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저는 해양로망이라면 일단 꺼벅 죽고 봅니다. 괜찮은 거 없을까 하고 한창 검색하다가 낚인 게 <호레이쇼 혼블로워>라는 해전소설입니다. 아직 원작은 못 봤고, 드라마를 오늘 봤습니다.


좀 딴 소리입니다만... 자막의 소중함에 새삼 뭉클해지는군요. 가뜩이나 딸리는 히어링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자막을 받았건만 이것조차 영어라니 OTL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고 자막이라도 있으니까 좀 이해하면서 볼 수는 있었습니다만, 좀 약이 오르네요. 자막에 집중하느라 화면을 못 봤다고요. 에라이 2편부터는 영어 자막조차 없더만. OTL


아무튼. 때는 프랑스 혁명이 마악 포성을 울릴 무렵. 열일곱살 풋내기 호레이쇼 혼블로워는 군함에 오릅니다. 아마 이 시대의 영국 해군 사관코스에는 실전경험차원에서 후보생을 진짜로 전투 중인 전함에 실어보내는 과정이 있었을 겁니다(마스터 앤 커맨더를 보면 열다섯도 안 된 것 같은 꼬맹이가 사병들 지휘하잖습니까? 한편으로는 꽤 나이가 찼는데도 후보생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나이가 몇이 됐든 간에 그 코스를 제대로 수료했다고 인정받아야 진급이 가능한 것 같더군요). 그는 다른 후보생들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바로 배멀미를 해버리고 돛대에 잘 오르지도 못하는 등 뱃일에 익숙치 못한 소년(이라고 해야겠지요?)이었습니다. 허나 함장이 내준 문제를 혼자 제대로 해결하는 등 뭔가 떡잎 푸른 티를 내자 안 그래도 모난 소갈머리에 이번 진급에도 실패해 누구 갈굴 놈 없나 눈알 희번득거리던 최고참 후보생한테 딱 걸렸지요. 이하 파란만장한 군생활의 시작에 대한 언급은 미리니름이니, 직접 보시거나, 상상하시길... *-_-*


그나저나 혼블로워는 사람 다루는 법을 아는 인물 같더군요. 혹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랄까요. 악랄한 왕고 후보생에게 누군가는 대항해야 한다고 열변함으로써 투고 후보생이 '물론 그래야지만, 꼬맹이는 안 돼'라며 대신 총을 들게 한다라. 그걸 혼블로워가 원한 건 아니지만 창창한 미래와 목숨을 그런 일로 걸어버리도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그 꼬맹이입니다. 사병 레벨에서 보자면, 개말년인 병장은 짬을 내세워 신임소위한테 눈 부라리는 우리나라 전통이 다른 나라라고 다르진 않겠지요. 그런데도 제대할 때가 가까워가는 고참 병사들을 (비록 약점을 잡은 거지만) 순식간에 자기 부하로 만드는군요. 또 일개 사병 하나의 목숨을 구하려고 포로가 되는 쪽을 택함으로써 후에 그 사병한테 구조받기도 하고요. 왕고 후보생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좀 뻔한 전개를 보임으로써 호레이쇼 혼블로워라는 인물의 인간됨에 대한 전반적인 바탕은 역시 그랬다, 하고 끝을 맺었습니다만, 진부하다는 건 그만큼 효과가 있으니까 계속 반복된다는 뜻이지요. 저는 이런 성실한 캐릭이 마음에 듭니다.


한편으로 열일곱살 맞나 싶게 대담한 친구더군요. 나침반을 잘못 건드려 고장낸 선원은 돛대에 손바닥이 고정되는 벌을 받습니다. 밧줄로 묶이거나 하는 게 아니라, 단검으로 못 박듯 꽂히는 겁니다. 자기 힘으로 손바닥을 두쪽 내든지 어떻든지 해서 단검을 뽑아야 벌이 끝나지요. 그런 엄벌을 줄 정도로 나침반은 항해에 있어 중요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것을 아예 바다에 던져버리더군요. 바람과 파도가 엉망진창인 비스케이만(적국인 프랑스의 앞마당입니다)에서, 커다란 범선도 아니고 조막만한 보트에 적까지 동석한 채. 나름 계산이 있어서 그런 거지만 적도 부하들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정말 대단한 배짱입니다.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자 자원해서 당장 최전방에 투입될 프리깃으로 옮겨 탄 그가 앞으로 어떤 해전을 치르고 어떻게 바다에 맞서 갈지 심히 궁금해집니다. 곧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대를 맞을 테고, 넬슨 제독은 나일 강에서부터 슬슬 신나게 날뛰겠지요. 내일은 귀차니즘을 털어내고 학교엘 좀 가야겠습니다. 얼마전에 마지막 권까지 다 번역되었다던데, 학교 도서관에도 아마 9권까지는 있을 터입니다. 아놔 나 또 이렇게 공부 안 할 핑계거리 만든다.=_=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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