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선장! 전 승무원을 불러 잡담을 시작한다."
"방문자한테는 아스트랄할 텐데요..."
"상관 없다! 강행한다!"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이하 나디아)>를 보면서 몇 가지 대립구도를 발견했습니다. 그걸 중심으로 <나디아>에 대한 잡상을 끄적여 봅니다.


1, 바다와 하늘

이건 라니구드님이 말씀하셔서 깨달았는데요. <나디아>에는 일단 한국에서 번안한 제목에 '바다'가 들어가 있으며 파리가 배경인 첫화와 우주가 배경인 마지막화 외에는 항상 바다가 아이들 옆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배경인 바다가 이상하게도 제 눈에는 그리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해양로망(...)을 바라고 <나디아>를 복습한 건데도 제가 시선을 고정시킨 것은 바다가 아닌 하늘이었지요.


<해저2만리>의 네모 선장은 전쟁질이나 해대는 인간들에 혐오감을 느껴 잠수함을 타고 바다 밑으로 침잠해 버렸습니다. 그를 비롯해 노틸러스 호에 탄 사람들은 바다의 경이에 경의를 표하며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무력함과 그것을 극복해 나갈 과학의 힘에 대한 감탄으로 푹 젖어 있지요. 그러나 <나디아>의 노틸러스 호 탑승자들은 바다의 경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바다는 그저 당대(19세기)의 인간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기술로 구성된 노틸러스 호를 인간의 눈을 피해 숨겨주는 곳이며 1만 하고도 2천년 전에 지구를 지배했던 아틀란티스를 더욱 깊은 품속에 감춰두는 곳일 뿐입니다.

한편 과학에 대한 마인드는 19세기에 있으면서 기술과 발상은 20세기를 통달한 20세기 소년 쟝(....)은 바다 자체에 대해서는 역시 관심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범선 선장이었지만 그건 아버지 이야기고, 쟝 자신은 비행기를 만들어 오래도록 하늘을 나는 데에 보다 관심이 있습니다. 깊이 들어갈수록 빛이 닿지 않는 어둠으로 뭐든지 숨겨버리는 바다와 달리 하늘은 훤히 드러나 있습니다. 감출 것도 숨길 것도 없는 빛으로 가득하지요.

<나디아>의 바다는 아틀란티스가 지금까지 남긴 유물들과 그것을 둘러싼 싸움, 즉 과거만이 있는 곳입니다. 나디아가 병에 걸려 치료약을 얻기 위해 내려간 해구 바닥에는 바다나리나 삼엽충, 필석 같은 고생대의 생물들이 멀쩡히 살고 있었는데, 그 장면이 <나디아>에서 바다가 갖는 의미를 거의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하늘은 아직 인류의 손에서 멀기만 한 곳, 고개를 쳐들고 올려다봐야 하는 동경의 장소입니다. 하늘은 이제부터 인간이 도달해야 할 미래가 있는 곳이죠. 그래서 네모 선장을 비롯한 어른들이 바다 밑에서만 뭔가를 건져올릴 때 소년인 쟝은 하늘을 날 궁리만 하는 것입니다.


이미 하늘을 날며 헬리콥터도 아닌 비행물체로 공중에서 정지해 있을 수 있는 네오 아틀란티스는? 이건 엇나간 미래를 지향하는 이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단지 하늘에 안기고 싶어서 날고 싶어하는 쟝과 달리 네오 아틀란티스는 지상의 인간들을 내려다보기 위해 날고 있는 것 뿐이니까요. 위를, 진짜 하늘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2. 과학과 자연, 혹은 마음

비행기가 바다에 빠져 조난당한 아이들이 미국 군함에 구조되었을 때, 쟝과 나디아의 반응은 천양지차였습니다. 쟝은 당대 최고의 기술력이 결집된 최신예군함에 탔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해 잔뜩 들떠 있었고, 나디아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그 배를 무서워합니다. 그 반응은 노틸러스 호에 구조되었을 때에도 이어져, 쟝은 대책없이 기뻐하고, 나디아는 빨리 잠수함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쟝은 과학과 이성이 인간에게 최고의 축복을 내려주리란 믿음으로 가득 차 있던 19세기의 과학도입니다. 세계는 아직 과학기슬이 오직 인간을 죽여버리기 위해 미친 듯이 발전한 세계대전을 겪기 전 시절의 꿈에 잠겨 있습니다. 과학만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쟝은 그 과학이 아틀란티스를 성서의 계시록에 나올법한 겁화로 파멸시켰다는 걸 알게 된 후에야 깨닫습니다. 네모 선장이 자신을 함장이라고, 노틸러스 호를 군함이라고 부르지 말라 한 이유를요. 과학은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의 축복을 주는 한편 일순간에 모든 것을 지워버릴 악마성을 가진 것입니다.





한편 노틸러스 호가 침몰된 후 무인도에 표류한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과학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속에 파묻힌 인간이 얼마나 힘겹게 사는지(...)에 대해 보여줍니다. 쟝과 마리는 고기가 든 통조림을 따고, '살해된 동물의 시체'같은 걸 먹고 싶지 않아 멋대로 숲속에 들어간 나디아는 자력으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쟝이 챙겨둔 감자 통조림을 슬쩍하지요. 그러나 통조림따개라는 지렛대의 기초적인 응용물을 쓰지 못한 나디아는 통조림을 먹기는커녕 병째로 찌그러뜨리고 맙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이성은 얻은 이래로 인간은 과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죠. 그렇다면 대체 그 무서운 힘을 가진 과학을 어떻게 다뤄야 한다는 건지?

아틀란티스의 과학은 지구에 새로운 종을 탄생시켰고, 죽은 자를 사이보그로서 살려낼 수준에 이릅니다. 나디아의 오빠인 네오 황제는 네모 선장이 타르테소스를 멸망시킨 날 아버지에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가고일이 손을 써서 사이보그가 된 그는 지금껏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존재해 왔습니다. 아틀란티스의 과학력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던 그에게는 감정은 없이 오직 가고일이 시키는 대로 초능력을 다룰 힘만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눈을 떠 아버지와 동생을 알아봅니다. 파괴된 몸으로 아직 의식이 없는 나디아를 깨우기 위해 무거운 케이블을 끌고 걸어간 그는 가고일이 플러그를 뽑아 전원을 끊어버렸음에도 마지막 힘을 다해 손을 뻗어 나디아를 깨우는 '기적'을 행하고 재로 돌아갑니다. 실낱같이 여리고 힘이 없는 마음이 과학을 압도한 것입니다.

네오 황제가 보여준 기적은 과학의 마지막 한계인 동시에 인간의 희망인 셈이죠.




3. 인종갈등 (흑백 갈등, 아틀란티스인과 지구인의 대립)

사냥을 하러 섬에 상륙했을 때 쟝은 노틸러스 호의 승무원들이 정말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19세기 말이라면 유럽의 제국주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대로 온 세상에 백인우월주의가 판을 치던 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승무원들은 시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들처럼 서로를 피부색이 아닌 인격체로서 대우하고 있었습니다. 네모 선장을 이들을 가리켜 일종의 이상향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가고일의 네오 아틀란티스는 지구의 인간들을 종으로서 발밑에 꿇리기 위해 바벨탑을 완성합니다. 가고일은 본래 타르테소스의 재상으로 국왕이었던 네모 선장과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277광년 거리의 우주에서 온 아틀란티스 인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찬 그는 실은 자신이 아틀란티스 인들이 창조한 인간의 후손인 것도 모르고 인간을 지구상에서 말살하던지, 아틀란티스의 지배를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네모 선장은 그 말에 반대하며 인간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가고일은 이미 바벨탑을 완성한 후였지요. 죽음의 광선이 지구 어딘가를 파괴하기 직전 네모 선장은 바벨탑을 움직이는 블루워터를 뽑아 버리고, 폭주한 광선은 타르테소스 내에서 자폭합니다. 왕은 가족과 자기 백성의 목숨으로 그들과 아무 상관도 없는 지구인들을 구했습니다.

피부색이 어떻든, 혈통이 어떻고 태어난 땅이 어디든 간에 사람은 똑같이 심장이 있고, 붉은 피를 흘립니다. 모두가 동등한 인격을 가진 인간인데 외적인 모양새가 다르다,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섬기거나 누군가에게 섬김받아야 하는 이유는 없는 것이죠. 물론 다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소수를 희생시키는 네모 선장의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그가 자신의 목숨을 버려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그의 신념은 존중할 가치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한다는 건 상대방을 이해할 자세를 갖추었음을 의미하고, 그것은 더 나아가 의견이 맞지 않는 상대방을 죽여 없앰으로써 자기 의지를 관철하려는 어리석음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아이와 어른

어른밖에 없는 노틸러스 호에서 쟝은 얼른 제 몫을 다하는 어른이 되어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고, 인간을 불신하던 나디아는 그냥 어린 소녀인 채로 살고 싶어 합니다. 바보 아빠-ㅅ-나 예의는 바르지만 심경이 복잡한 부선장 등등은 아이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줄 만한 상태도 아니고, 아이들이 가까이 가기엔 멀기만 한 어른들. 결국 아이들을 상대해준 건 소악당으로 출발해 가고일의 음모를 막는 데에 최고의 수훈을 세웠으면서도 아이들처럼 노틸러스 호의 정식 승무원은 아니었던 그랑디스 일당이 떠맡았습니다.;

그랑디스는 자신의 철없음으로 인해 집안이 몰락해버린 후 그런 부잣집 고명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요리 같은 잡일을 척척 처리하는 생존력 강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샌슨과 핸슨은 자기 힘으로 끼니를 이어야 했던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내고도 명랑쾌활하게 하고 싶은 짓은 저지르고 보던 이들은 하는 짓과는 달리 이미 자신의 관(觀)을 세운 어른들이었죠.

쟝은 샌슨과 핸슨한테 어떻게 해야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가를 무식하게 따지다가, 그래도 자신은 열다섯살 소년에 불과함을 깨닫고 자신의 손에 닿는 범위의 일부터 열심히 하기로 결심합니다. 나디아를 향한 청춘의 잡음(...)에 시달리면서 갈팡질팡하는 그에게 두 사람은 때로는 쟝의 고민을 들어주고, 때로는 경험담에 바탕해 쟝이 해야 할 일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나디아는 그랑디스한테 조언을 듣습니다. 이쪽은 자기 자신도 모르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는군요.;

이들의 관계는 어찌 보면 제일 이상적인 어른과 아이의 관계입니다. 어른은 아이의 잘못을 보면 바로 지적하며 호통치지만 아이들이 믿고 기대오면 어깨를 내줍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닥쳐온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른의 경험에서 지혜를 구하고, 그 자신도 어른이 되어 갑니다.

물론, 왜 아이가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주기가 어렵지요. 쟝은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거란 막연한 이유로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만, 나디아는 어른의 추한 꼴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어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가 볼 때 어른은 아이보다 크고 힘도 세며 못하는 것은 없으면서 아이들에게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가르친 자신의 말과는 반대되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모순덩이입니다. 세월은 무심하게도 흘러가니까 아이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그건 기대되는 일인 동시에 두려운 일입니다. 어릴 적 알던 세계와 나이 들어 바라본 세계는 달라도 좀 많이 다르던데요(그런데 나는 어른인가?;). 그럼에도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건, 애를 낳고 인류를 계속 존속시키기 위해서만은 아니죠.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애는 사람도 아니라는 거냐는 소리가 아니라, 간단히 말해 정신적으로 초딩을 졸업하자 랄까요.'_'a; 정말 어린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폐라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아이는 순수하게 이기적인 존재니까요. 그런 상태로 어른이 되면 힘을 가진 초딩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까요. 미국 하는 짓이 볼썽사납고 일본과 중국은 박살났으면 좋겠다는 욱하는 성질로 그 나라들에 게임버튼이라도 누르는 기분으로 핵을 던지는 지도자가 있는 세상 따위, 상상도 하기 싫군요.

어린이의 마음가짐이 나쁠 건 없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 주위의 어른들은 아이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게 만들 필요가 있고 거기서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아이가 어릴 때의 버릇을 아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 아이가 발을 딛을 세상은 아이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니까요.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할 때가 있고, 싫어도 내색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는 거죠. 솔직해질 수 없게 되었다는 건 어른의 나쁜 점입니다만, 사람은 같이 살아야 하니까요. 그런 건 어른들과 시간이 가르쳐 주는 것이라, 쟝이 어른이 되고 싶다고 떼를 쓴다 해서 당장 어른이 될 수 없는 겁니다. 나디아 역시 언제까지나 어린애처럼 주위에 투정을 해대서는 안 되는 거죠. 사람들과의 부대낌에서 따뜻함을 알아버린 이상 혼자서 멋대로 살아도 되는 시절은 다 가버린 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어린애의 마인드를 간직한 채 어른이 될 리나 인버스가 다시 부럽고 대단해집니다. 흑. ㅠㅠ)

어쨌거나 어른도 어릴 적에는 아이였으니 말이죠, 자기들이 힘좀 있다고 아이 적 잊어먹고 애들을 박대하는 짓은 하면 안 됩니다.(...)


5. 전쟁, 그리고 인간의 희망

가고일이 인간을 비웃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들끼리 전쟁을 일삼다가 언젠가는 자멸하고 말 어리석음에 있습니다. 실제로도 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때는 전쟁 중입니다. 하늘을 날기 위해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는 전투기나 폭격기가 되어 마을을 초토화시켰고, 염병을 고치기 위해 시작된 세균에 대한 지식은 생화학무기가 되어 적군이 있던 땅을 오랫동안 못 쓰는 땅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뱃사람들을 수도 없이 저승으로 보낸 건 노틸러스가 아니라 가피시인데도 미국 함대의 제독은 앞뒤 따지는 것 없이 노틸러스 호를 격침시키기 위해 무서운 공격을 가합니다. 적으로 상정된 존재는 무조건 없애버리면 그만이며, 그게 당연한 거란 듯이 말입니다. 인간은 서로를 물어뜯고 죽이는 것이 본능일까요?

네모 선장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디아와 네오 황제는 의식이 지워진 채 가고일의 명령을 따라 총을 쏴서 아버지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이에 네모 선장은 쟝더러 나디아를 쏘라고 외치고, 쟝은 쏘지 못합니다. 가고일은 쟝을 어리석은 인간이라 비웃고, 네모 선장은 인간의 바로 이런 점이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주변에 얄미운 녀석만 가득 차 있다 해도 서로 기대고 부대끼면서 더불어 살아가야만 합니다. 인간에게는 분명 살의도 있고 폭력에서 희열을 느끼는 무자비한 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턱대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나약한 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 사람이 모여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를 찔러 죽일지도 모르는 인간 사회를 진정시킵니다.


폭발하는 레드노아로부터 모두가 무사히 탈출한 가운데 선장의 좌석만이 비어있습니다.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면, 이런 점이겠지요. 자신이 아닌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살신성인을 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여러 문학작품에서 다뤄지고 있지만, 인간은 확실히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어리석음도 모두 긍정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거지요. 지구상에 인류가 살아있는 한 전쟁은 계속될 것이며  언젠가는 인류가 정말 자멸할 위기에 치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중에도 자연의 법칙에 반해 강자가 약자를 위해 희생하고 생전 처음 보는 어린애를 구하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짓을 되풀이할 것입니다.

멸망당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아틀란티스에서 나디아가 발견한 들꽃은 인간에 대한 조그만 믿음이며 희망인 것입니다.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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