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덕질은 여름에 한번 기웃거려 봤다가 트릴로지 엔딩까지 내리 세 번을 연속해서 달리고 울면서 아오삼 팬픽을 찾아다녀도 이 울분이 다 풀리지 않아서...!! 아직도 가슴을 치고 있는 매펙으로 끝나고 말았다. 내 sf 취향이 직진이라도! 개러스를 두고 직진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우회전을 해야 하겠는가! o<-<
그간 트위터에서 썰을 이것저것 풀긴 했는데 오메가 dlc에 대한 잡상은 포스팅으로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오랜만에 블로그를 열었다. 오메가 dlc는 섀도우브로커나 시타델 같이 이의의 여지가 없는 훌륭한 dlc들과 비교하면 감상에 호불호가 심한 듯하던데, 내 경우에는 저 둘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대작이라 여겨진다.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서 정말 잘 짜였고, 캐릭들의 대사와 행동도 참 잘 만들었다. 겜을 할 땐 정신없이 플레이하느라 대사와 화면을 건성으로 읽어넘겨 많은 걸 놓쳤는데 영어 원문 대사를 하나씩 정지화면으로 잡아가며 정독하고 비교해 보니 씹을수록 참 맛나다. 이하는 dlc 스토리 전반에 대한 미리니름이 포함되어 있다.
오메가 dlc는 특히 인물 간에 주고받는 대사를 잘 짠 게 볼수록 감탄스럽다. 한 마디도 허투루 쓰인 게 없고 긴장을 잃지 않는다. (바로 이게 문제다. 오메가 dlc는 오메가라는 배경과 주요 인물들의 과거까지 압축해서 꽉꽉 짜인 이야기다. 대사 하나하나와 장면 하나하나에 정보량이 넘쳐나기 때문에 컷씬과 대사를 대충 보고 전투만 한다면 이야기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해 오메가 dlc를 온전히 즐기기 어려워진다. 이건 오메가 dlc의 장점이면서 단점이라 생각한다.) 이 dlc는 본편에서 아리아와 오메가를 배경으로 풀렸던 이야기와 역사를 뼈대 삼아 진행되며, 이 과정에서 몇 가지 단어가 중의적으로 사용된다.
오메가 dlc의 핵심적인 갈등은 아리아와 나이린의 관계가 아니다. 그 둘이 이 급박한 와중에도 사랑과 전쟁을 찍어대느라 일견 그렇게 보일 수도 있긴 한데, 사실은 셰퍼드가 나이린에 대해 대립과 연대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핵심이다.
매펙2에서는 아리아의 입버릇 같은 대사인 I am Omega와 Don't fuck with Aria 두 문장을 통해 무법천지 터미너스의 수도와 같은 오메가가 어떤 곳인지를 아리아 한 사람의 성격과 행동으로 상징화해서 보여준다. 패트리아크, 모딘, 그리고 셰퍼드에 대해 보이는 태도를 보면 아리아는 기본적으로 무자비하고 수단에 있어 극단적인 레니게이드를 지향하는 악인이긴 한데 어딘가 동기가 모호하게 숨겨져 있으며 절대악은 아닌 독특한 인물이다. 달리 말해 아리아의 오메가는 온 우주에서 범죄자들과 낙오자들이 몰려들며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곳이지만 절대악의 공간은 아닌 셈이었다. (절대악의 공간이었다면 아크앤젤이 오메가에서 지지를 얻어 자경단까지 결성하진 못했을 것이다. 개러스가 터미너스 범죄자들의 머리 격인 세 용병단과 한꺼번에 싸우는 대형사고를 벌였으면서도 아리아를 적대하지 않은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모딘 영입퀘에서 마주치는 바타리안들이 인간인 솊에게 강한 불신을 드러내다가도 솊이 파라곤 행동을 할 경우 놀라며 역시 "문명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작지만 의미 있는 장면이다.)
투리안 사회에서 원치 않게 아웃사이더가 되어 삶의 목적을 잃고 다른 낙오자들처럼 오메가까지 흘러들어간 나이린은 아마도 아리아와 오메가의 이 모호한 부분에서 오메가 식의 공공선을 끌어낼 변화의 가능성과 자신의 새로운 목적을 같이 보았던 듯하다. 오메가 dlc는 이 문제 많은 아리아(=오메가)를 두고 자기 방식으로 싸움을 거는 나이린에 대해 셰퍼드가 대립(레니게이드)과 연대(파라곤)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아리아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다시 오메가의 미래를 암시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dlc의 주인공은 오메가라는 정거장 그 자체다.
이 플롯을 드러내는 방식은 아리아와 나이린이 다투며 주고받는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고 발전한다. 우선 아리아와 나이린의 초기 관계부터 보자. 스토리 초입에서 나이린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아리아는 셰퍼드에게 이 인물을 소개하면서 "ex... millitary"라며 ex 다음에 미묘하게 뜸을 들인다. 입 안에선 ex 뒤에 달리 어떤 단어를 쓰고 싶었던 걸까?(...) 아리아와 나이린의 과거는 서로 정말 좋아했던 모양이지만 그만큼 상극이라 싸우기도 많이 싸웠으며, 결국 양립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선 후 나이린이 아리아에게 분노해 떠난 것으로 정리되었더랬다. 그렇지만 아리아의 이 톤은 두 사람의 관계가 정말 돌이킬 수 없이 끝장난 것인지 모호한 인상을 주며, 이어서 아리아와 나이린이 각자 셰퍼드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전히 변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임이 드러난다. 아리아는 평소의 신조와 달리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며 멋대로 움직이는 나이린을 내버려두고(잊지 말자. "Don't fuck with Aria."), 나이린은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오메가를 떠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잊지 말자. "I am Omega."). dlc 초기에 아리아가 나이린과 과거, 감정 이야기를 할 땐 부상자와 시체를 살피는 척 등을 돌렸고, 나이린이 탈론 리더인 게 드러난 후 아리아가 말을 걸었을 땐 나이린이 똑같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 불안정하고 모호한 관계의 상태는 셰퍼드 같은 제3자가 개입해 방향을 움직일 공간을 준다.
부득이 오메가를 떠났던 아리아가 셰퍼드까지 대동하고 다시 나타나자 아리아 없는 오메가에서 남아있던 사람들과 버텨온 나이린은 뒤에 뭐 두고 간 거라도 있었냐며 빈정거리는데, 아리아는 여기에 "everything"이라 대답한다. 관계가 깨졌고 그 후에도 나이린이 계속 오메가에 있었던 걸 몰랐던 이 시점의 아리아는 오메가를 뜻하는 의미에서 저 단어를 사용했다. 쭉 파라곤 진행을 할 경우 아리아는 뒤에서 "everything"이라는 말을 한 번 더 쓰게 된다. 솊이 광산의 반응로에서 시간을 들여 인명피해를 피하느라 나이린이 부상당할 경우이다. 이 사건을 겪으면 아리아는 너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뻔했다며 솊에게 화를 내는데, 이때의 "everything"은 앞서 썼던 것과 의미가 달라진다. 솊이 반응로를 날리는 선택을 해도 오메가 전체가 날아가진 않으므로 아리아의 손해는 크지 않을 거라 계산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거장 하나를 자신의 모든 것으로 여기고 자기 자신과 동일시했기에 남들의 피해는 아랑곳않던 아리아는 이 결정적인 사건을 시작으로 변해간다. 아리아는 나이린이 케르베로스의 괴물들 때문에 두려워하는 걸 두고 아리아의 방식으로 격려하고, 나이린을 "my partner"라 칭하며, 나이린과 마지막으로 나누는 대화에서는 장난스럽게 윙크를 날리면서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나이린의 희생으로 "everything"을 잃고 나서 아리아는 페트로프스키의 목을 조르다가도 "my partner"를 언급하고는 페트로프스키가 자신에게 보였던 행동을 기억해 약간의 자비를 베풀게 되며, 엔딩에서는 나이린의 희생을 기려 "We are Omega"라는 엄청난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오메가는 더이상 아리아가 자신을 동일시할 정도로 아리아만의 소유물이었던 공간이 아니며, 예전처럼 아리아가 "허락해주던" 무자비한 자유 이상의 것, 이를테면 공공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모딘 영입퀘에서 마주치는 바타리안들이 셰퍼드를 비롯한 인간들에게 적대적이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불신이었다. 이것은 인간과 바타리안 사이에는 서로 공유하는 공공선이 없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발생했다. 아리아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바탕으로 철권 통치를 한 이유도 오메가의 사람들은 도덕적 파산 상태, 곧 집단에서 공유할 도덕의 기준이 되는 공공선이 성립될 수 없는 자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파라곤 솊이 나이린의 믿음을 지지하면 나이린은 결국 오메가(=아리아)를 바꾸는 데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레니게이드 진행을 할 경우 "everything"은 두 번 등장하지 않는다. 파라곤 진행일 경우엔 아리아가 솊과 나이린의 협공에 다소 눌리면서 나이린에게 점점 미련을 보이지만 레니게이드 진행이면 반대로 나이린이 솊과 아리아의 협공에 갈리면서 아리아에게 호소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잃는 모습을 보인다. 아리아가 나이린에게 하는 말은 점점 사납고 냉혹해지다 마지막 대화에서는 노기까지 드러내며, 페트로프스키는 "내 것"이었던 오메가를 빼앗겼다는 아리아의 개인적인 분노로 인해 복수당한다. 나이린의 희생을 본 직후임에도 이 전개에서 쭉 나이린을 부정한 솊을 "new partner"라 부르며 키스하는 것으로 보아 이 아리아는 나이린의 죽음과 동시에 나이린이 촉발한 감정과 논쟁을 완전히 정리해버린 듯하다. 엔딩에서는 아리아의 또 다른 대표 대사이자 오메가의 유일한 법인 Don't fuck with Aria가 I am omega와 결합하여 "Don't fuck with Omega"로 결론지어진다. 레니게이드 솊이 나이린의 믿음을 부정하면 오메가(=아리아)는 결코 바뀌지 않게 된다.
저거 설마 아리아가 나이린의 이름을 부른 건 아니겠지...
겜상에선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이라 아리아의 입매를 보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셰퍼드는 저 느와르 커플의 이야기로부터 결코 소외되어 있지 않다. 셰퍼드가 지닌 인간관, 곧 눈 앞의 범죄자를 즉시 처단해버리는 식으로 일종의 즉각적인 효율을 추구하는 것과(레니게이드) 그 범죄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옳은 일을 하려 애쓸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발견하고 기회를 주는 식으로 좀 돌아가더라도 옳다 여겨지는 다른 방법을 택하는 것(파라곤)을 기준으로 삼아 오메가의 앞날을 결정할 심판을 내리는 키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1의 개러스 충성퀘인 닥터 하트 사건과 2의 개러스 충성퀘에서 셰퍼드와 개러스가 나누는 대화와도 닿아있다(두 퀘는 연동된다. 1에서 파라곤이었으면 2에서 파라곤 진행을 할 때 개러스가 비교적 차분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데, 1에서 레니게이드였으면 2에서 파라곤 진행 시 개러스가 정말 크게 화낸다.). 어찌 보면 레니게이드에 좀 더 치우쳤던 아크앤젤의 자경단이 (자경단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실패한 이유가 오메가 dlc를 통해 다소 설명되는 듯도 하다.
p.s. 추가 : 새벽에 급하게 적다가 진짜 중요한 이야기 하나를 빼먹었네. 아리아가 변하거나 변하지 않게 될 결정적인 사건은 광산에서 일어나지만 그건 아리아의 오메가 귀환부터 광산 전투 사이에 진행된 일들이 가득 찬 다음 마지막으로 더해진 물 한 방울 같은 것이다. 광산 전까지의 과정에서 핵심적인 게 탈론의 변화다. 아크앤젤 사건(에 더해 아마도 개러스 영입퀘 도중 셰퍼드가 주울 수 있는 세 용병단의 아리아 타도 계획 정보를 아리아에게 줘서)으로 3대 용병단이 사라진 자리를 꿰차고 들어갈 정도로 규모 있고 강력한 갱단이 리더가 바뀌자 약이나 팔고 청부살인을 하던 범죄조직에서 주민들을 지키는 규율 잡힌 시민군으로 앞장서고 있었다. 아리아는 이걸 두고 갱단 하나 장악했다고 오메가 전체를 어찌 해볼 수 있는 것처럼 잘난 척하지 말라 일축해버리긴 하지만, 이 변화는 공공선의 가능성에 대한 나이린의 믿음이 그 오메가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걸 실증하며 거기에 리더의 태도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걸 암시함으로써 아리아에게 압력을 가하는 장치가 된다. 나이린 칸드로스... 진짜 멋있는 캐릭터였다. 이 대목에선 중의적인 단어 사용 같은 대사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적는 걸 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