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설쳤습니다.

낚였다 2006. 6. 19. 21:34


어제는 교환학생 갔다가 1년만에 귀국한 동기놈 환영을 빙자해 동기들을 소집할 수 있는 한 소집해 놀고 먹자는 목적으로 신촌엘 좀 다녀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뽑은 놈이 바로 다음날 한잔 걸친 건 아니고요, 순수하게,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반기는 의미에서 *-_-*

신촌에서도 응원전 하긴 하는 모양이군요. 듣자하니 술집에서 티비 보다가 시합 끝나면 몰려나와 명물거리가 복작거리게 되는 매카니즘이라던데. 재미나게 놀다가 11시쯤 되서 파하려고 나와보니 갑자기 뻘겅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몰려 다니더군요. (일본 국대 유니폼에 붉은악마 머리띠를 맨 일본분들도 있었습니다. 크로아티아전 보고 바로 한불전 볼 생각이었을까요? 거참 체력이..^^;)

그 시점에서 광화문 바로 가려던 놈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단호한 의지로 돌아가 잘 것인가 분기점이 주어졌습니다만... 이번주에는 오전 보강에 오후 수업이 따로 있는 고로 -ㅅ-; 눈물을 뿌리며 후자를 택했습니다.

(신선생 납하요! 권박사와 달리 보강이 덜할 줄 알았는데 배신이야 배신! 보강만 안 했어도, 보강만 안 했어도! ;ㅁ;)

해서 용감무쌍하게 대자로 뻗어 있었건만-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천장이 어째 퍼렇더군요. 어라 지금 몇 시 하고 시계를 보니 얼쑤 새벽 네 시네, 축구 시작하잖아아아아악! 하고 잠이 확 깨버렸습니다. 앞으로 세 시간은 더 자야 사람의 몰골을 하고 밖에 나갈 수 있건마는 자려고 악을 쓰면 잠이 안 오는 게 세상의 이치, 눈을 감으려 할 수록 눈이 말똥말똥해지고 심장은 쿵쾅쿵쾅 밖의 소음에 귀를 기울이더이다. 어느 순간 "으아악!"하고 꼬리가 긴 비명이 터졌을 때 한 골 먹었구나! 하고 철렁했는데, 롤러코스터 타고 내려온 직후처럼 심장이 벌렁벌렁하더군요. 문득 뇌리를 스친 건 <새벽 네 시 무렵에는 심장마비가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아집니다>라던 월드컵 응원 대비 건강관리지침. 강백호의 풋내기 드리블만큼 엉망으로 불규칙바운드를 일으키는 심장이 목구멍에 걸려 폐까지 압박하는 느낌이더군요. 이러다 껙 하고 죽어버리면 <고시생 의문의 돌연사 : 데스노트는 실재했는가?!>같은 기사가 뜨는 거 아니야 하고 얼토당토 않은 망상까지 떠올렸습니다.

하여간 가슴 두드리고 켁켁거리며 뒹굴뒹굴하는데 또 "으악!" 하고 짧은 비명이 터지더군요. 아놔, 진짜 심장 튀어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웬만한 공포영화를 봐도 누가 뒤에서 암만 급습해도 화들짝 놀라는 일은 없던 제가 누운 자리에서 한바퀴 굴러버렸습니다. 비명이 짧길래 이게 먹은 건가 먹을 뻔한 건가 긴가민가 하던데, 아무튼 좋은 징조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나? 지면 국대 귀국인가? 프랑스가 가는 건가? 하고 힘이 쭉 빠진 채 다시 뒹굴뒹굴했습니다. 하늘은 점점 밝아오는 것이 제대로 잠들기는 다 틀렸더군요. 보강에 뭐에 지기까지 하면 나 오늘 죽었소 하고 주절주절하던 차, 먼 데서 차 굴러가는 소리만 음산하던 동네가 갑자기 들썩! "우와아아아아!" "박지성! 박지성!"

음, 넣었구나. 갑자기 심박이 잠잠해지더군요. 시계를 보니 대략 여섯시가 가까워진 때, 그제서야 겨우 몸이 풀리면서 잠깐이나마 잠들었습니다.


사람을 한새벽에 깨워 생사를 오락가락하게 만들어놓고는 비겼어? 비겼다고? 잘 했다, 국대! 사실 난 2 대 0 쯤으로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정말 잘 했다! 하지만 두 번은 사양이다! 자기 심장을 살아생전에 갈빗대 밖에서 보는 경험 같은 건 하고 싶지 않거든.-_-;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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