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9/19


1. 기차놀이 하느라 본방송은 못 보고, 오늘(일요일) 낮에 재방으로 봤습니다. 오늘밤 또 신선조와 이순신 사이에서 갈등할 걸 생각하니 골 아프구만요.;

2. 나 역시 이순신 자살설 지지자이긴 하지만, 이렇게 가버리시는 건 좀 곤란합니다요 장군님. 적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나 죽었소 하고 그냥 보여주면 어떡합니까요, 게다가 주위에 아무도 없다니! 하다못해 송희립이나 조카님이라도 옆에 있어서 방패를 들어야는 것 아닙니까요.; 이래서야 그 유명한 유언도 허구가 되버리는구만요. 뭐 상관 없으려나.

3. 쓰러지신 장군님이 과거회상을 하시어, 드디어 이야기는 1555년으로 돌아갔습니다. 1598년에 54세 되시니 이때면 10살 11살의 어린 아이군요. 또다시 정형이 팍팍 깨져, 어린 이순신은 동네의 덩치 큰 아이들에게 겁쟁이에다 운동도 못하는 꼬마로 따돌림당하고 있더이다. 심지어 골목대장은 원균이고 이순신은 용감한 어린이로 인정받고 싶어서 원균과 친하게 지내려 하는군요.; 성룡 형님은 저런 녀석들과 어울리지 말고 공부좀 하라고 타이르고 있더이다. 왜 웃기게 들리지?;

4. 골목대장 원균과 나약한 이순신을 보고 떠오른 건 임진왜란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설정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보다 못하고 항상 형님형님 따라다니던 꼬맹이가 나이들고 보니 자기한테 명령하는 위치가 되어있더라면, 여간 배포 유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배알이 뒤틀리지 싶더이다. 원균도 나름대로 사려있는 장수였다는 건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이래서야, 잘못 가다간 잘났는데 어딘가 꼬여버린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더 잘못 가다간 미화의 극치를 달리는 건 아닌지 싶습니다. 흐음, 역사의 라이벌 어쩌고 하는 두 사람이 어린 시절 형님과 부하의 관계라.; 그나저나 훈련원 훔쳐보기를 그렇게 좋아했다는 설정이라니, 나중에 무과 급제해 훈련원 봉사가 되면 감개무량의 정도가 넘쳐 어찌 되시려오? 장군.;

5. 유성룡은 정확히는 이요신인가 이희신의 친구로 이순신은 친구의 동생이었을 겝니다. 그래봐야 겨우 3살 차이인데 이순신을 친동생 이상으로 아끼고 감싸고 보듬고 말이 아니군요. 원균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그와 가까이 하는 것도 경계하다니 무슨 누이를 생각하는 오라버니도 아니고.; 아무튼 이순신은 원균에게 인정받았고 원균은 유성룡에게 인정받았습니다. 셋이 친한 사이가 된다니, 묘한데요.-_-;

6.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은 젊은 시절 흥선대원군 저리 가라할 난봉꾼으로 묘사되더군요. 그것도 한이 쌓이고 쌓여 속이 새카맣게 타버린. 舜臣이라는 이름을 풀이하면서 순임금이 없으니 그런 임금의 신하도 없는 거라며 처절하게 비뚤어진 웃음을 짓는 이정은 선조의 두려움과 겹쳐 무서워졌습니다. 그 이름자는 할아버님인 이백록이 꿈에 나타나 전했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저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싶었습니다. 이순신의 형제들은 모두 요순 같은 명군의 신하라는 의미의 이름이지요. 돌림자는 오행의 글자가 변으로 들어간 걸 쓴다던데 신자 돌림은 해당이 안 되더군요. 아무튼 조광조의 일로 할아버지가 억울하게 파직당했던 집안의 자식이 나랏님에 대해 한이 조금도 없으면 이상하다는 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순신 전기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해석이지요... 차라리 자식을 바보로 키우는 게 세상 평안하게 살게 하는 거라며 우는 것처럼 웃던 이정을 보니,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도 너무 굴곡진 생을 살았던 이순신은 지나치게, 지나친 게 넘치도록 우직하게 살았다고 새삼 느낍니다.

7. 들어보니 이 드라마는 100화는 된다던데 얼마나 늘어질지 좀 무섭군요. 신선조는 48화인가에서 끝나는데.; 하기사 그쪽이 다루는 이야기는 몇 년이 안 되긴 합니다. 짧으면 곤도 이사미가 참수당하는 데까지, 길면 하코다테에서 히지카타 토시조가 전사하는 데까지겠지요. 아무튼, 상관 없는 이야기입니다.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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