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사라>를 무삭제 무수정 완전판으로 다시 봤습니다. 무삭제 무수정이라고 해봤자 외전까지 합쳐 28권짜리 단행본과 크게 차이가 없..진 않나? 예전엔 피흘리는 장면은 좀 화이트칠이 되어 있었던가? 번역은 조금 달라졌군요(오키나와편 너무했다! 전사와 전쟁귀는 의미가 완전 다른데 어째서 단행본은 그렇게 번역한 건가!). 어쨌든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감동이 있네요.

<바사라>를 처음 1회독했을 때 든 생각은 이 작품의 장르가 뭘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순정이라고 하긴 뭣하고, 굳이 따지면 판타지인데 요즘 사람들이 아는 그런 판타지는 아니고, SF는 더더욱 아니고, 배경이 가공의 미래니까 시대물도 아니고. 그 정도로 이 작품에는 별의별 이야기가 들어 있지요. 헌데 '장르'라는 건 남에게 어떤 작품을 소개할 때 그 사람의 취향에 맞춰주기 위해 억지로 작품을 분류한다는 느낌이라서요. 이 작품에 대해 딱 잘라 장르를 나누는 건 어리석은 짓이고, 그저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들의 총체를 담은 이야기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라사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한번 제가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상에 대해 떠들 때 하기로 하고, 오늘은 아사기에 대해 잠깐 떠들까 합니다. <바사라>를 처음 접한 중학 시절에는 아게하가 최고였지만 - 아니 뭐, 지금도 아게하가 <바사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녀석인 사라사에 버금갈 정도로 좋아하는 캐릭이지만, 회독수를 늘려가고 시간이 흐를 수록 아사기라고 하는 한 인간에 대한 인상이 강렬해집니다.

첫 등장부터 이놈은 재수없었죠. 사람 목숨을 장난감으로 아는 가짜 창왕 밑에서 그 주구로 앞장서는 놈이었으니까요. 이녀석이야말로 진짜 창왕이고 사라사의 발밑을 파버리기 위해 타타라군에 들어갔으며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부하들을 거리낌없이 희생시킨 것도 짜증스러웠지만 최악이었던 건 -_- 단지 슈리를 골탕먹이기 위해 눈을 다친 사라사를 덮치려고 한 겁니다. 개색히 하고 바로 욕 튀어나오더군요.

이녀석은 정확한 어머니도 모른 채 어려서부터 불안정한 위치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를 보살펴준 친모 백왕은 그를 사랑하면서도 혐오했고, 오히려 슈리를 더 귀여워 했지요. 게다가 그에게는 슈리같은 건강도 없어서 의사로부터 일찍 죽을거란 말까지 들었습니다. 아사기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진실이 어떤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가 진짜 창왕이라는 백왕의 말 한 마디 뿐이었습니다. 녀석은 병약하기 짝이 없는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없어서 누군가 세력있는 자에게 빌붙지만 끝내 숙주를 말려 죽일 기생충에 불과했지요.

그렇지만 타타라네 사람들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줬습니다. 능구렁이보다도 속이 시커먼 이녀석과는 전혀 성격이 맞지 않을 것 같던 나치와 히지리가 어울려줬고, 사라사는 아사기가 저지른 짓도 있고 해서 완전히 믿진 않았지만 - 그러니까 슈리와 아사기 중 택하라면 아사기한테 간다고 했죠. 슈리는 완전히 믿으니까 어찌 되든 맡긴다는 심정이지만 아사기는 그때까지도 완전히 믿지 못했으니까 - 그래도 그를 동료로 여겨 주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혼자였던 아사기는 시끄럽기 짝이 없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채이는 걸 짜증내면서도 그 분위기에, 실은 어려서부터 쭉 동경했던 것에 녹아들어갔습니다. 사라사와 슈리를 최악의 나락에 빠뜨리기 위해 얄미우리만치 둘을 갈라놓고 그 상황을 비웃어댔지만, 그래도 백왕의 명령을 빌미로 타타라 군을 떠나지 않았지요. 거기서는 성격이 좀 비틀리긴 했어도 검술에 뛰어난 아사기를 인정하고 그를 필요로 해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대등한 친구로서 놀려주는 녀석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렇기에 그 아사기가, 심기체 중 가진 게 기술 뿐이던 그 아사기가 타타라로서의 사라사로부터 '맡기겠다'는 최상의 신뢰를 얻고, 마침내 자신의 의지로써 그 히이라기의 앞을 막아섰을 때의 전율은 <타이의 대모험>의 포프가 주인공 각성..이 아니라 하여간 각성한 그 순간과도 같았습니다. 아니, 포프는 찌질하긴 해도 본래 선량한 녀석이었고 쭉 타이의 편이었던 걸 생각하면 더욱 아프고 짜릿합니다. 거기서 한층 더 나아가 백왕이 아사기가 끝내 붙잡고 있던 '창왕'이라는 허울을 부정하고 부숴버린 순간. 녀석은 자신의 인생 자체를 부정당한 줄 알았지만 실은 그 덕분에 진짜 자신을 찾게 되었지요. '창왕'이 아니라 '아사기'라는 한 인간을 보아준 사라사와, 슈리와, 구마노의 바보 콤비를 위시한 타타라네 사람들과의 부대낌 덕분에요. <바사라>에서 가장 자주 우는 사람은 사라사이다보니 우는 모습이 아름다운 장면을 꼽아도 사라사의 비중이 압도적이지만, 아사기가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되어 눈물을 흘린 그 장면만큼은 울면서도 다시 달리는 사라사에게도 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사기는 테세우스에게 살해당해야 할 미노타우로스도 본래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하게 되어있던 미운 오리 새끼도 아닌, 그저 한 명의 변화할 수 있는 인간이었습니다.



사포의 신죠도 그렇고, 데이몬 녀석들도 그렇고, 요즘에는 어째선지 이렇게 변화해가는 캐릭터들이 좋아지네요. 뭐어, 변화와 변질은 다른 거라 사람이 부정적으로 바뀌는 것까지 아름답다고 생각할 순 없으며, 지은 죄의 무게를 생각하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요.






p.s. 사실, 저는 <바사라>가 막부 말기 시대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흑선이나 사쿠라다문의 변, 신선조의 패러디가 명백한-_-;; 야랑조, 다카스기 신사쿠의 유언, 교토 방화 미수같이 뻔한 것도 있고(그런데 이케다야를 그렇게 패러디하다니 너무했다. 타로를 살려줘. 언론의 자유 만세! ;ㅁ;), 백호/주작/청룡/현무가 계승된 마을들의 위치가 대략 유신지사들이 들고 일어난 그 근거지와도 맞물리는 것 같더군요. 백호는 쵸슈, 주작은 사쓰마 쯤? 거기에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으로 유명한 토사쪽 사람들은 대놓고 '유신'을 언급하지요.; 그렇지만 <바사라>의 결말은 메이지 유신과는 정반대방향으로 맺어졌습니다. 메이지 유신 결과 일본은 제국주의적인 팽창을 거듭해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결국 자국까지 불바다로 만들었지만, <바사라>의 일본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마을만은, 비록 적의 마을이라 해도 전장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강조되지요.

저는, 메이지 유신은 위로부터의 혁명이었고 타타라의 궐기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게 전혀 다른 결말을 끌어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사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네들이 한국처럼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겪은 일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위에서 굽어보는 입장인 자가 들고 일어나는 것과 지켜야 할 것들 위에 바로 뿌리박고 사는 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차이가 크죠.

그래서 저는 <바사라>를 읽을 때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의미에서 시민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채 근대화를 마친 오늘날의 일본인으로서 작가가 진정 이상적으로 생각한 유신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국주의로 치달아 남을 해치고 끝내 자신까지 해치는 게 아니라 상생하는 것,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며 살 수 있는, 칼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몇몇 영웅이 아닌 백성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 말입니다.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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