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22

그.. 현실도피증세의 일환으로 갑자기 발동한 고전탐닉증의 한 증상으로 도서관에서 아무거나 빌려가 읽는 중입니다.(참고로 내일은 중간고사급 시험..;)
그렇게 해서 제 레이더에 걸려든 것 중 하나가 헤세 전집입니다. 70년대에 나온 책인데 먼지도 수북하고 세로로 씌어진 게 일본에서 나온 책을 번역해다 놓은 것 같더군요.(도중에 독일인 인물 이름이 가타카나로 쓰면 될 법한 식으로 번역된 걸 보고 확신) 그거야 어쨌든.
첫번째 글인 <향수>를 읽고 그냥 다운되어 버렸습니다. 글쟁이라는 건,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겁니다.
물론 헤세는 당대의 대문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필력을 부러워 하기 보단(사실 그런 걸 알아볼 능력도 없지만;) 그, <향수>라는 글 전체에 걸쳐 나타난 주인공의 삶을 보면서, 글쟁이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그럴싸한 공상을 써낸다고 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적도에서 평생 산 사람한테 빙하가 어떤 것인지 써보라고 하면 어디서 주워들은 피상적인 것만 쓰게 될 게 뻔한 것과 마찬가지지요. 어디선가 들은 건데 소설이란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쓴 것, 단 그대로 쓰진 않은 것이란 말이 떠오르더군요.
인생경험의 면에서 저 페터 카멘친트가 겪는 경험들과 생각들을 보노라면 대체 저는 뭘 하고 살아왔는지 당황하게 되고,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경험도 없는 주제 무슨 글쟁이 흉내를 내려는 것인가 하고 숨막히게 무서워 지더군요. 아무래도 자연에서 정말로 뼈저리는 경이를 느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 사이에서 진실한 뭔가를 발견한 적도 없는 풋내기로선 ..하하, 어렵습니다. 요즘엔 한번 뭘 연재해 보려고 몇년 전에 정리해 둔 설정들을 모아다가 이야기를 구상 중이었는데 의욕 사라집니다..;

아무튼.... 빨리 책이나 마저 읽어야 겠습니다. 한탄한다 해서 이미 지나간 19년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뭐 돌아보면 분명 사소한 뭔가가 흐뭇하게 하는 것도 있겠지요.. 이 다음 글이 <수레바퀴 밑에서>인데 제가 또 어떻게 당황할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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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기말고사 기간에 봤다. 이후로도 나는 셤으로 인하야 정신이 시험에 들라 치면(...겜방은 안 됏! 그건 현실도피닷!) 괜시리 중도를 어슬렁거리며 괴이쩍은 독서열을 불태우게 되었다. 그거, 셤 때문에 정신이 황폐해질 때 정서를 순화시켜 주니까 좋긴 좋던데, 아무거나 봐선 안 되겠더라... 가뜩이나 머리 쓰기 싫어서 시원스런 해양모험소설을 봐야 할 참에 역사철학 뭐 이딴 걸 봐봐라, 갑자기 법전이 예뻐 보인다고...;




Posted by 양운/견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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