것도, 그리고 동오에서 유비를 일단 형주목으로 인정해준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객장 대접이라서, 강릉대치 동안 유비가 형남 4군을 얻은 것도 손권이 객장을 시켜 동오에 편입시킨 땅인데 단지 유비를 통해 형주 여론을 끌어오기 위해서 빌려준 거란 식으로- 동오 내부에서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군요. 210년에 손권이 형남4군의 행정구역을 멋대로 바꾼 것도 설명이 되고요. 한편 유비 패밀리 입장에서 보면 노숙은 일개 사병집단 대장이 아닌 '군주'에게 동맹을 제의한 셈이라, 형남 4군은 유비가 자력으로 쟁취한 유비의 땅으로 해석되었겠지요. 정작 노숙의 뒤에 있는 동오는 객장 취급하니 이쪽은 이쪽대로 화날 만 하겠습니다. 제 망상이지만요.

 

 

 

p.s. 결과론이지만, 강릉대치 이래 몇 년 간 조조 견제 역할은 오히려 손권 쪽에서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 합비 꼴아박으로 대표되듯이(...)

p.s.2 승연님 감사합니다. 저번 포스팅에선 목적을 가지고 노숙전 정독을 시작했는데 장판파에서 그 목적이 이성과 함께 폭파되어 버렸거든요. 승연님 댓글 보고서야 정신 차리고 저 부분 정독했심다. m(_ _)m

 

 

 

Posted by 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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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장관우 2012.04.30 0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 부부싸움 보는 것 같네요. 남편은 남편대로 입장이 있고 아내는 아내대로 입장이 있어..

  2. 승연 2012.05.03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하하하하, 웃으면 되는 겁니까. (아니 진짜 요즘엔 삼국지 쪽 볼 정신은 전혀 안되고요, 글 제목 보고 화들짝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