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베르는 퍼스트네임조차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다. 본줄기와는 큰 상관이 없는 워털루 전투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책 한 권의 절반을 끝장낼 만큼 수다가 심한 위고 선생은 작품 후반까지 발장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운 이 인물에 대해선 참 말을 아낀다. 속내에 대한 묘사는 발장과 관련되는 어떤 사건이 터질 때가 아니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마리우스가 테나르디에 일당의 음모를 고발하던 때나 바리케이드에서 풀려날 때 그리고 그놈의 자살씬 때 자베르에 대한 묘사를 보면 위고 대선생이 독자님하가 알아서 상상하세요 염장을 지른다는 느낌조차 있다. 그나마 가족에 대해서는 딱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다.
자베르는 형무소 안에서 트럼프 점을 치는 여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여자의 남편은 항구의 감옥에서 징역을 사는 죄수였다.
-1부 팡띤느 제5편 전락 中
자베르가 처음 등장하는 몽트레유쉬르메르 시절 작가가 직접 그를 소개한 내용이다. 뒤에 나오는 이리의 배에서 태어난 개 이야기와 더불어 자베르라는 인물이 단순히 국가와 법의 개인 게 아니라 장 발장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음을 암시하는 대목인데, 아니 그러니까 그런 걸 어떻게 이 두 줄로 끝내고 마냐고! 위고 대선생님 졌습니다! OTL 여하간 이 엄청난 여백 덕에 -_-; 창작에 종사하는 자들은 자베르의 출신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좋을 때에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다. 동화와 축약본을 제외했을 때 각종 2차저작물 중 내가 접해본 건 영화가 한 편 애니가 하나(다른 버전이 하나 더 있지만 거의 기억나지 않으니 제외) 뮤지컬 콘서트가 하나인데, 각각 자베르의 가족사가 언제 어떻게 묘사되는가를 작품 속 시간 순서대로 볼작시면.
빌 어거스트 감독 영화 레미제라블
이쪽의 자베르는 성격이 좀 나쁘다. 어떤 때는 얼빵하리만치 순진한 것도 같은데, 기본적으로는 사람이란 결백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 것 같다. 그거야 원작도 그렇긴 한데 이쪽은 좀 더 잔혹하게 발현된달까. <은하영웅전설>의 오벨슈타인은 주위로부터 호감은 사지 못해도 경외는 받았다. 원작 자베르가 그런 느낌이라면 이쪽은 부하들한테 미움받아도 할 말이 없다. 팡틴한테 그게 뭔 짓이여? 원작에서 팡틴한테 엄하게 군 건 자신이 본 부분만 가지고 죄질을 판단했기 때문인데 이건 사건 경위를 다 보고도 이러니 완전 자의적인 법집행 아닌가. 어머니로 대표되는 타락(지금이라면 성차별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레미즈 시대 기준으로는 이게 가장 적합하리라)에 대한 증오? 혹시 그런 거냐? -ㅅ-;
포슐르방(영화에서는 라피테) 사건으로 한 번에 발장을 알아본 자베르는 마들렌 씨를 떠보기 위해 인구조사를 제안한다.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의 과거를 묻지 말자며 시장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자 자베르는 자신의 부모가 이러저러한 사람이란 걸 당당하게 밝히면서 깨끗한 사람이라면 그런 걸 겁낼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대꾸한다. 팡틴 사건 전이고 해서 아직 두 캐릭의 갈등이 표면으로 터지기 전이고 하니, 자베르라는 인물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미칠듯이 깨끗해지려 하는 성격이다 하고 보여주는 장치 정도의 의미만 있는 것 같다. 발장과 자베르의 관계도 과히 좋지 못하다. 자베르가 눈 앞에서 투신하니까 발장은 너무너무너무 좋아라하고... 당신 인도주의자 맞음? -ㅅ-;;; 사실 이 영화는 방대한 원작을 줄이고 줄이고 줄여놓느라 바쁘다는 느낌이다. 들어갈 건 다 들어갔지만 원작에서 느껴지던 어떤 끌리는 맛이나 감동이 없다. -.-;
뮤지컬 레미제라블
팡틴의 죽음 직후 발장은 자신을 체포하러 들이닥친 자베르와 대립(전투)모드에 들어간다. 거기서 발장은 먹을 게 없어서 빵을 훔쳐야 했던 자신의 과거를 말하며 불쌍한 어린 아이가 어찌 되든 발장부터 잡고 보겠다는 자베르는 세상을 모른다고 책망 비슷한 소릴 한다. 이에 발끈한 걸까, 자베르는 자신 역시 그런 빈민 출신이란 걸 밝히는데. 해석에 따라서는 나도 그런 밑바닥을 굴렀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입신했다 비겁한 변명은 관두라는 훈계가 될 수도 있고, 뼈저리게 잘 알기에 이 몸이 택한 길은 그런 것조차 초월해버린 법이요 대천사님 악은 기필코 처단하리라는 선언이 될 수도 있고. 거듭 말하는데 자베르는 발장과 정면으로 대립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인종인 캐릭터이다. 고로 양자의 확고부동한 정의가 충돌한 저 씬에서 자베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게 맞다. 괜히 넘버 제목이 Confrontation인 게 아니었던 거다. 근데 콤 씨랑 콰스트 씨가 Javert! 라고 외칠 때마다 캬학거리는 거 왜 이렇게 좋지;;; 귀가 다 행복해지네;;;
애니 레미제라블 소녀 코제트
이 애니의 자베르는 노련 근엄 강직 공정한, 어떤 의미로 이상적인 수사관의 이미지가 강하다. 범법자한테는 저승사자지만 일반시민한테는 정말 의지가 되는 느낌. 그런데 그 힐은 무엇? 경찰이 왜 힐을 신고 다녀? 종아리는 또 뭐 이렇게 가늘어? 애들은 로리와 츤데레가 바로 연상되더만 이쪽도 노린 건가!(퍽퍽퍽) 여하간,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던 이 근엄한 양반은 바리케이드에서 발장이 자신을 풀어주자 노발대발하며 자기 과거사를 밝힌다.(원작에서는 뚱하게 몇 마디 주고받고 끝나는 장면이다. 자베르가 무슨 생각 무슨 심정으로 멈칫했는지는 독자가 상상해야 한다. 으오우 위고 대선생니이이이임! OTL) 원작의 두 줄 소개에 한층 살이 붙어, 양친이 모두 죄수였으며 출옥 후에도 뉘우치질 않고 끔찍한 죄를 짓자 자베르가 자기 손으로 체포해서 투옥했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자베르는 한 번 죄인이 된 자는 영원히 죄인이란 주의가 되었다는 이야기고.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가 이 애니의 주제이기 때문에 자베르의 가족은 이렇게 되었다. 그래도 불쌍한 10대 소년 자베르가 원경으로나마 한 번 잡혔으니까 용서해주자.(응?) 사실 내 취향을 제하고 말하자면 요즘 보기 드물게 순진하고 내용도 실한 애니였다.
보다시피, 내가 접해본 2차저작물들에선 죄다 다른 타이밍에 다른 의의를 가진 소품으로 자베르의 과거사가 등장했다. 그 2차저작물이 주로 집중하는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특히 자베르라는 인물의 캐릭터에 변경의 여지가 있는 듯 한데, 그걸 표현하는 데에 저 상상의 여지가 넘치는 과거사가 소품으로 쓰이는 것 같다. 다른 버전에서는 또 얼마나 다채롭게 다뤄질까 궁금하다. 어디 이런 거 따로 정리한 글 없으려나.
자아 이쯤 해두고.. 아무리 포스팅 거리가 없어도 한동안 레미즈 잡담은 자제하자. 일단 저작권 때문에 묶어놓은 히루마모 잡담 정리라도 해야지 이거, 점프 8호 나오기 전에는 뭔가 포스팅 주제가 계속 갈팡질팡할 것 같다.;;;
p.s. 우연찮에 야후 본홈에서 검색 때리다가 발견한 것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혹시나 해서 떨리는 손으로 입력한 다른 검색어
뭐랄까.. 이게 왜 놀라운 건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가령 네이버 검색을 때렸을 때 저런 게 자동검색어로 뜨진 않지 않은가? 아무리 뮤지컬이 본디 서민문화라지만 설마하니 저 염장스런 콘서트 하나 때문에 지구촌 규모로 동인이 양산되...었겠지만 이 정도일 리..가 있던 거였나. 하여간 지구촌에서는 자베르나 장 발장 같은 고전 속 인물로 팬픽질을 하는 게 자동검색에 오를 만큼 보편화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게 무슨 내용일지 보고싶으면서도 보고싶지 않아 이쯤에서 관뒀는데...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팬심, 정말 무섭다;;;
p.s.2 일부 지인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히루마모 히루세나 무사히루 히루마 우케;; 이런 것도 자동검색어로 뜨더이다. 그렇죠 뭐. 팬심이 있으면 영어 공부도 하게 되는 게지요. -_-;