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면 감상은 천천히 써야겠습니다. 애장판 버전으로 하루 한권씩 진도 나가는 중인데, 섣불리 주절거려서는 안 되겠습니다...-_-;
아무튼. <바람의 검심>의 작가 와츠키 노부히로의 <무장연금> 최종화(???) 9권이 나왔군요. 빅터랑 아직 결판도 안 났는데 파이널은 무슨 파이너어어어얼?!! 하고 후기를 보니 다음 권이 진 최종판인가 -_- 이거 야마토임? -_-
무장연금을 보면서 쭉 드는 생각은, 아직까지는 와츠키 씨가 바검의 작가로 기억된다는 겁니다. 웨스턴 분위기의 작품은 시작이 꽤 좋아서 기대했는데 뭔가 시작될 듯 하더니 끝나버리질 않나, 이제 좀 소년의로망빤따스띡액숀극 무장연금으로 그렇게 당신이 원하던 소년만화스러운 작품이 나가나 했더니 이건 대체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정신이 없기만 하고 기억나는 게 없네요.;;; 처음 무장연금이 나왔을 때 바검이라는 네임밸류 때문에 이걸 고른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대부분- 특히 소녀팬층이 당장 접지 않았을까 싶네요. 우선 주인공을 죽이고 시작하는 첫장면부터 저처럼 '이야 이거 아스트랄하지만 은근히 내 취향이야!'라며 환호하는 부류가 메이저를 차지할 리는 없다는 확신이 들게 했지요.(먼 산) 아니나다를까 이야기 전개도 아스트랄하더군요.
단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나타나 무서운 인기를 구가하는 <강철의 연금술사>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소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작품에는 연금술과 호문클루스와 현자의 돌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하가렌에서는 이 소재들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인과율 혹은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는 커다란 테마를 건드리는 어두움을 간직하는 반면, 무장연금에서는 단지 싸우는 소년 소녀가 성장하는 이야기에 곁들여진 맛나는 조미료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런 걸로 비교를 해서는 안 되지요. 이 두 작품은 지향하는 궤가 다르니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장연금이 추구하는 건 철저한 '소년만화'라는 것입니다.
줄거리? 앞문단에 이미 적은 문장을 cccv하겠습니다. 싸우는 소년 소녀가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제? 싸우는 소년 소녀가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당연히 싸우는 소년 소녀입니다. 구제적으로 어떤 플롯이 전개되겠습니까?
주인공 카즈키는 난생 처음 보는 여학생을 구하려고 어설프게 나서다가 예수의 부활 비슷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 원하든 원치 않았든 별 괴상한 녀석들과 싸우면서 점점 강해지고, 그에 따라서 적도 점점 강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싸우다 보니 빅터라는 괴물이 등장하고, 카즈키 자신도 그 '부활'때문에 빅터와 같은 괴물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잠정적인 아군이었을 연금전사들이 그를 죽이러 오고, 결국 스승격인 캡틴 브라보와 싸웁니다. 제3자로 인해 그 승부가 묘한 형태로 끝나고 나니 최종보스인 빅터로부터 친구들과 지구를 지키는 싸움을 위해 달나라에까지 진출합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싸울 수밖에 없어!' 명분? '지키기 위해서다!'
아! 지키기 위한 싸움! 그것만큼 소년의 로망을 자극하는 것은 모험활극 뿐일 겁니다. 와츠키 씨는 바검 시절부터 소년만화스러운 걸 그리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정말 저지르신 겁니다.;
문제는 바로 그 이야기 전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싸우는 소년소녀를 표방하는 거야 상관없습니다만, '이거 혹시 전체스토리는 둘째 치고, 구체적인 건 매 챕터 연재분에서 즉흥적으로 그리는 거 아냐?'싶으리만치 이야기의 통일성과 완결성,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또한 소년소녀의 싸움에 대한 당위성은 첫째 그놈들이 인간을 잡아먹는 인간의 적이니까, 둘째 적으로부터 나의 친구를 지키기 위해, 셋째 싸우는 자들의 긍지를 위해, 이 셋으로 설명됩니다. "그 호문클루스를 만든 것도, 빅터 같은 불행을 만들어낸 핵철이란 것도, 빠삐용이 인간이길 포기하게 된 것도 다 인간 때문 아니야? 왜 그 이야기는 없지?" 너무 소년만화스럽게 나가다보니 싸우기 위해 싸우는 모양새가 되었달까요. 사람에게 이롭기는커녕 호문클루스라는 괴물까지 만들어내는 무장연금에 관해 빅터의 개인사를 써서 나름의 이야기를 던져보려 하긴 하지만- 그래봐야 결론은 싸워서 이기면 장땡 아닌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번 그럴싸한 여운이 남을만한 걸 구상한 게 아닐까 싶을 뿐입니다. 결국 모든 챕터를 모아놓으면 '싸워라 전사 카즈키 싸워라 전사 토키코' 이것 뿐입니다. 그런데 싸워서 이기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겁니까?
물론, 이런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나름대로 와츠키 씨에게 중요한 작품으로 남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뭘 그리고 싶은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한정된 무대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터뜨리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법은 무엇인지 궁리하는 모습이 많이 드러나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후기에서 '이 사람 정말 프로구나'하고 느낀 대목도 있었습니다). 또 바보 4총사나 스테이지 하나에만 등장하는 적 같은 조역들에도 각각 뚜렷이 구별되는 개성을 부여해서 캐릭터 묘사에서도 여러모로 연구를 하시는구나 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 결과 빠삐용이라는 정말 독특하고 멋있는 캐릭터를 내놓는 데 성공하셨지요(저는 녀석이 그 복장으로 대낮에 한길가에 있는 햄버거집에 나타나 평범하게 햄버거세트를 주문하던 그 장면을 이 만화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습니다.-_-^). 바보스럽게 심각한 전투씬이든 평화로운 일상의 묘사든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불쑥 등장하는 개그는 이분이 개그 표현면에서도 정진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여러모로 이 작품은 와츠키 노부히로라는 작가가 자신이 정말 그리고픈 작품색을 찾아 이것저것 시도해본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작가가 자기 하고싶은 대로 그려서는 작가의 취향을 속속들이 아는 독자라 해도 다 참고 받아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람의 검심>이 인기를 모은 것은 호쾌한 액션보다도 막말을 살아간 사람들의 아픔과 메이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이 어우러진 '이야기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멋진 대사 몇 마디를 뱉기 위해 주인공이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건 아닐 뿐더러, 그 멋진 대사가 명대사로 남기 위해서는 그 인물이 그런 생각을 갖기까지의 경험을 독자가 보고 공감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와츠키 씨의 작가로서의 시도에는 고개를 숙입니다만, 다음 작품은 부디 이야기가 있는 소년만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와츠키 씨 혼자 이녀석의 이러이러한 성격을 좀더 자세히 묘사해보고 싶었어라고 중얼거리셔봤자, 일관성있는 이야기가 바탕이 된 논리 내지 정서적 공감이라는 근거가 결여된 한에는 끝내주게 인상적이었던 사이토 하지메의 성격파탄적인 정의 같은 어필은 할 수 없습니다.
가만. 내가 이 블로그를 열면서 제일 먼저 쓰겠다고 작정한 건 슈쇼우의 승산기에 대한 잡담 아니었나? 어째서 그건 까맣게 잊고 있었지? 왜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