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없이 재미있게 볼 애니를 찾다 보니 옛적에 봤던 것들로 돌아가게 되는군요. 슬레도 그렇고 나디아도 그렇고 이녀석도 그렇고...-.-;

...생각해 보니 제가 국민학교를 다닌 90년대 초중반에는 묘하게 로봇용자물이 많이 방영되었습니다. -.-;  그쪽 취향은 아닌 고로 보기는 많이 봤는데 이거 재미있구나 하고 즐겁게 본 건 별로 없었습니다. 본인의 취향이라는 무지막지한 방벽을 뚫고 지금까지 그거 괜찮은 애니였지 하고 기억을 남기는 거라면 그랑죠 정도지요.




스토리는 한줄로 요약하자면 마동왕의 전사들이여 사아칸 우주정복자들을 물리치고 달나라를 구하라! 정도가 되겠군요. 민호(다이치)가 어찌어찌 해서 브이메이를 돕게 된 과정이나 이후 여행 중에 아무데나 뻗치는(절대로 '뻗쳐오는'이 아닙니다) 도움의 손길, 용이(가스)는 힘들게 마동력을 깨우쳤는데 제롬(라비)은 처음부터 무기 소환해가며 마력을 뽐내는 거랄지, 만사 종결 후 잘생긴 것들만 살아남아서 -ㅅ- 너무도 간단하게 개과천선하야 머나먼 고향별로 돌아가는 거랄지, 자알 봤습니다. 보고 여기저기 설명이 안 되는 데나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한 데에 끙끙거렸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이건 개그물입니다! 재미있게 봤으면 됐지 무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겁니까! -ㅅ-




그랑죠를 본 세대라면 하다못해 민호의 제트보드랄지, 구리구리와 당근이랄지, 그랑죠가 두 주먹 불끈 움켜쥐며 변신하는 장면 정도는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제대로 기억한 건 화려한 전투 장면 같은 게 아니더군요. 이번에 처음부터 돌려보면서 느낀 건, 그랑죠는 음악이 제일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랑죠 소환씬에 특히 집중된 멋진 배경음악들... 빠바바바~바밤 밤 밤~ 빠바빠바바 밤 밤 밤~ 이랄지, 밤 바바바밤 밤밤 바바바밤 바바밤 밤~ 밤밤~ 이랄지, 빠암 바바밤~ 빠바바바바 바 바바밤~ 바바밤~ 바바바바바밤 바바밤~ 이랄지. 배경음악을 따로 파일로 편집하는 기술이 없어서 다른 분들께 들려드리지 못하는 게 좀 아쉽군요.; 원작 오프닝 테마 또한 이상하게 귀에 익다 했더니 그랑죠 소환씬의 그 배경음악 중 하나를 기조로 한 겁디다.

그러나! 역시! 타오르는 것은! 한국판인 것입니다아아아앗~! 그랑죠~ 그랑죠~ 마법으로 빛~나는 그랑죠~ 마법으로 빛나는 그랑죠~ 달나라의 미래 너에게만 달렸다 번개전사~ 슈퍼~ 그랑죠! 그랑죠~~ ;ㅁ;

하여간 스토리는 기억 못 해도 그 곡조들만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떠오르더이다. 그 시절에 본 애니들 중에서 배경음악까지 기억하는 건 쾌걸조로 정도인 제 기억력으로도 말입니다.^^;
(슬레의 경우에는 무수한 반복학습의 결과이니..;)

이전에 <달의 고치>를 듣고 멜로디만 기억했다가 수 년 후에 무슨 곡이었나 찾아보다보니 건담에 슬쩍 관심이 간 적이 있습니다. 음악이란 게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이야기나 캐릭의 성격 같은 건 쉽게 잊어버리는데도 음악만은 오래 기억에 남네요. 그런 걸 보면 소리의 기억은 사람의 성격이나 기분 같은 것에 오래도록 남아 은연중에 영향을 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음악은 가려 들읍시다... 이게 아닌데.




그랑죠는 신화적인 모티브를 많이 사용하더군요. 달나라에 사는 토끼, 매지칼고, 물기둥과 불기둥, 살부(殺父)신화, 엄마 찾아 삼만리(...),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사실 마동왕 자체가 그 세계에서는 긴귀부족 사이에서 신화처럼 전해지는 존재입니다만. 신화가 얽히면 이야기는 판타지가 됩니다. 에스카플로네 식으로 현실을 반영한 어둠을 간직한 채 이야기를 꾸려갈 수도 있지만, 신화적인 요소에 보다 집중하면 이야기는 동화가 됩니다. 있을 리 없는 것이 버젓이 존재하고, 어릴 적 믿었던 조그만 세계가 진짜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어쩌면 이 애니는 달에는 정말로 토끼인간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라는 장난스런 농담에서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랑죠의 주인공들은 딱 저 나이의 어린애들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어리면 메카를 움직이기에는 너무 현실감이 없고, 더 나이를 먹어버리면 또 현실적으로 삐딱하게 굴면서 스토리의 전체 분위기에 엇나갑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의 마음이 아니고서야 달에 토끼가 산다고 믿을 리 없지요. 하고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공기가 생긴 달에 이주해왔지만, 제대로 긴귀부족을 본 사람은 민호와, 토끼인간에 대한 자신의 믿음에 50년의 세월을 건 할아버지 뿐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용이 녀석은 참 속도 깊지.. 민호랑 제롬은 허구헌날 초딩스럽게 투덜거리고 툭하면 용이를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부려먹으면서도 스토리상 얻은 위치로 인해 맘대로 폼잡고, 결국 용이만 따돌린 채 팬심까지 싹 쓸어갔습니다. 그 지경에 이르렀건만 용이는 마당쇠 정도가 아니라 잊혀진 인물(...)임에도 달관한 신선처럼 허허 웃고 넘어가버릴 그런 캐릭터란 말입니다. 실수로 10살을 확 먹어버린 어른 버젼 용이를 봤을 때 딱 든 생각은, 어린이 여러분은 절대 친구를 지금의 외양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쿠니미 히로와 아마미야 히카리까지 갈 것도 없이, 사람은 어릴 적 외모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 용이야말로 진정한 싸나이인 것입니다! 동인지에 용이를 메인으로!

.......사람은 착하기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반드시 마스크를 갖춰야 한다는 게 용이가 주는 교훈이었습니다. 이상. OTL




이런 빌어먹을 세상,
아르헨티나 백브레이커어어어엌!!!!!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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